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디(메멘토 모리)

죽음이라는 운명 앞에선 나는 무력하다.
죽어가는 목숨 앞에서도 나는 방관자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도 딱 한 가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이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안식을 지키는 일.

그것이 묘지기의 일이라고 나는 배웠다.
맞아, 우리 아빠도 묘지기였어.

나와 아빠, 그리고 반려견 라일라.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마을에서
우리들은 함께 살고 있었다.

엄마는 날 낳았을 때 죽었대.
하지만 아빠는 말수가 적고, 손재주도 없고,
요리도 빨래도 모든 게 서툴렀다.
그래서 내가 전부 대신하게 되었다.

그 덕분이랄까, 내가 돌봐주는 걸 좋아하는건,
묘지기는 불길하다는 둥 하면서
마을 사람들은 우리들을 피했지만
별로 상관없었다.

왜냐면 이쪽은 이쪽 나름대로
즐겁게 지내고 있거든.

여름의 끝자락에 라일라가 죽었다.
수명이 다했다고, 아빠는 말했다.

나는 라일라가 숨을 거둘 때까지
계속 끌어안고 있었다.

그러니까... 갑자기 몸이 묵직하게 무거워지면서
손안에서 소중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그 느낌은
지금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다음날 나는 라일라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편히 잠들 수 있도록

아마도 그때
나는 진짜 묘지기가 되었던 것 같다.

역병이 마을을 덮친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하나둘 쓰러져 가는 마을 사람들
옮는 게 무섭다면서 시체를 그대로 방치해 둔다.

아빠는 모두에게 버림받은 그들을
혼자서 땅속에 묻어 나갔다.

내겐 손도 대지 못하게 하고선 홀로.

결국 아빠도 그 병에
걸려서 죽었다.

아빠를 땅속에 묻으면서
나는 이해했다.

죽음이라는 운명 앞에선 인간은 무력하다고.

그리고 며칠이 지나
이번에는 나도 병에 걸렸다.

고열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나는
집 밖을 누군가가 에워싸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
다.

신부가 이끌고 온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이다.

이 역병이 '죽음을 다루는' 묘지기 때문이라고,
아빠와 내가 역병을 퍼뜨렸다고 화내면서
금방이라도 덮쳐올 기세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무섭지는 않았다.
어느 쪽이든 분명 머지않아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으니까.

몽롱한 의식 속에서 나는 어디선가
개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알아챘다.
잘못 들을 리 없는 그리운 소리.

라일라...?
마중 나와 준 거야...?

기억하고 있는것은 거기까지.

정신을 차렸을 땐
나는 홀로 묘지에 서 있었다.
게다가 머리에는 본 적도 없는 것까지 자라나 있
다.

왠지 모르겠지만 가까이에서
라일라의 온기가 느껴지면서 나는 조용히 웃었다.

집을 에워싸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이미 달아난 뒤였다.

남겨진 것은 조금 전까지 마을이었던 폐허와
매장되지 않은 시체뿐이다.

이제 아무도 올 리 없는 마을,
완전히 잊혀갈 사람들.
누가 그들을 배웅할 것인가.
누가 그들의 안식을 지킬 것인가.
아빠라면 어떻게 할까.

뭘 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묘지기의 일을 하자.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아니,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천둥번개 구름으로 뒤덮이고 나서
매일같이 우르르 쾅쾅!
이 근처도 엄청 시끄러워졌어.
이래선 다들 편히 잠들지 못하겠지.
그리고 보니 어느 나라의
영주님이 저주를 풀고 다닌대.
분명 거기에 가면
나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거야.

왜냐하면 묘지기에 마녀인 건
나 정도 밖에 없잖아?
걱정할 필요 없어, 라일라도 함께니까.

갔다 올게요, 아빠, 모두들.
돌아와서 경험했던 이야기들 잔~뜩 들려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