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준(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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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위 추봉 후작 舞陽亭侯 | 무양정후 | |
서진 추존 존령 潁川府君 | 영천부군 | |
묘호 | 없음 |
시호 | 무양정후(舞陽亭侯) → 영천부군(潁川府君) |
생몰 | 113년 ~ 197년 (향년 84세) |
신체 | 197cm, 115cm(허리 둘레) |
성 | 사마(司馬) |
휘 | 준(儁) |
자 | 원리(元異) |
부친 | 예장부군 |
모후 | 불명 |
정실 | 불명 |
1. 개요[편집]
후한 말기의 인물로 사마량의 아들이며 사마방의 부친, 사마의의 조부, 사마소의 증조부, 사마진을 세운 사마염의 고조부다. 사례 하내군 온현 사람.
2. 생애[편집]
기록에 따르면 학식이 넓고 고대의 유풍을 좋아했으며 신장이 8척 3촌[1]
당시 척인 23.7cm로 계산하면 197cm가 나온다.
현재 기준으로 계산하면 115cm 정도이다.
낙양령을 지내면서 주변 호족들과 수도에서는 그를 와호(臥虎)라고 불렀으며, 영천태수까지 이르렀고 이후에는 197년에 사망했다.
3. 사후[편집]
조위에서 무양정후(舞陽亭侯)로 추존했다가 266년, 사마염이 서진을 건국하자 영천부군(潁川府君)으로 격상되어 칠묘에 안치되었다.
사마예가 진나라 황실의 혼란을 거쳐 건강에서 황실을 재건하고 동진을 건국하면서 회제를 복권시키기 위해 영천부군의 묘위를 제거했다가 온교의 건의로 묘위를 다시 세웠다.
사마예의 손자인 성제 때에 이르러서는 8대조이기 때문에 철거되면서 이후로는 다시 세워질 일이 없어야 했지만, 사마예의 또다른 아들인 간문제가 즉위하면서 묘위가 다시 세워지기도 했다.
4.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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