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배압(고려 거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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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제3차 원정군 총대장
소배압
蕭排押


캐릭터
지위
도통 (프롤로그, 4 ~ 32회)
가족
승천태후 (장모 & 고모)
야율융서 (처남 & 고종사촌동생 & 사위)
등장회차
프롤로그, 2회, 4회 ~
배우
김준배

1. 개요
2. 작중 행적
2.1. 1회
2.2. 2회
2.3. 4회
2.4. 5회
2.5. 6회
2.6. 7회
2.7. 8회
2.8. 9회
2.9. 10회
2.10. 11회
2.11. 12회
2.12. 13회
2.13. 14회
2.14. 15회
2.15. 16회
2.16. 17회
2.17. 18회
2.18. 19회
2.19. 20회
3. 인간관계
4. 묘사
5. 총평
6. 어록



1. 개요[편집]



[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

현종에게 현명하고 영민한 신하 강감찬이 있다면, 야율융서에게는 전장과 상대를 꿰뚫고 있는 소배압이 있다. 고려와 거란의 늙은 두 장군은 귀주대첩에서 다시 마주한다.




KBS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의 등장인물. 배우 김준배가 맡았다. 본작의 중간 보스[1]로, 클라이막스가 될 귀주대첩에서 강감찬과 대결을 펼친다.

강감찬과 직접 충돌하는 상당히 큰 역할을 부여받아서인지, 드라마의 메시지를 요약하고 있는 오프닝에서 고려를 침략한 거란족을 대표하는 인물로 요 성종 야율융서 대신 등장해 강감찬과 대면한다.

2. 작중 행적[편집]



2.1. 1회[편집]


프롤로그에서 강감찬과 대결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검차로 돌격해오는 고려군을 보병들로 저지한 뒤 역습을 가해 고려 본대가 사각방진으로 수비에 치중하게 만든다.[2] 그렇게 승기를 잡는 듯했으나 강감찬이 직접 검차를 끌면서 병사들을 독려하고, 반대편 언덕에서는 고려의 중장기병대가 나타나면서 상황이 뒤집어지며 프롤로그가 마무리된다.


2.2. 2회[편집]


노환으로 죽어가는 승천태후를 보살피던 황제 야율융서 옆에 선 모습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어린 나이에 제위에 오른 자신을 위해 섭정하면서 몸소 전장에 나가 요나라의 영토를 넓힌 모후의 활약[3]을 거론하며, 이제 자신이 그것을 이어가야 한다고 야율융서가 말하자, 소배압은 고려가 요에 공순하지 않고 과 내통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꺾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야율융서도 동의하며 태후께서 서방정토로 떠나시기 전까지 항하(갠지스강)의 모래알 중 한 톨만한 작은 것이라도 반드시 침공의 명분을 찾아내라고 명령한다.[4]


2.3. 4회[편집]


요 성종 야율융서가 현종의 책봉을 요청하는 사신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고려의 사신을 노려보다 승천태후의 사망 소식을 듣고 동요한다. 이후 성종이 태후의 3년상을 중단하고 고려로의 친정을 시작하는 장면에서 황제의 바로 뒷 대열에 선다.


2.4. 5회[편집]


거란군 본진에서 야율융서가 군사는 어떻게 되고 있냐고 묻자 동경[5]으로 집결하고 있으며 야율융서와 그 휘하 군대가 동경에 다다를 쯤에 군사 집결이 끝나있을 것이라며 보고하면서 동경요양부에서 고려까지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고 덧붙힌다.

그리고 야율융서와 함께 압록강을 건너 고려로 넘어오고, 첫 전투의 선봉장을 야율분노에게 맡기겠다고 알리면서 본격적으로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2.5. 6회[편집]


선봉 야율분노가 흥화진의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자 도통으로서 거란군의 장점이 병사 수(인력)인 점을 다시 짚어주고, 고려군을 쉬지 못하게 교대로 계속 공격하라고 지시를 내린 뒤 타초곡[6]을 시행할 것을 명령한다.

하지만 흥화진이 결국 무려 일주일을 버텨내고 성종 야율융서가 분노해 야율분노를 질책하자, 고려군의 저항이 상상 이상이어서 그런 것이라고 야율분노를 감싸지만 성종으로부터 변호하지 말라는 꾸지람만 듣는다.


