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아누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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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로마 제국의 카이사르. 256년 조부 발레리아누스와 아버지 갈리에누스에 의해 카이사르에 지명되어 도나우 전선으로 보내졌으나 258년 의문사했다.
2. 행적[편집]
갈리에누스와 코르넬리아 살로니나의 장남으로, 할아버지 발레리아누스와 동일한 이름이 부여되었다. 남동생으로 살로니누스와 마리니아누스가 있었다. 255년 8월, 발레리아누스는 라인 전선 방면 로마군을 이끌고 이탈리아로 진군해 아이밀리아누스를 꺾고 황위에 오른 뒤 장남 갈리에누스를 공동 황제로 삼았다. 그 후 발레리아누스는 소아시아, 시리아, 이집트 등 동방을 맡았고, 갈리에누스는 갈리아, 히스파니아, 브리타니아, 이탈리아, 아프리카 등 서방을 맡았다.
256년, 그는 조부와 아버지에 의해 카이사르에 지명된 뒤 도나우 전선 관리를 맡았다. 고고학자들은 발칸 반도에서 그가 도로와 교량 재건 작업을 진두지휘한 사실을 밝힌 비문을 여러 개 발견했다. 이 비문들에는 그를 프린캡스 유벤투티스(Princeps iuventutis)라고 명시했다. 또한 리키니우스 왕조의 영속을 기원하고자 그의 초상화를 실은 주화가 다량 발견되었다.
258년을 끝으로 그의 주화 생산이 돌연 중단되었는데, 아마도 이때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고대 사료에서는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명시하지 않았다. 많은 학자들은 258~260년 사이에 발칸 반도에서 반란을 일으킨 잉게누우스가 그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만, 역사가 데이비드 포터는 발레리아누스 2세와 잉게누우스의 반란은 큰 관련이 없으며, 260년 발레리아누스가 사산 왕조의 샤푸르 1세를 상대로 에데사 전투를 치르다가 사로잡히면서 로마 세계가 대혼란에 휩싸인 틈을 타 반란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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