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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후반 아직 (러시아가) 이탈리아와 프랑스 상인들과의 직접적인 교역이 없었던 당시 네덜란드 상인들은 새로운 무역 파트너로서 러시아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16세기 후반 이래 유럽에서는 영국과 네덜란드 상인들이 상업무역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1]

16세기 후반에 통합된 국가를 형성한 네덜란드의 상인들은 약 1만 5천의 상선을 보유하면서 전 세계 최대 무역선단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선단은 아메리카 식민지와 긴밀한 관계를 가질 만큼 세계적 운송업자의 역할을 하면서 세계각지로 진출하였다. 17세기에 들어서서 네덜란드 상인들은 러시아와의 무역양에서 영국 상인들을 추월했고, 후반기 특히 1649년 이후에는 러시아 국내 시장에서 영국인들을 압도하며 러시아에서 자신의 입지를 보다 공고히 하였다. 그러므로 러시아의 상공업 발전에 네덜란드 상인들의 자본과 활동이 ‘서유럽 인력과 자본의 유입’이라는 측면에서 러시아 상업자본의 형성과정에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는가를 규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이반 4세가 나르바를 정복한 후에야 꼴라반도 북부해안가 와 무르만스크 해안가를 따라 러시아인들과 교역을 시작했다. 이들 초기 상인들 중에는 북부 덴마크의 젤란지아 출신으로 예술을 공부한 필립 빈터코닝(Филлп Бинтерконинг)이 있었다. 그는 1562년 노르웨이 북부 도시 바르죠 시장인 에리카 문카와 일을 같이하다 노르웨이가 덴마크의 지배를 받게되자, 덴마크 관리로 일하면서 덴마크인들에게 러시아에서 가져온 수산물과 기름을 팔았다. 또한 1580년대에 들어서는 길리스 반 에이쥘렌베르그(Гилис ван Ейзиленберг)가 러시아와 네덜란드 사이의 교역을 주도하였다. 이후 1590년대에는 4명의 네덜란드 상인들, 야코베르흐(Яковфербех), 이바쉰코 보리소프(Ивашко), 찌모쉬카 볼로짐에로프(Тимошка Володимеров) 그리고 마쮸쉬카 시오노프(Матюшка Сионов)가 북부 드비나 지역에서 교역활동을 하며 모스크바 시장에까지 들어왔다.

1660년대에 이르면 아르한겔스크에는 모두 18개의 드보르가 있었는데, 그중 10개가 네덜란드 상인의 것이었다. 이들은 이반 4세 때 부터 도시세를 내지 않았으나 1678년 러시아인들의 청원이 계속되자 이후로 납세를 하게 되었다.

KCI 등재논문 : 17세기 전반기 러시아의 네덜란드 상인들 -아르한겔스크를 중심으로


  • 프세볼로트 메이예르홀트
  • 스티븐 시걸
  • 자코부스 포옐
  • 피테르 포옐

  • 재침례파 - 네덜란드의 재침례파 일부가 비스와 강 하류로 이동한 이후, 다시 프로이센 정부와의 마찰을 이유로 러시아로 재이주하였다.

[1] 알려진 대로 17세기 유럽 상업활동은 영국과 네덜란드 상인들 사이의 상업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이 심했다. 영국 부르조아 청교도 혁명과 16세기 후반 스페인에 대항한 갈등은 연합 네덜란드 공화국을 탄생시켰다. 대규모의 부유한 네데란드 상인들은 유럽에서 뿐 만 아니라 식민지에서 영국인들을 내몰고 있었다. 특히 청교도 혁명기에는 그러했다. 16세기 말엽 러시아 시장이 유럽시장의 한 부분이 되자 영국과 네덜란드 상인들 사이에 그 수위권을 놓고 경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