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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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이름은 '파터란트'(Vaterland)로, 독일 제국이 청나라 양쯔강에서 운용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중 중화민국이 접수한 건보트. 중화민국에 소속된 이후의 이름이 리수이(利綏)[2] 이며, 이후 일본 제국에 노획되어 만주국에 넘겨졌고, 만주국 붕괴이후 소련이 접수했다는 기록이 마지막이다.
자매함으로는 함께 양쯔강에 배치되었던 칭다오(Tsingtau)가 있는데, 칭다오는 1917년 3월 21일 양쯔강에 자침되었다.
포함외교의 일환으로 독일 제국의 힘을 과시하기위해 독일 동양함대(Ostasiengeschwader)에 소속되어 청나라 양쯔강에 배치되어있는 동안 파터란트는 둥팅호(洞庭湖)와 포양호(鄱阳湖)까지 항해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난징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에서 교전국의 접근을 막기위해 독일 제국의 페이퍼 컴퍼니에 매각시킨 뒤 란데스파터(Landesvater)로 개명해 군함이 아닌 것처럼 위장시켰으며, 이후 중국군[3] 이 입수하여 리수이(利綏)로 개명되었다.
리수이와 함께 송화강에 배치되었던 건보트 리지에.
리수이로 개명된 파터란트는 함께 중국에 접수되어 리지에(利捷)로 개명된 건보트 아터(Otter)와 함께 만주 송화강에서 주둔하다 적백내전 중인 1920년 3월 13일, 하바롭스크 지방 니콜라옙스크나아무레(Никола́евск-на-Аму́ре)에서 발발한 니콜라옙스크 사건당시 적군에 가담하여 해당 지역에 주둔중인 일본군을 향해 함포사격을 가해 일본군의 병영을 파괴했다.
이후 만주사변이 일어난 1932년 2월 15일, 리수이는 하얼빈에서 일본군에게 노획되었다.
일본군에 노획된 이후 1932년, 만주국이 건국되자 리수이는 만주국 해군의 함선이 되었다. 만주국 소속 시기에는 육전대 병력을 싣고 아무르 강 일대를 순찰하며 비적들과 교전을 벌이는 등의 활동을 하였고, 1941년에는 연습함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후 1942년 제적되었다고 하나, 만주국 붕괴 이후인 1945년 8월 22일에 소련군에 노획되어 페킨(Pekin)으로 개명된 뒤 연습함으로 사용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이후의 자료가 부족하여 실제로 소련군에 노획되었는지는 불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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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원[편집]
2. 개요[편집]
본래 이름은 '파터란트'(Vaterland)로, 독일 제국이 청나라 양쯔강에서 운용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중 중화민국이 접수한 건보트. 중화민국에 소속된 이후의 이름이 리수이(利綏)[2] 이며, 이후 일본 제국에 노획되어 만주국에 넘겨졌고, 만주국 붕괴이후 소련이 접수했다는 기록이 마지막이다.
자매함으로는 함께 양쯔강에 배치되었던 칭다오(Tsingtau)가 있는데, 칭다오는 1917년 3월 21일 양쯔강에 자침되었다.
3. 함생[편집]
3.1. 독일 제국 소속(1903년~1917년)[편집]
포함외교의 일환으로 독일 제국의 힘을 과시하기위해 독일 동양함대(Ostasiengeschwader)에 소속되어 청나라 양쯔강에 배치되어있는 동안 파터란트는 둥팅호(洞庭湖)와 포양호(鄱阳湖)까지 항해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난징에 계류되어 있는 상태에서 교전국의 접근을 막기위해 독일 제국의 페이퍼 컴퍼니에 매각시킨 뒤 란데스파터(Landesvater)로 개명해 군함이 아닌 것처럼 위장시켰으며, 이후 중국군[3] 이 입수하여 리수이(利綏)로 개명되었다.
3.2. 중화민국 소속(1917년~1932년)[편집]
리수이와 함께 송화강에 배치되었던 건보트 리지에.
리수이로 개명된 파터란트는 함께 중국에 접수되어 리지에(利捷)로 개명된 건보트 아터(Otter)와 함께 만주 송화강에서 주둔하다 적백내전 중인 1920년 3월 13일, 하바롭스크 지방 니콜라옙스크나아무레(Никола́евск-на-Аму́ре)에서 발발한 니콜라옙스크 사건당시 적군에 가담하여 해당 지역에 주둔중인 일본군을 향해 함포사격을 가해 일본군의 병영을 파괴했다.
이후 만주사변이 일어난 1932년 2월 15일, 리수이는 하얼빈에서 일본군에게 노획되었다.
3.3. 만주국 소속(1932년~1942년/1945년?)[편집]
일본군에 노획된 이후 1932년, 만주국이 건국되자 리수이는 만주국 해군의 함선이 되었다. 만주국 소속 시기에는 육전대 병력을 싣고 아무르 강 일대를 순찰하며 비적들과 교전을 벌이는 등의 활동을 하였고, 1941년에는 연습함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후 1942년 제적되었다고 하나, 만주국 붕괴 이후인 1945년 8월 22일에 소련군에 노획되어 페킨(Pekin)으로 개명된 뒤 연습함으로 사용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이후의 자료가 부족하여 실제로 소련군에 노획되었는지는 불명이다.
4. 참고문헌[편집]
- http://www.geocities.jp/tokusetsukansen/M/101/M101_005.htm
- https://de.wikipedia.org/wiki/SMS_Vaterland
- http://60-250-180-26.hinet-ip.hinet.net/theme/theme-29/29-index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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