2.6. 7회[편집]


인간 방패까지 동원했음에도 흥화진 함락에 실패하고 이에 분노한 야율융서가 지휘관들을 처벌하려 하자, 야율융서가 지휘관들을 처벌하면 이번 패배는 더욱 무거워질 것이니 저들을 용서해 패배의 무게를 낮추라는 간언을 올려 용서를 받아낸다. 그리고 야율분노와 야율적로에게는 용서를 받아냈으니 남하할 준비를 하라면서, 덧붙여 "흥화진 얘기는 꺼내지도 마라"고 한다.

이후 통주에서 강조가 이끄는 고려군과 격돌, 고려군의 검차에 출격시킨 철갑기병들을 잃으며 후퇴를 명령하고는[7] 약점을 찾으려 하나, 아율분노가 독단적으로 강조의 지휘부를 기습해 강조를 생포한다.


2.7. 8회[편집]


무단으로 출정한 야율분노에게 발길질까지 하며 분노를 표출하며 서둘러 와해된 고려군들에 대한 섬멸을 명령한다. 기습으로 인해 지휘부를 사로잡았지만, 나머지 병력들이 물리적으로 와해가 되었을 뿐 섬멸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패잔병들이 흩어져 수습될 여지를 주었기 때문.[8] 또한 평야에서의 대회전에서 섬멸을 실패했으니 이제부턴 성의 고려군과의 공성전을 강요받는 상황이 됐기 때문에 오히려 고려를 완전히 정복하는 데는 난이도가 훨씬 더 올라가 버린 상황이 되어버렸다.[9]

게다가 초기에 내세운 전쟁명분이었던 강조까지 너무 일찍 사로잡은 바람에 전쟁을 더 길게 끌 명분을 조기에 달성해 외교적으로 불리해진 점까지 지적하는 등 전략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적인 안목까지 갖춘 노련한 숙장이란 점도 부각됐다.

성종 야율융서와 소배압의 입장에서는 본인들 묘사로 항하의 모래알이라도 골라내는 심정으로 명분을 잡아내야 했기에 강조의 정변이라는 명분은 그야말로 자신들이 치고 내려갈 최고의 명분이었다. 즉, 거란에 있어 통주 전투의 최고 시나리오는 단순히 모랄빵으로 상대 본군을 일시적으로 괴멸시키는 수준이 아니라 병사들은 섬멸시키되 강조는 탈출하게 두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강조의 위신이 떨어져 고려 조정이 분열과 혼란이 심화되고 자신은 역적 강조를 잡아야겠다며 더 밀고 내려갈 수 있는 명분은 여전히 가지고 있으면서 확실하게 전쟁을 더 이어갈 수 있는 시나리오가 된다. 이런 이유로 성종 야율융서도 제장들에게 통주 전투의 승리를 축하하면서도 "만족스럽진 않지만"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10]

이후에 거란의 신하로 전향한 이현운이 알려주는 정보와 계책 그리고 고려군의 약점의 정보 수집에 만족스러워하며, 가장 취약했던 곽주성과 영주성을 공략해 손쉽게 함락시킨다.


2.8. 9회[편집]


거짓 친조를 요청하는 강감찬의 현란한 말솜씨에 야율융서가 넘어갈듯 하자, 항복의 진의를 의심하며 야율융서에게 계속 간언한다. 또한 야율융서가 결국 친조를 승인하며 진격과 타초곡을 금하자, 승전보를 가져온 사신을 융숭히 대접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강감찬의 즉시 복귀를 저지했고, 이후 군막 밖에서 이현운과 만나 강감찬의 의도를 파악하는 등 치밀한 모습을 보인다.[11]

이후 강감찬과 독대하고 그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설전을 벌인다. 처음엔 다른 신하나 장군들 내비두고 왜 서로 늙은 사람을 내보냈냐고 유쾌하게 주고 받다가, 자신의 아우 소손녕이 고려 땅을 밟았을 때 서희라는 사람과 담판을 벌였던 사실을 언급하며 "고려의 관리들은 교활하니 절대 믿지 말라고 했다"는 소손녕의 경고를 알려주며,[12] 강감찬에게 거란 사신을 딸려서 돌려보낼테니 내일까지 서경의 항복을 받아오라며 압박한다. 또한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다는 강감찬의 주장에 고려의 항복이 진심이라면 절차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라고 말하면서 그가 논리적으로 빠져나갈 구멍조차 막아버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 항복을 위해 보냈던 사신들이 돌아오지 않자, 야율융서에게 진격을 재개할 것을 청하고, 이에 서경 진격을 앞두고 군대를 출발시키려는 시점에 거란 군영으로 들어오는 강감찬과 마주친다.


