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바라 츄지

덤프버전 :

파일:신센구미마코토.png
신센구미

[ 펼치기 · 접기 ]
국장 · 국장 보조
국장
곤도 이사미
총장
야마나미 케이스케
참모
이토 카시타로
부장
히지카타 토시조
군사
타케다 간류사이
조장
1번대
오키타 소지
6번대
이노우에 겐자부로
2번대
나가쿠라 신파치
7번대
타니 산쥬로
3번대
사이토 하지메
8번대
토도 헤이스케
4번대
마츠바라 츄지
9번대
스즈키 미키사부로
5번대
타케다 간류사이
10번대
하라다 사노스케
감찰 · 회계
감찰
야마자키 스스무 · 핫토리 타케오 · 요시무라 칸이치로 · 시노하라 타이노신
제사취조역 및 감찰
시마다 카이 · 오이시 쿠와지로
회계
카와이 키사부로
미부 로시구미 시절 인물
국장
세리자와 카모 · 니이미 니시키




신센구미 4번대 조장
마츠바라 츄지
松原忠司

출생
1815년
하리마국 가토군 (現 효고현 오노시)
사망
1865년 10월 20일 (향년 50세)
야마시로국 교토 (現 교토부 교토시)
재임기간
신센구미 4번대 조장
1864년 ~ 1865년

1. 개요
2. 생애
3. 사망



1. 개요[편집]


신센구미의 4번대 조장.

2. 생애[편집]


하리마 국의 오노 번 번사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하지만 그의 이력은 확실치가 않은데, 신센구미 동료들의 회고에서조차 오사카의 낭인이나 혹은 하리마 국 출신일 것이라는 추측에 그치기 때문이다. 안세이 연간에서는 번에서 탈퇴한 후, 오사카에서 세키구치류유술(関口流柔術) 도장을 열었다고 전해진다.

분큐 3년(1863년) 5월, 신센구미의 전신인 미부로시구미에 입대. 8월 18일의 정변 때 민머리에 하얀 띠를 묶고 큰 나기나타를 든, 흡사 무사시보 벤케이와 비슷한 용모를 한 채로 궁궐 남문을 수비하여 이마벤케이(今弁慶)라는 별명을 얻었다. 겐지 원년(1864년), 이케다야 사건에서 부대를 이끌고(혹은 토시조의 부대에 속하여) 전공을 세워 막부로부터 포상금 15냥을 하사받았다. 게이오 원년(1865년) 4월, 신센구미 조직 개편으로 4번대 조장 겸 유술사범이 되었다.[1] 그래서 검술보다는 유술을 선호했다. 그러나 같은 해, 어떤 이유로 인하여 할복하였으나 미수에 그쳤고, 그 여파로 평대원으로 격하하고 만다. 결국 할복했을 때 생긴 상처가 곪아서 병사하고 만다.


3. 사망[편집]


그가 할복한 이유는 여러가지 설들이 있었는데, 그가 신센구미 둔소 근처에 자신이 죽인 낭인의 미망인을 애인으로 두고 있던 것이 히지카타 토시조에게 알려져 엄하게 혼이 난 뒤, 간부로서의 책임감을 느껴 할복하려 했으나 실패했다는 설도 있다.[2] 이 이야기는 둔소였던 야기 저택의 주인 야기 다메사부로가 시노하라 다이노신과 사이토 하지메로부터 들은 것이다. 시모자와의 간이 이를 미부 동반자살(壬生心中)로 재구성하였으나 사실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7 01:06:59에 나무위키 마츠바라 츄지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여담으로 미부촌(味生村)에서 친절한 사람은 야마나미와 마츠바라였다고 전해질 정도로 대사들에게 상냥했다.[2] 그 외에도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곤도, 히지카타 일행들과 사이가 나빠져, 어느 날 첩과 함께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