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의 대해적 - 첫 번째 이야기
[1]언제나 침략하는 쪽이었을 뿐, 침략 받은 적 없는 마계. 그런 마계는 여느 때처럼 풍요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계의 바다, 마해 또한 마찬가지다. 마해의 또 다른 이름이 괜히 황금해인 것이 아니다.
그런 마해의 패권을 두고 다투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로 인하여 마해는 대해적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두 명의 대해적의 등장으로 인해 세력권이 나뉘게 된 바다는 이제 위험천만한 모험이 가득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해적이란 깃발을 쓰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 그 산하에 들어가야만 했다. 하지만 바다에서 해적에게 기생하여 이윤을 챙기되 해적이 아닌 이들이 있었으니 '인양업자'가 그 좋은 예일 것이다.
"급보요! 급보! 인근에 강경파 대형 군함이 침몰했답니다!"
"강경파 대형 군함이라니 해적왕에게 당한 건가?"
"누구에게 당한 게 뭐가 중요해? 서두르자! 늦게 가면 국물도 못 챙길 테니! 닻을 올려라! 출항이다!!"
인양업자들은 경쟝하듯 출항하여 인근 해역을 뒤지고 다녔다. 해적과 해적, 해적과 해군. 또는 해군과 해군. 만났다 하면 죽어라 싸워대는 이들이 바다 위에 가득하니 침몰하는 배가 한 둘이 아니었다. 인양업자란 그렇게 침몰한 배를 건져내서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챙기는 이들로, 이른바 바다의 하이애나 같은 이들이었다.
『끼룩. 끼루루룩』
갈매기의 인도를 받아 해군함이 침몰했다는 장소에 도착한 인양업자는 둘 이었다. 나란히 선 두 척의 인양선. 이 동업자들은 의외로 순순하게 타결을 이끌어냈다.
"대형 군함이라면 충분히 우리 둘이서 나눠먹고도 남을 거야."
"괜히 우리끼리 다투다가 다른 경쟁자가 끼어들 틈을 주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자구."
"동감이야. 정확하게 5대 5."
"이의 없음. 좋아. 인양을 서두르자."
현장에서는 다른 인양선과 협력하는 일이 잦은 것인지 인양업자들은 숙련된 솜씨로 협력하여 인양작업에 들어갔다. 이마의 땀과 노고를 쏟기를 수시간. 마침내 침몰했던 군함이 수면으로 끌려 올라왔다. 하지만 그 자태를 드러낸 군함을 본 인양업자들의 얽울은 흙빛으로 흐려졌다.
"허억."
"이, 이건 대체? 배가.. 맞는 건가?"
그것은 배라고 부르기 힘든 몰골을 하고 있었다. 뒤틀리고 망가져서 다신 쓸 수 없는 용골만 남기고 갑판까지 모조리 뜯겨져 나간 그것은 마치 살을 깨끗이 발겨낸 '생선가시'와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독할 정도로 철저하게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았다. 한 푼이라도 될만한 구석이 있는 건 모조리 약탈당하고 그 찌꺼기만 남아 있는 것이다. 이 바다에서 이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은 단 하나뿐 이었다.
"타, 탐왕이다! 탐왕의 짓이야!"
"제기랄. 해적왕의 짓이 아니었다니? 어서 도망가자!"
인양업자들은 소란을 떨었다 하지만 상황을 파악하는 게 너무 늦어버렸다. 그들이 인양에 온 신경을 쏟고 있는 사이에 이미 탐왕의 해적선은 지척에 이르러 있었으니 말이다. 해적선은 두 인양선이 닻을 올리기도 전에 그 앞을 가로막고 섰다.
『솨아아아아』
탐왕, 루퍼스 골드오션은 코트를 펄럭이며 해적선 갑판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소라고동 조차도 금화 한 닢의 가치가 있다는 마계의 황금해답군요. 돈 될만한 건 모두 챙기고 버린 찌꺼기를 마끼로 썼을 뿐인데 이렇게 돈 될만한 배들이 알아서 찾아오다니 말입니다."
"으으윽."
안대를 쓴 루퍼스는 오직 왼쪽 눈으로만 세상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인양선 두 대를 훑어보는 그의 하나 남은 눈은 탐욕이 그득하다 못해 차 넘치고 있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는 두 인양선의 가치를 셈하고 있음이 틀림 없었다.
"제, 제독. 돈이라면 모두 넘기겠습니다. 부디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여러분의 목숨조차 돈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시고 하는 말씀은 아니겠지요?"
돈을 쫓아서 이곳 마계에 정착한 명계 출신 저승사자다운 발언이었다. 괜히 탐욕의 왕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으아아아, 제기랄!"
『타-앙』
인양업자 중 한 명이 발작하듯 총을 꺼내어 루퍼스를 향해 쐈다. 일부러 노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총알은 사각이 분명한 오른쪽에서 날아들었다. 하지만 여유 있게 피한 루퍼스. 동시에 그의 양손이 허리춤에서 교차하는 가 싶더니 어느새 그의 아이투스가 불을 뿜었다.
『타당, 탕』
"크억!"
"괜히 총알 낭비시키지 마십시오. 이것도 다 돈입니다."
해적선의 선원들은 루퍼스의 얘기를 듣고는 막 꺼내 들던 총을 다시 허리춤에 꽂아 넣었다. 대신 그들의 손에는 칼이 쥐어졌다. 그런 수하들의 모습을 보며 루퍼스는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탐왕의 무언의 수락이 떨어지자 해적들은 인양선으로 뛰어들어 닥치는 대로 약탈을 시작했다. 인양업자들의 목숨 또한 그들의 취급품 중 하나였다.
"아아악!"
칼침을 맞고 비명횡사한 이들은 죽은 뒤 다시 한 번 루퍼스와 대면해야 했다. 이번엔 대해적 루퍼스 골드오션으로서가 아니라 명계의 사자로서의 루퍼스와 말이다. 루퍼스는 싱글거리며 이제 막 영체가 된 이들을 맞이했다.
"황도천을 건너 명계로 가시려면 뱃삯을 내야 합니다. 물론, 가지고 계신 건 아무것도 없겠죠?"
"......"
인양업자를 두고 바다의 하이애나라 한다. 그렇다면 목숨을 약탈하여 그 영혼마저도 이용하려는 그는 대체 무엇이라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