2.9. 10회[편집]


강감찬이 올려보낸 서경의 항복문을 받고 진격을 중지하려는 야율융서에게 정황이 의심스럽다며 다시 생각할 것을 권하려 하지만, 야율융서가 "역사에 기록될 전쟁에 오점을 남기지 말라"[13]고 윽박지르자 어쩔 수 없이 물러난다. 하지만 여전히 의심이 풀리지 않아 부하들에게 계속 척후병을 서경으로 보내서 상황을 파악하라고 한 뒤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으면 바로 진격할 것이라고 벼른다.

결국 척후병들에 의해 서경에 동북면 군사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 이럴줄 알았다"라며 서둘러 진격 명령을 내리고 이후 강감찬을 체포하러 갔지만 이미 그는 도주한 뒤였다.


2.10. 11회[편집]



2.11. 12회[편집]



2.12. 13회[편집]



2.13. 14회[편집]



2.14. 15회[편집]



2.15. 16회[편집]



2.16. 17회[편집]



2.17. 18회[편집]



2.18. 19회[편집]



2.19. 20회[편집]




3. 인간관계[편집]


  • 야율융서 - 자신의 주군이자 외사촌동생 & 매제 & 사위이기도 한 2중 3중의 인척관계로 얽혀있는 사이로, 본인은 주군에게 가장 신임을 받는 신하.

  • 야율분노 - 본인은 흥화진 전투에서 조언도 해주고, 흥화진 함락 실패로 인한 처벌을 무마시켜주었지만, 야율분노는 전공에 대한 욕심으로 삼수채에 기습을 가하여 강조만 낼름 잡아오는 바람에 거란의 전쟁 전략을 틀어지게 만들어 자신을 분노케 만들었다.

  • 강감찬 - 9회에서 둘이 서로 만나서 접점을 이루기 시작하면서 라이벌 구도가 맺어졌다.[14] 프롤로그에 나온 것처럼 '고려 거란 전쟁'의 마침표를 찍는 귀주 대첩의 최고 지휘관으로 나서게 된다.

  • 이현운


4. 묘사[편집]


외모는 백발에 얼굴에 상처가 많은, 전형적인 백전노장 스타일로 나온다.[16] 성격은 뭔가 초탈하고 무심한 느낌도 풍기고 말수도 적다.

드라마에서 가장 유능한 인물 중 하나이다. 흥화진의 약점과 공성전의 어려움을 제대로 파악하고 주변을 초토화 시켜 40만의 보급과 사기를 올리고, 한 소리 들었지만 패전 장수를 변호하는 등 황제와 장수의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 결국 흥화진이 함락 되지 않아 분노한 황제에게,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일로 취급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면서도 역신 강조를 멸하여 승리를 바치겠다고 자신있게 선언하기도 하는 등 큰 활약이 아직 나오지 않았음에도 상당한 실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단순히 무장으로서 식견만 뛰어난 게 아니라 강감찬의 친조 요청을 보고 다른 속셈이 있음을 눈치챘지만, 들뜬 거란 황제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을 고려해 좋은 소식 가져온 사신이니 바로 보내지 말고 대접하자며 붙잡아두는 등, 정치적 수완도 뛰어나다.

5. 총평[편집]




6. 어록[편집]


고려는 복종모르는 나라이옵니다. 그 자들은 폐하께 충성을 서약하고서도,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 우리 거란을 함께 공격하자고 제안했던 자들이옵니다. 더 늦기 전에 반드시 정복해야 하옵니다.

대신 우린 그들보다 군사들의 수가 많네. 우린 군사들을 쉬게 하면서 교대로 공격할 수 있지만 고려군은 그럴 수가 없지. 모든 군사들이 성벽에 올라가 우리의 공격을 막아 내야만 하지. 잠시의 틈도 주지 말고 공격을 가하게. 고려군이 밥을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하게 만들게.

