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용단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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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작중 행보
2.1. 청년기
2.2. 중년기
2.3. 노년기
2.4. 진실
3. 평가
4. 무공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모용단죽(慕容丹竹)은 무협소설 군림천하의 등장인물이다. 통칭 '모용대협'. 1권 시점 연령은 70대 후반으로 추정. 좌무기, 아난대활불, 야율척 등 중원무림을 위협하는 초고수들을 연이어 격파하여 천하제일고수로 추앙 받고 있다.

2. 작중 행보[편집]




2.1. 청년기[편집]


본명은 모용청(慕容淸). 모용세가의 방계(傍系) 혈족으로, 본래 모용세가에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던 인물이었다. 허나 무공에 대한 재질은 어려서부터 천부적이었다. 16세 무렵 우연히 심각한 상처를 입고 있는 한 노인을 발견하여 치료했고, 그 노인은 보답의 의미로 몇 가지 무공비급과 한 개의 미인상을 그에게 건넨다.

이후 모용세가를 떠나 깊은 산속에 거처를 정하고 18세때부터 10년간 노인에게 전수받은 무공에 매진했다. 28세가 되던 해, 중원무림은 혈마 좌무기의 혈겁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홀연히 강호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황산의 천도봉에서 일주야(一晝夜)에 걸친 혈투 끝에 좌무기의 목을 베어 단숨에 백년 내 최고의 고수로 공인받게 된다. 이후 10여 년간 크고 작은 수십 차례의 싸움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고, 강호인들은 그에게 검성(劍聖)이라는 별호를 붙여주며 추앙했다.

2.2. 중년기[편집]


모용세가를 떠나 구궁보를 세우고 칩거하던 중 서장 밀교의 중원 침투가 시작되자 중원의 수호자로 서장 고수들과의 싸움에 최전선에 선다. 서장 사상 최고수 아난대활불과의 세 차례에 걸친 결전을 통해 천하를 경동시켰다. 첫 대결에서 간발의 차이로 패배한 아난대활불은 10년 후를 기약하였고, 10년 후 이루어진 재전에서도 접전끝에 모용단죽이 승리했다. 다시 10년이 지나 벌어진 세 번째 대결에서도 승자는 모용단죽이었으나 아난대활불과 동행한 제자는 조용히 둘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2.3. 노년기[편집]


아난대활불과의 마지막 대결이 지나고 10년 후 그의 제자인 야율척과 또 한번의 격전을 치른다. 경미한 차이로 승리를 거뒀으나 야율척의 나이가 본인의 절반에 불과한 것을 알고 다음 대결에서 야율척을 당해내기 힘들 것임을 직감했다. 이후 손자 모용봉(慕容峯)을 차세대 천하제일고수로 키우는데 주력했다.

작중시점으로 1권 이후부터 서장이 다시 한 번 중원을 침공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석상에 모습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다. 무림맹 집회는 물론 모용봉이 야율척에게 굴욕에 가까운 패배를 당할 때도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2.4. 진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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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구했던 노인의 정체는 천룡객 석동. 그에게 받은 것은 태을검선의 유진인 천양신공과 취와미인상. 사실상 명문정파의 무공을 도둑질한 셈이 되었기에 그의 무공의 연원에 대해서 외부에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며, 모용세가와는 관계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천양신공이 전 무림에서 가장 강한 양강지기인 대신 부작용으로 체내의 모든 양기를 고갈시켜 남성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없게 만들기에 결혼도 하지 못했고 후사도 남기지 못했다. 천양신공을 대성하면 이러한 결점이 해결되지 않을까 기대를 품었지만 끝내 결점을 해결하지 못한채 노년을 맞이했다. 세간에는 모용봉이 손자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무공을 전수하기 위해 본가에서 입양한 수양 손자이다.

작중 시점에서 행방이 묘연한 이유는 조익현(趙益玄)을 피해 빤스런(...)을 했기 때문. 스승 석동의 매형이자 라이벌인 조익현은 석동과 마찬가지로 천양신공과 취와미인상의 검초를 익히고 있었다. 둘 사이의 승부가 쉽사리 나지 않자 그들의 싸움이 제자들의 싸움으로 번진다. 아난대활불은 조익현의 대제자. 다시 말하자면 모용단죽과 아난대활불의 싸움은 중원무림과 서장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석동과 조익현의 대리전에 가까웠다.

아난과의 대결은 모용단죽의 승리로 끝났지만 석동과 조익현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고 둘의 싸움이 양패구상으로 끝나자 둘 중 누가 먼저 회복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리게 되었다. 심각한 내상을 입은 석동에 비해 빠른 회복을 보인 조익현은 석동이 행방을 감추자 구궁보에 찾아가 그의 행방을 찾았고 조익현을 당해낼 수 없다고 본 모용단죽은 그를 피해 인적이 드문 낙양 근교의 산골짜기로 달아났다. 이때가 모용봉과 야율척의 대결이 있기 수 개월 전으로 추정된다.

은둔 생활에 들어간 이유는 조익현을 꺾을 후계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때마침 석동이 천양신공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연구하던 중 천양신공의 원류가 되었던 무공인 구양신공을 복원하는데 성공한다. 구양신공을 사용할 수 있다면 칠음진기를 지닌 여성과 함께 절세의 합격진 음양쌍반진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이를 통해 조익현을 물리치고자 하는 계획을 세운다. 4년간의 은둔 생활 끝에 그의 앞에 진산월이 나타났고 영문도 모른채 그의 앞에 안내된 진산월에게 모용단죽은 모든 진실을 이야기한다.

