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 CF/라 노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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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문서: 레알 마드리드 CF/UEFA 챔피언스 리그
2001-02 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의 3번째 시즌이자 창단 100주년을 맞게 되었다.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은 FC 바르셀로나의 루이스 피구를 영입하며 시작했던 '갈락티코스' 정책을 이어가기 위해 프랑스 국가 대표이자 유벤투스 FC의 에이스인 지네딘 지단을 당시 세계 최고의 이적료였던 7600만 유로에 영입, 이전 시즌 4강[1] 에서 떨어져 실패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다시 노리게 된다.
하지만 시즌에 들어서 리그에서는 발렌시아 CF와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가 선전하며 혼돈 상태에 빠졌다. 결국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각각 3, 4위를 기록하였고 발렌시아가 우승, 데포르티보가 준우승을 거두어 타이틀을 얻는 데 실패하였다. 또한 코파 델 레이 역시 결승에서 데포르티보를 상대로 1-2로 패배하면서 준우승에 머무는 바람에 남은 것은 챔피언스 리그뿐인 상황에 이르렀다. 심지어 코파 델 레이 결승전은 레알 마드리드의 창단일인 3월 6일에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렸기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로서는 완벽한 100주년 잔치를 놓친 셈이었고,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 리그 1차 조별리그와 2차 조별리그에서는 무난히 1위를 차지하며 8강에 진출하였으나, 상대는 전 시즌 자신들을 탈락시켰던 숙적이자 디펜딩 챔피언인 FC 바이에른 뮌헨이었다. 그리고 뮌헨은 최근에 레알을 상대로 매우 강했기 때문에, 자신감에 넘쳐있었고 '레알이 지네딘 지단을 영입해도 결과가 달라질 건 없다'고 자만하였다.
그리고 100주년 결승행 티켓이 걸린 4강전 상대는, 운명의 장난인지 최고의 숙적 FC 바르셀로나로 결정되었고 41년 만에 챔피언스 리그에서 '엘 클라시코'가 성사되었다.[2]
결승전 상대는 바이어 04 레버쿠젠이었다. 레버쿠젠은 8강에서 리버풀 FC, 4강에선 알렉스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그러나 경기는 전반이 종료되기 직전에 카를루스가 올린 크로스를 지네딘 지단이 멋진 왼발 발리 슛으로 연결, 지금까지도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최고의 골이자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고의 골로 꼽히는 골을 터트리며 팀의 리드를 되찾아왔다.
지네딘 지단의 골이 터진 뒤, 전반이 종료되고 기세가 꺾일 법도 했던 레버쿠젠은 혼신의 힘을 다해 맹공격을 퍼부었고, 거세지는 경기 속에 급기야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 골키퍼 세사르 산체스가 후반 23분 부상으로 쓰러지자 부랴부랴 이케르 카시야스가 교체 투입되었다. 하지만 카시야스는 남은 시간 동안 미하엘 발락, 올리버 뇌빌 등 당시 분데스리가에서 최고로 평가받았던 레버쿠젠 선수들이 쏟아낸 무수한 슈팅들을 엄청난 선방으로 막아내 팀의 리드를 지켰다. 세사르의 갑작스러운 부상은 이날 경기 최대의 변수였다는 점에서 카시야스의 선방은 매우 값진 활약이었다. 결국 스코어 2-1로 레알 마드리드가 레버쿠젠을 꺾고 승리를 거두었다. 카시야스는 당시의 맹활약을 발판 삼아 레알 마드리드의 간판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1. 소개[편집]
레알 마드리드 CF의 아홉 번째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인 2001-02 시즌, 일명 '라 노베나'의 우승 과정을 서술하는 문서이다.
2. 배경[편집]
2001-02 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의 3번째 시즌이자 창단 100주년을 맞게 되었다.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은 FC 바르셀로나의 루이스 피구를 영입하며 시작했던 '갈락티코스' 정책을 이어가기 위해 프랑스 국가 대표이자 유벤투스 FC의 에이스인 지네딘 지단을 당시 세계 최고의 이적료였던 7600만 유로에 영입, 이전 시즌 4강[1] 에서 떨어져 실패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다시 노리게 된다.
