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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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孝元
출생
1542년 (중종 37년)
사망
1590년 4월 1일 (선조 23년) (향년 48세)[1]

1. 개요
2. 생애
3. 대중매체


1. 개요[편집]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인백(仁伯), 호는 성암(省菴), 본관은 선산.


2. 생애[편집]


이황, 조식의 문인이었으며 명종 말 새로이 등용되기 시작한 사림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1564년 진사가 되었다가 1565년 알성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해 병조좌랑, 사간원 정언, 지평 등을 역임했다.

1572년 이조전랑에 추천되었으나 윤원형의 문객이었다는 이유로 이조참의 심의겸이 반대하는 바람에 거부당했다. 1575년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이 이조전랑으로 추천되자 전랑의 관직외척의 사유물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반대하고 이발을 추천했다. 이를 계기로 심의겸과의 반목이 심해지면서 사림계는 김효원 측의 동인과 심의겸 측의 서인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3. 대중매체[편집]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선조실록에 등장한다. 김효원이 이조전랑에 이름을 올리면서 첫 등장하는데 이때 심의겸윤원형의 숙객으로 있던 자를 어찌 이조전랑에 임명할수 있냐며 반대하자 김효원은 이에 앙심을 품고 “심의겸! 어디 두고보자…”라면서 이를 간다. 이때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이 거론되자 김효원은 외척이 전랑에 임명할수 있냐며 반대하자 이에 대해 심의겸도 김효원에게 이를 갈자 동인서인으로 나누어졌다. 이것을 끝으로 등장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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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는나이로 49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