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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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호동구(東甌)
동해(東海)
존속기간기원전 192년 ~ 기원전 138년
이칭동월(東越)
위치저장성, 복건성
수도동구(東甌)[1]
국성추(騶)
국가원수
주요 군주요(搖)
망(望)
언어고대 월어, 상고 중국어(?)
종족월족
멸망 후전한
현재 국가중국

1. 개요
2. 역사
2.1. 건국 이전
2.2. 전한 시기
3. 역대 국왕


1. 개요[편집]


춘추전국시대 월나라의 후계국가이자 전한의 제후국.

왕족은 민월과 함께 월왕 구천의 후예였다고 한다. 전한 한무제 때 민월의 침공을 받아 멸망했다.


2. 역사[편집]



2.1. 건국 이전[편집]


초대국왕 요(搖)는 민월의 초대국왕 무제(無諸)와 함께 지역에서 왕노릇을 하고 있었다. 진(통일왕조)가 들어선 후 진시황은 복건성 일대에 민중군(閩中郡)을 설치하면서 요와 무제는 왕위에서 폐위당하고 군장에 임명되었다.

반진전쟁이 발발하자, 요와 무제는 제후들을 이끌고 파양령 오예에게 합세해 진나라에 맞섰다. 그러나 항우의 18제후왕 분봉에서 요와 무제는 왕에 임명되지 못하면서 초한전쟁 때는 유방의 편을 들었다. 초한전쟁이 종결된 이듬해인 기원전 201년, 요는 해양후에 봉해졌다.

기원전 192년, 유방의 아들 혜제(전한)로부터 ‘민군(閩君) 요(搖)의 공이 크다.’면서 동해왕(東海王)으로 봉해지면서 동구가 세워졌다.

요는 동구(東甌)[2]를 수도로 삼았고, 세간에서 요는 동구왕(東甌王)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2.2. 전한 시기[편집]


오초칠국의 난 당시 동구는 민월과 달리 유비(오왕)의 편을 들었다. 유비가 패배하면서 전세가 기울자 동구는 한나라에게 뇌물을 받고 유비를 단도(丹徒)로 유인해서 살해했고, 이 덕분에 봉국이 폐지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오왕 유비의 아들 자구(子駒)는 민월로 망명했는데, 동구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것을 원망하면서 민월왕을 부추겨 동구를 공격하도록 했다. 기원전 138년, 마침내 민월이 군사를 일으켜 동구를 공격해 수도를 포위했다. 동구는 한나라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한나라는 중대부 장조에게 군사를 주어 동구를 구원하도록 했다. 한나라군이 도착했을 때는 민월이 군대를 이끌고 본국으로 돌아가버렸고, 동구왕 망은 온나라를 바쳐 중국으로 옮겨가서 살 수 있도록 요청했다. 그렇게 동구왕 망이 이끄는 무리는 장강와 회수 사이에 거처하게 되었다.[3]


3. 역대 국왕[편집]


대수이름재위기간비교
초대요(搖)기원전 192년 ~ ?초대 국왕
말대망(望)? ~ 기원전 138년한나라에 투항

초대, 말대를 제외한 동구왕은 알려지지 않았다. 오초칠국의 난 당시 동조한 동구왕의 이름도 불명이며, 요나 망과 동일인인지 별개인물인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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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날 원저우로 추정.[2] 오늘날 원저우 일대다.[3] 공교롭게도 약 28년 후 전한에게 멸망당한 민월의 백성들도 장강과 회수 사이의 지역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