하지만 시즌에 들어서 리그에서는 발렌시아 CF와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가 선전하며 혼돈 상태에 빠졌다. 결국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각각 3, 4위를 기록하였고 발렌시아가 우승, 데포르티보가 준우승을 거두어 타이틀을 얻는 데 실패하였다. 또한 코파 델 레이 역시 결승에서 데포르티보를 상대로 1-2로 패배하면서 준우승에 머무는 바람에 남은 것은 챔피언스 리그뿐인 상황에 이르렀다. 심지어 코파 델 레이 결승전은 레알 마드리드의 창단일인 3월 6일에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렸기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로서는 완벽한 100주년 잔치를 놓친 셈이었고,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3. 1차 조별리그[편집]
3.1. 1차전[편집]
3.2. 2차전[편집]
3.3. 3차전[편집]
3.4. 4차전[편집]
3.5. 5차전[편집]
3.6. 6차전[편집]
4. 2차 조별리그[편집]
4.1. 1차전[편집]
4.2. 2차전[편집]
4.3. 3차전[편집]
4.4. 4차전[편집]
4.5. 5차전[편집]
4.6. 6차전[편집]
5. 8강[편집]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 리그 1차 조별리그와 2차 조별리그에서는 무난히 1위를 차지하며 8강에 진출하였으나, 상대는 전 시즌 자신들을 탈락시켰던 숙적이자 디펜딩 챔피언인 FC 바이에른 뮌헨이었다. 그리고 뮌헨은 최근에 레알을 상대로 매우 강했기 때문에, 자신감에 넘쳐있었고 '레알이 지네딘 지단을 영입해도 결과가 달라질 건 없다'고 자만하였다.
5.1. 1차전[편집]
- 경기 결과
5.2. 2차전[편집]
- 경기 결과
6. 4강[편집]
그리고 100주년 결승행 티켓이 걸린 4강전 상대는, 운명의 장난인지 최고의 숙적 FC 바르셀로나로 결정되었고 41년 만에 챔피언스 리그에서 '엘 클라시코'가 성사되었다.[2]
6.1. 1차전[편집]
- 경기 결과
그렇게 시작된 1차전에서 지네딘 지단이 선제골을 넣어 1:0으로 앞서갔고, 후반 종료 직전 스티브 맥마나만이 추가골을 넣으면서 원정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바르셀로나를 2:0으로 눌렀다. 이 경기는 레알 마드리드가 1983년 이후 캄 노우에서 19년만에 거둔 승리였다.
6.2. 2차전[편집]
- 경기 결과
7. 결승[편집]
결승전 상대는 바이어 04 레버쿠젠이었다. 레버쿠젠은 8강에서 리버풀 FC, 4강에선 알렉스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7.1. 단판전[편집]
- 경기 결과
Wow, fantastic. fantastic![3]
그러나 경기는 전반이 종료되기 직전에 카를루스가 올린 크로스를 지네딘 지단이 멋진 왼발 발리 슛으로 연결, 지금까지도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최고의 골이자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최고의 골로 꼽히는 골을 터트리며 팀의 리드를 되찾아왔다.
지네딘 지단의 골이 터진 뒤, 전반이 종료되고 기세가 꺾일 법도 했던 레버쿠젠은 혼신의 힘을 다해 맹공격을 퍼부었고, 거세지는 경기 속에 급기야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 골키퍼 세사르 산체스가 후반 23분 부상으로 쓰러지자 부랴부랴 이케르 카시야스가 교체 투입되었다. 하지만 카시야스는 남은 시간 동안 미하엘 발락, 올리버 뇌빌 등 당시 분데스리가에서 최고로 평가받았던 레버쿠젠 선수들이 쏟아낸 무수한 슈팅들을 엄청난 선방으로 막아내 팀의 리드를 지켰다. 세사르의 갑작스러운 부상은 이날 경기 최대의 변수였다는 점에서 카시야스의 선방은 매우 값진 활약이었다. 결국 스코어 2-1로 레알 마드리드가 레버쿠젠을 꺾고 승리를 거두었다. 카시야스는 당시의 맹활약을 발판 삼아 레알 마드리드의 간판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이로써 레알 마드리드는 9번째이자 창단 100주년을 기념하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하게 되었다.
7.2. 결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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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C 바이에른 뮌헨에게 합계 1-3으로 패해 탈락했다.[2] 이 시즌 이전 양 팀의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만남은 1960-61 시즌 1라운드로, 바르셀로나가 합계 4-3으로 승리했다.[3] 이 골이 터지자 소리친 해설자의 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