폐하께서 이번 일로 거란군의 선봉장을 참하신다면, 그만큼 이 패전의 의미는 무거워질 것이옵니다. 허나, 폐하께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넘기신다면, 이 패전의 무게는 아주 가벼워질 것이옵니다. 폐하께서 친정하시는 첫 번째 정벌이옵니다. 40만의 대군을 이끌고 오신 폐하께서 어찌 흥화진 같은 작은 성에 집착하시겠사옵니까? 버려두고 가시옵소서.

일어나게, 폐하께서 용서하셨네. 군사들을 정비하게. 남쪽으로 이동할 걸세. 명심하게,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흥화진이라는 이름은 절대 입에 올리지 말게, 알겠는가?[17]

폐하께서 원하시는 건 강조가 아니다. 이 고려를 완전히 정복하시는 것. 그것도 모르겠느냐?

하!! 하하하하! 역시 말로는 못당하겠구려. 하하하하. 내 아우 소손녕이 10여년 전에 이 고려에 왔었소. 그리고 서희라는 자와 담판을 지었었소. 그 때 아우가, 내게 해 준 말이 있지. 고려의 관리들은 하나같이 교활한 자들이니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절대 믿지 말라. 내일 거란의 사신들과 함께 서경으로 가시오. 가서 서경의 항복을 받아오시오.

