김준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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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준룡(金俊龍)
출생
1586년
사망
1642년
본관
원주 김씨

수부(秀夫)
시호
충양공(忠襄公)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조선의 김해 부사, 황해도 병마절도사, 경상도 병마절도사,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한 무신.


2. 생애[편집]


1586년인 선조 19년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두남(金斗南)의 아들로 태어났다 22년뒤인
1608년인 선조 41년에 무과 시험을 보고 급제를 하였다. 그후 선전관을 거쳐 황해도, 경상도, 함경도에 있는 병영에
근무를 하였다. 1617년인 광해군 9년에 인동 부사가 되었고 여러 고을의 수령을 거쳐, 1628년인 인조 5년에 황해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그후 북병사(北兵使)를 거쳐 1636년 전라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636년인 인조 14년 12월 20일에 청 태종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임금 인조가 있는 남한산성 까지 포위하였다 라는 소식을 듣고 전라도 감찰사 이시방과 함께 급히 6,000의 병사와 화엄사의 승려들이 이끌던 2,000의 군사까지 합하여 총합 8,000의 전라도 근왕병 부대가 남한산성으로 북진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전라 감찰사 이시방은 김준룡에게 2,000명인 1개 사단 급의 병력을 주어 먼저 가게 하였다. 이때 청의 어르커 친왕 아이신기오로 도도가 이끌던 병력이 충청도 근왕병을 격파하였다. 전투가 끝난후 1등공 양구리와 친왕 도도가 김준룡의 병력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3,000의 병력을 인솔하여 광교산으로 향하게 된다. 1월 4일 김준룡은 병력을 배치하고 남한산성과의 연락을 시도 하였다. 1월 5일 ~ 6일 도도가 청군을 이끌고 광교산 부근으로 도착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전투가 시작되었고 교전은 아침부터 밤 9시에서 11시까지 이어졌다. 중영장 우상중 또한 이런 언급을 하였으니 매우 치열 했을 것이다. 1월 7일 안개가 많이 끼고 눈도 내리는 날씨 였던지라 시야가 매우 좋지 못했다. 그후 1등공 양구리가 조선의 근왕병에게 살해당하였고 도도가 광교산 기슭으로 철수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1달 후인 2월 24일에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 태종 숭덕제 홍타이지 한테 항복하였다. 그후 전라 감찰사 이시방이 김준룡의 전공을 시기하여 모함을 하였으나 이성구, 최명길의 도움으로 겨우 무사하게 되었고 이후 어영중군(御營中軍)·김해 부사·경상도 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1642년인 인조 20년에 사망하였고 사후 충양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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