3. 평가[편집]


천하제일고수가 아니라 천하제일쫄보였다.

우선 천하제일고수가 아니었다. 조익현과 석동보다 한 수 아래이며 이제는 야율척보다도 약할 수밖에 없는 설정이다. 그의 눈물 나는 위상 하락은 진산월에 대한 묘사에서 엿볼 수 있는데, 매장원과 양천해를 격파한 이후 한동안 진산월은 '검성 모용단죽에 비교할 만하다.'라는 평가였다. 그리고 28권에서 복양수와 진산월의 일전을 본 야율척은 진산월과 모용단죽의 비교를 논하는 이북해의 "확실히 그런 것 같군. 이런 식이라면 몇 년 내로 모용 대협에 필적할 만한 고수가 될지도 모르겠는걸." 라는 말에 "그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 라고 답했고, 이북해가 이어서 "그렇지. 신검무적의 무공이 앞으로도 이런 속도로 발전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말일세." 라고 말하자 "아니면 이미 그런 경지에 도달해 있는지도 모르고." 라고 다소 묘한 답을 했다. 이에 이북해가 놀라며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자네는 두 가지 경우 중 후자에 더 비중을 두는 것 같군." 이라고 말하자 부정하지 않으며 진산월의 심계를 칭찬했다.[1] 그리고 35권에서 천산이괴 궁해의 입을 통해 '신검무적이 모용단죽보다 강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말이 나오며 결국 약관의 진산월보다도 낮은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으며, 아예 명성만 따지면 모용단죽을 능가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진산월이 교리와의 첫 대면에서 교리의 강력한 무형지기를 접하고 그에 준할만한 자신이 아는 세 명의 최고수를 이야기했는데, 그 셋은 조익현, 석동, 야율척으로 모용단죽은 여기서 빠져있다. 심지어 진산월은 석동의 얼굴조차 본 적이 없다.[2]

빤스런과 은둔 생활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받기 힘들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조익현이 두려워 달아난 것은 동정의 여지가 없지 않으나 그로 인해 주변인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손자인 모용봉은 조익현에게 취와미인상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으며 가짜 모용단죽의 존재를 들킬까봐 구궁보에 방문하는 모용단죽의 옛 지인들인 강호 명숙들을 몰래 암살하기에 이른다. 후홍지의 조부 후관일과 부친 후천송은 이런식으로 살해되었으며 무림 명숙들의 실종과 살해에 대해 진상을 파악하려던 유중악 일행은 본인에 대한 의혹 추궁을 중단시키고자 한 모용보의 흉계로 인해서 구궁보 암살 사건의 범인으로 무고당해서 모든 명예를 잃었으며 이후 이들에 대한 살인멸구까지 행해져서 몇 명은 사망하기까지한다.

자타공인 무림제일고수라는 사람이 상대방과 주먹 한 번 겨뤄보지 못하고 도망친 것도 문제지만,70대 노인이 100세 넘은 노인을 상대로 도망을 칩니다 그를 극복하기 위한 최후의 한 수가 합격진인 것 역시 볼썽사납다는 평. 합격진으로 조익현을 물리칠 요량이었으면 처음부터 석동과 둘이서 조익현을 상대해도 됐을 것이다. 아직 작품이 완결되지 않았지만 최종보스 1순위 야율척에게는 이미 모용봉과 세트로 적 취급도 못받고 있다. 전풍개 조손 못지 않은 처참한 몰락이며 게다가 고자가 되어버렸으니... 완결 전에 얼마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드는 상태이다.

즉 이러저러한 이유로 인해 무갤에서는 의손인 모용봉과 함께 미친듯한 조롱과 까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나름대로 이해의 여지가 있긴 하나 그래도 조익현에게 쫄아서 도망쳤다는 사실은 변함없으며, 천양신공으로 인해 고자가 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조롱받고 있고, 천양신공의 소유권에 대해서도 종남파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였고 당시 종남파는 문파의 가치를 잃었다고 변명하며 소유권 일체에 대해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4. 무공[편집]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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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대목은 상당히 의미가 있는게, 여태까지 진산월과 모용단죽과의 비교는 다들 강호에 퍼진 명성을 통한 비교였다. 즉 오래 전에 활동하고 현재 은거에 접어든 모용단죽과 한창 떠오르는 진산월과의 명성을 비교해 나온 내용인지라 실제 실력은 다소 차이가 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는 것이다. 당장 군림천하에는 '강호에 퍼진 명성은 이러하지만 실제 실력은 명성보다 더 대단하다, 명성만큼은 아니다' 라는 식의 묘사가 상당히 많다. 그러나 이 경우는 바로 모용단죽과 사력을 다해 싸운 그 야율척이 직접 보고 내린 평가이므로 앞서 말한 식의 오차가 발생한 확률이 거의 없다. 하물며 저때 아율척이 본 진산월은 검정중원을 봉인하고 싸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야율척은 진산월과 모용단죽 사이의 비교에 대해 누구 한 쪽이 우위라고 딱 잘라 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이를 볼때 28권 시점에서도 모용단죽과 진산월과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2] 정확하게 말하자면 천봉궁의 총관인 차복승이 석동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것이 확정된다면 진산월은 석동을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