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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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인도 국기.svg 인도 공화국 마하라슈트라주의 도시
나그푸르
नागपूर · नागपुर
Nagpur





국가
[[인도|

인도
display: none; display: 인도"
행정구
]]

지역
서부
상위 행정구역
나그푸르 지구
면적
227.36km²
인구
2,405,665 명 (2021)
공용어
마라티어
종교
힌두교 69.4%
불교 15.57%
이슬람교 11.9%
시간대
UTC +5:30 (IST)
지역번호
0712
우편번호
440 001 – 440 037
차량번호
MH-31 (서부),-49 (동부), -40 (농촌)
웹사이트
나그푸르 정부 홈페이지

파일:딕샤부미.jpg
인도 최대의 불탑인 딕샤부미(Deeksha Bhoomi दीक्षाभूमी). 현대 불교의 구심점이다

1. 개요
2. 역사
3. 불편한 공존



1. 개요[편집]


인도 아대륙 정중앙부 마하라슈트라주 동북쪽에 위치한 인구 240만 명의 도시[1]. 도시를 관통하는 나그 강에서 지명이 유래된 나그푸르는 마하라슈트라 주의 동계 주도로 하계 주도이자 인도 최대 도시인 뭄바이에선 무려 600km 넘게 떨어져 있다. 대륙의 기상 데칸 북부의 중심 도시인 나그푸르에서 주변의 인구 백만 이상 대도시로는 각각 서북, 동북쪽으로 200km 씩 떨어진 보팔자발푸르가 있다. 그 사이에 데칸 고원의 북쪽 경계인 사트푸라 산맥이 있지만 타와-나르마다 강이 관통하는 등 험준하진 않아 직선 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나그푸르는 뭄바이에 이어 주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로, 겨울철 한정이나마 주의회가 열린다.

특산물로는 오렌지가 매우 유명하며, 2013년 ABP 뉴스가 선정한 쾌적함, 녹지 비율, 대중교통, 의료 복지 측면에서 인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이다. 도시의 외곽 순환도로가 건설 중이다. 뭄바이-캘커타 하이웨이와 공유되는 남쪽 부분은 완공되었고 북쪽 부분의 공사가 진행 중이다.이곳에서 태어난 인도의 정치인 암베드카르 박사에 대한 존경이 대단하며, 바바사헤브 암베드카르 박사 국제 공항 역시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다. 그의 영향 하에 불교도가 많으며, 힌두교 (60%)에 이어 인구의 26%가 불교도로 집계되는데 실상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슬림은 12%)


2. 역사[편집]


나그푸르의 이름은 10세기부터 기록되었다. 나그푸르에서 동북쪽으로 30여 km 떨어진 나갈단에는 4세기 바카타카 왕조의 수도 유적이 남아있고 그곳에서 다시 북쪽으로 5km 떨어진 산에는 마라타 연맹기에 지어진 람테크 성채가 있다. 이후 찰루키야 왕조, 라슈트라쿠타 왕조, 파라마라 왕조, 야다바 왕조 등을 거쳐 1317년 일대는 델리 술탄국의 지배 하에 놓였다. 무굴 제국 시기에는 북쪽으로 80여 km 떨어진 친드와라가 일대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그러던 18세기 초엽, 무굴 제국의 쇠퇴기에 일대를 장악한 곤드 왕조는 새로운 수도로 나그푸르를 택하였고 이로써 현대의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1750년 경 나그푸르는 마라타 연맹에게 점령되어 그 왕국들 중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세워진 나그푸르 왕국은 남쪽의 하이데라바트 니잠국과 싸웠고 본국인 마라타에 반기를 들었다가 1765년 둘의 연합군에 의해 나그푸르가 불타기도 했다.

기존에 친영 정책을 펴던 나그푸르 왕국은 영국군이 마라타를 침공하자 돌변하여 그에 맞섰으나 1803년 아사예 전투에서 패하였다. 이후 1811년 나그푸르는 도적떼인 핀다리의 습격을 당하는 등 재차 혼란기를 겪었지만 도시 규모는 꾸준히 증가하였다. 1817년 나그푸르는 재차 영국에 맞섰지만 역시 패하였고 나르마다 강 유역의 영토를 동인도회사에 빼앗겼다. 이후 영국의 영향력 하에 놓인 나그푸르 왕국은 1853년 라호기 3세가 아들 없이 사망하자 동인도회사에게 몰수되었다. 이는 동인도회사와 인도 왕공들간에 체결된 불평등 조약에 의한 것이었다. 1857년 세포이 항쟁 당시 나그푸르의 무슬림 장교들이 봉기를 꾀했으나 영국 당국에게 붙잡혀 성벽에 목메달리며 나그푸르에선 항쟁의 불길이 번지지 못하였다. 이후 나그푸르 주, 중부 주들을 지나 1948년 인도가 독립하자 나그푸르는 마하라슈트라 주에 편성되었고 더이상 주도 역할을 상실하였다.


3. 불편한 공존[편집]


파일:Ambedkar_2017_stamp_of_India.jpg
2017년 발행된 암베드카르 박사 우표

다소 상반된 성향을 지녔지만 달라트 불교 운동과 힌두 민족주의 (RSS) 운동의 중심지이다. 특히 현지 출신의 카스트 철폐 운동가 암베드카르의 주도 하에 벌어진 전자의 영향으로 나그푸르는 현대 인도에서의 불교 중심지이다. 1956년 그가 60만명의 마하르 불가촉천민과 불교로 개종한 도심 서쪽의 락시미 나가르에는 매년 백만의 불교도들이 순례하는 딕샤부미 스투파가 세워져 있다. 2001년 준공식 당시 인도 최초의 천민 출신 대통령 나라야난이 참석하기도 했다. 한편 도심 동쪽에는 RSS 본부가 위치해 있는데,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아담한 건물로 찾기 힘들지만 철조망과 모래주머니 초소에 경계병까지 배치되어 있다고 한다. 매년 10월 뒤세라 축제 때마다 10만명이 순례객들이 나그푸르를 찾는데 천민들을 중심으로 한 인파는 서쪽의 딕샤부미로, 브라만을 중심으로 한 인파는 동쪽의 RSS 창립 기념행사로 향한다. 공교롭게도 암베드카르 박사의 개종과 RSS의 창립이 같은 날이었기에 벌어지는 묘한 현상이다.

[1] 대도시권까지 합치면 310만 명으로 인구 상으로는 마하라슈트라 제3의 도시이자 인도에서 13번째로 큰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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