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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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이다.
1962년에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덕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출연했던 KBS 어린이 노래자랑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어머니의 은혜를 불러 대상을 거머쥐었다. 이때부터 남다른 노래 실력을 뽐냈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미국에서 위문공연을 다녔다.
1983년에 다시 고국으로 귀국한 후, 당시 많은 히트곡을 만들었던 작곡가인 박춘석과 만나면서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백일희의 노래를 리메이크해 <목포의 부르스>라는 노래를 발표했으나, 그다지 흥행하지는 못했다.
1986년에 금나영 작사, 박춘석 작곡인 <물레야>가 히트를 했다. 이 곡은 가요무대 애창곡 100위권 안에 들만큼, 아주 큰 인기를 누렸다.
1989년에 전영록이 작곡한 <얄미운 사람>은 당시 군인사회를 풍자해 많은 이로부터 공감을 받으며 대히트를 하며 대형 트로트 가수로 부상했다. 이 노래는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이후 수능 강사 정승제의 커버를 통해 적잖은 젊은 사람들도 이 곡에 익숙해졌다. <얄미운 사람>은 처음에는 주현미에게 주려고 했으나, 사정으로 인해 김지애가 불렀다.
1990년엔 이용이 작곡한 <몰래한 사랑>이 연이어 대박을 치며 흥행을 이어 나간다. 2014년에 이용이 어느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이 곡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 주었다. 원래는 이용 본인이 컴백할 때 부를려고 만든 곡으로 녹음까지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동시에 음반사와 김지애가 자의적으로 이 곡을 녹음한 후 이용 대신 음반을 내놓게 되었다. 자신이 곡을 발표하지 못해 여전히 아쉽다는 얘기를 2014년에도 했을 정도로 이용에겐 꽤나 한이 맺힌 사건이었다. 다만 김지애가 가요톱텐에서 이 곡으로 1등을 한 후 이용에게 감사하다는 소감을 전하자 어느 정도 응어리가 풀렸다고 한다.[1]
1991년 <미스터 유>, <남남북녀> 등의 노래로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남편 권오규와의 이혼, 추락 사고 등 온갖 여러 사건이 일어나면서 잠시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현재는 간간히 가수 활동을 한다. 딸도 하나 있는데 이름은 권누리였다.[2]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이다.
2. 가수 데뷔 전[편집]
1962년에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덕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출연했던 KBS 어린이 노래자랑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어머니의 은혜를 불러 대상을 거머쥐었다. 이때부터 남다른 노래 실력을 뽐냈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미국에서 위문공연을 다녔다.
3. 가수 활동[편집]
1983년에 다시 고국으로 귀국한 후, 당시 많은 히트곡을 만들었던 작곡가인 박춘석과 만나면서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백일희의 노래를 리메이크해 <목포의 부르스>라는 노래를 발표했으나, 그다지 흥행하지는 못했다.
1986년에 금나영 작사, 박춘석 작곡인 <물레야>가 히트를 했다. 이 곡은 가요무대 애창곡 100위권 안에 들만큼, 아주 큰 인기를 누렸다.
1989년에 전영록이 작곡한 <얄미운 사람>은 당시 군인사회를 풍자해 많은 이로부터 공감을 받으며 대히트를 하며 대형 트로트 가수로 부상했다. 이 노래는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이후 수능 강사 정승제의 커버를 통해 적잖은 젊은 사람들도 이 곡에 익숙해졌다. <얄미운 사람>은 처음에는 주현미에게 주려고 했으나, 사정으로 인해 김지애가 불렀다.
1990년엔 이용이 작곡한 <몰래한 사랑>이 연이어 대박을 치며 흥행을 이어 나간다. 2014년에 이용이 어느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이 곡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 주었다. 원래는 이용 본인이 컴백할 때 부를려고 만든 곡으로 녹음까지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동시에 음반사와 김지애가 자의적으로 이 곡을 녹음한 후 이용 대신 음반을 내놓게 되었다. 자신이 곡을 발표하지 못해 여전히 아쉽다는 얘기를 2014년에도 했을 정도로 이용에겐 꽤나 한이 맺힌 사건이었다. 다만 김지애가 가요톱텐에서 이 곡으로 1등을 한 후 이용에게 감사하다는 소감을 전하자 어느 정도 응어리가 풀렸다고 한다.[1]
1991년 <미스터 유>, <남남북녀> 등의 노래로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남편 권오규와의 이혼, 추락 사고 등 온갖 여러 사건이 일어나면서 잠시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현재는 간간히 가수 활동을 한다. 딸도 하나 있는데 이름은 권누리였다.[2]
4. 대표곡[편집]
- 1984년 목포의 부르스
- 1986년 물레야 - 2020년에 발표된 가요무대 애창곡 100위 안에 들었다.
- 1989년 얄미운 사람
- 1990년 몰래한 사랑
- 1991년 미스터 유
- 2015년 석류가 웃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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