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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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矩和尙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신라 경문왕~진성여왕 때의 승려이다.


2. 생애[편집]


삼국유사에서 금란(金蘭, 지금의 강원도 통천군)[1] 일대를 요원랑, 계원, 숙종랑, 예흔랑 등 여러 화랑들이 유람하다가, 경문왕을 위할 뜻을 품어 노래 3수를 지었고 초벌 원고를 대구화상에게 보내서 노래 세 곡을 짓도록 했다. 노래 제목은 현금포곡(玄琴抱曲), 대도곡(大道曲), 문군곡(問群曲)이었는데 이 노래들의 내용은 남아있지 않지만 그 중 문군곡의 문군(問群)은 "무리에게 묻는다"는 뜻이므로, 이 음악은 국왕과 백성 간의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음악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노래들을 경문왕에게 전하니 왕은 크게 기뻐하여 칭찬했다.

삼국사기에서는 진성여왕향가 모음집 삼대목(三代目)을 대구화상과 김위홍에게 편찬하도록 명한다. 삼대목은 현재 전하지 않아 어떤 향가가 실려있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그러나 위 삼국유사의 기록을 봐서 같은 대구화상이 관여한만큼 저 세 노래는 분명히 수록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삼대목의 편찬 목적이 경문왕가 신성화 작업=왕권 강화의 일환이리라 추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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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금강산 인근이다. 금강산 인근 지역들에는 신라사선을 비롯해 화랑들의 일화가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