Чи айхтар яст мэлхий шиг харагдаж байна.. Дууслаа. Явган цэргийн хоёрдугаар эгнээг бүхэлд нь байрлуулж, Твалингеомчажинаар дамжин Горёогийн гол бааз руу дайраарай...! Горёог устга! (잔뜩 움츠린 거북이 꼴이구나, 이제 끝이다. 제2선의 보병 전군을 투입하라, 뚫린 검차진을 통해... 고려 본진을 공격하라..! 고려를 무너뜨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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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배압이 귀주에서 패배한 이후에도 야율융서는 낭군 갈불려 등에게 재침을 명령하였으므로 여요전쟁 전체로는 소배압은 중간보스가 맞다. 다만 후반부 최대 하이라이트를 맡는 만큼 사실상 최종보스급 취급이 될 듯.[2] 역사서에서는 10만 정예 기병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프롤로그에서 등장하는 거란군의 대다수는 보병이다. 이게 이렇게 되는 이유는 제작 환경상 말을 그렇게까지 많이 동원하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사실 상황으로 보아도 딱히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검차의 용도가 기병 돌격 막기에 최적화된 것을 생각해보면 그냥 정예 기병들이 말에서 내려서 보병화되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실제로 검차의 돌격을 통나무로 능숙하게 막은 것도 그렇고, FPS 검차 밑으로 파고 들어서 싸우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들이 보통 병사들이 아니라는 것을 은연 중에 드러내고 있다. 더욱이 이들이 출세라고 하면서 신나게 돌격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호전적인 게 아니라 이들의 최정예 직업군인으로서 전공을 세우면 정말 출세가 보장되는 이들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실제로 소배압이 이끈 정예 병사 10만명 중에는 황제 최정예 부대인 우피실군도 포함되어 있었고, 이런 이들은 전공 세우면 출세가 보장이 된다.[3] 실제로 송태종연운 16주를 회복할 목적으로 30만 대군을 이끌고 요나라를 침공하자 태후 본인이 직접 나서 송군을 꺾었고, 이후에는 20만 대군을 일으켜 송나라를 역으로 공격해 전연의 맹을 체결한다.[4] 항하의 모래라는 표현은 불교에서 자주 쓰는 비유다. 요나라가 대승 불교를 깊게 숭상하는 국가였다는 걸 반영한 것.[5] 동경요양부. 현재 중국 랴오양 시.[6] 풀이하면 말먹이와 식량을 빼앗는다는 뜻으로, 이른바 약탈을 제도화한 것이다.[7] 직감적으로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선봉대로 철갑기병을 보냈는데, 말이 본능적으로 겁에 질려 멈춰버려 돌파하지 못한다. 기병이 말의 눈을 가리라고 일갈한다.[8] 기록에 따르면 3만명의 고려군이 전사하였다고 적혀있지만, 30만명에 달하는 고려군 총 병력을 감안하면 지휘부 일부를 포함해 10%정도만 거란군이 섬멸한 것이고, 거란군이 전술적으로는 이겼어도 전략적으로는 오히려 실패에 가까웠다. 추가적인 정보도 없는 이상 저 3만명의 손실이 광군을 피하고 모조리 고려의 전투부대만 족족 골라 죽인 거라는 상정은 아무 근거도 없고 논리적으로 맞지도 않는다. 달아난 건 30만 전군이지, 전투병만 달아나다가 썰린 게 아니다.[9] 실제로 와해된 병력들이 곳곳에서 섬멸당하는 와중에도 살아남은 병력이 통주, 곽주, 영주 등 여러 성으로 흩어졌고, 최사위가 나머지 병력들을 수습하여 개경 쪽으로 향했다. 게다가 상대는 초전에서의 섬멸에 눈이 멀어 수적, 질적 열세에도 검차만을 믿고 평지에서 대회전을 걸어온 만큼 기병이 강력한 거란에게 있어 이만한 기회는 흔치 않았다. 이 후로 여요전쟁은 수성, 기습. 그리고 외교적 기만을 중시한 고려에게 휘둘리다 돌아가는 길에 공격을 당하는 전개가 이어지면서 요나라가 멸망하는 날까지 고려에게 이보다 우세를 점하는 기회가 돌아오지 않게 됐다.[10] 다만 작중 야율분노가 얌전히 있었어도 소배압의 의도대로 되었을지는 의문이다. 강조 역시 그런 소배압의 의도까지 내다보면서 파훼를 자신하고 있었기 때문에다. 서로가 전멸을 자신하며 건곤일척을 준비한 용호상박의 상황을 야율분노가 허무하게 무산시킨 것이다. 연출만 좋았다면 더 흥미진진하게 만들 수 있는 구도가 되었겠지만 지나치게 날림으로 처리하는 바람에 시청자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 많다.[11] 거짓 항복인 건 알겠는데 뭘 믿고 했는지 알아야 한다. 당연히 이현운은 강조와 더불어 최고 사령관이니 고려의 군사체제와 운영방식을 모조리 알고 있으니 거란에게는 최고의 보배이자 고려에게는 매국노다.[12] 즉, 자신은 여전히 강감찬의 이번 친조 요청을 믿고 있지 않다는 것을 돌려 말한 것이다.[13] 야율융서와 소배압이 요나라 역사에, 나아가 중국 역사에 이름을 남긴 명군과 명장인데 고려 한정해서 흑역사를 만든 걸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대사.[14] 두 사람은 사실 공통점이 많다. 각각 젊은 군주를 보필하는 노회한 브레인이고, 강감찬이 청렴하고 백성들을 도와준 일화가 많은데 소배압 역시 덕장으로 칭송받았다.[15] 물론 그전에도 군공이라던지, 내정 관련한 공적이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요사 자체가 다른 24사에 비해 부실한 편이다.[16] 소배압의 생년은 알 수 없지만 요사 88권 소배압 열전에 따르면, 요 성종 원년(983)에 황실 친위대인 좌피실의 지휘관인 좌피실상온으로 조복 토벌에 참가해 공을 세웠단 기록이 첫 군공[15]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이야기가 시작된 1010년 전후의 시점엔 20년을 넘는 군공을 쌓아 노년에 접어든 이미지가 채용된 것으로 보인다. 소배압의 딸이 소귀비로 986년 17살의 나이에 성종의 후궁으로 들어간데다(생모 불명)당장 17년 전에 벌어졌던 1차 여요전쟁의 총사령관 소손녕이 소배압의 형도 아닌 동생이기도 한 것을 고려해보면 최소 950년대생이라 2차 여요전쟁 당시는 최소한 50~60대의 노장이 맞다. 이런 배경이 겹쳐져 강감찬과는 왕의 최측근이면서도 노년의 숙장과 노년의 강직한 문관이란 대비를 이루게 된다.[17] 하지만 흥화진을 금기어로 올린 그 자신이 하필 봉화 때문에 황제 앞에서 다시 흥화진을 입에 올려 요 성종의 혈압을 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