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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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
2. 2011년 국가대표 차출 거부 논란
3. 방민아와의 열애설
4. 퇴장 및 안드레 고메스 부상 사건
5. NFT 관련 구설수
6. 독일에 대한 인종차별 피해 증언 관련 구설수



1. 개요[편집]


축구 선수 손흥민을 둘러싼 각종 논란 및 사건 사고를 서술한 문서.


2. 2011년 국가대표 차출 거부 논란[편집]


2011년 10월 13일[1] 대표팀 차출 거부로 구설수에 올랐다. 당시 춘천 FC 유소년클럽 감독이었던 손웅정은 인천공항에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던 도중 갑자기 대표팀 박태하 코치에게 전화를 걸어 언쟁을 벌였다. # 그러면서 '당분간 대표팀 발탁을 자제해주셨으면 한다'는 직접적인 거부의사를 밝히기까지 했다. 문제가 되는 점은 대표팀 차출은 국가대표팀 감독의 고유한 권한이며 정당한 이유 없는 차출 거부는 대한축구협회의 규정상 6개월 이상의 자격정지 및 출전금지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2] 월권행위라고 볼 수도 있는 이런 발언에 차두리는 '손흥민은 당연히 대표팀에 합류해야 한다'고 말하며 손웅정의 인터뷰가 '쇼킹'했다고 비판했다. # 손웅정이 이러한 발언을 한 배경은 아마도 17분을 뛰기 위해 독일에서부터 먼 거리를 이동해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일 것으로 추측되며, 이러한 사실을 감안했는지 조광래 감독이 '아들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며 논란은 일단락되었다.[3] 이후 이 사건 때문인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손흥민이 대표팀 차출을 거부했다는 루머가 생산되며 손흥민이 해명에 나서게 되는 해프닝이 생기기도 했다. #


3. 방민아와의 열애설[편집]


2014년 7월 29일 당시 걸스데이 멤버였던 방민아와의 열애설이 제기되었으며# 방민아 소속사 측에서는 이를 조심스럽게 인정했다. # 그러나 손흥민 측에서는 사실을 아예 부인하였다. 손흥민의 측근이 '상대방 소속사에서 언플을 해서 곤란하다'는 발언까지 했기에 방민아 측이 일방적으로 열애설을 이용하려는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 하지만 이는 측근의 입장일 뿐이고, 손흥민의 아버지는 직접 언론사에 '젊은 남녀가 연애하는 건 문제가 없다'라는 식으로 입장을 밝혔다. # 다만 방민아측의 입장문에서도 '호감을 갖는 단계였다'고 한 것을 보면 사실 말이 연애지 썸에 더 가깝다고 보여진다. 여하튼 8년이라는 시간이 넘게 흐른 현재까지도 이 연애설로 인해 손흥민도 각종 악플에 시달리고 있지만 방민아의 이미지에도 이 열애설은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각종 예능에 출연했을 때 관련 질문을 항상 받게 되는 등 뗄 수 없는 꼬리표가 되었다. #


4. 퇴장 및 안드레 고메스 부상 사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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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장 장면

18-19 시즌 프리미어리그 37라운드 본머스 전에서 전반 43분 레르마를 밀치고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 레르마가 손흥민의 등을 치고 발을 살짝 밟으며 도발하자, 손흥민은 욱한 모습을 보이며 레르마를 바로 밀쳐버렸다. 공이 정지된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보복행위로 가격했기에 명백한 퇴장감이었다. 물론 상대방을 도발한 레르마에게 어떠한 판정도 가해지지 않은 것은 의문. 이 퇴장으로 손흥민은 한국인 프리미어 리거 최초로 퇴장당한 선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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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4일 에버튼과 토트넘의 경기에서 손흥민의 보복성 백태클이 원인이 되어 에버튼 소속의 미드필더 안드레 고메스에게 큰 부상을 입혔다. 손흥민의 백태클로 안드레 고메스가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과정에서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입었다. 태클 이후에 세르주 오리에 선수와 충돌 때문에 안드레 고메스의 발목이 돌아갔다는 말도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였다. BBC 축구 수석기자 이안 데니스는 손흥민의 태클 이후에 착지하는 과정에서 발목이 돌아갔고 손흥민의 태클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이를 목격한 주변 선수들과 손흥민은 큰 충격을 받았다.

손흥민은 해당 태클로 레드카드와 3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4][5] 사고 이전까지만 해도 에버튼에서 미드필더로서 좋은 폼을 보여주던 안드레 고메스는 해당 부상 이후 부진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6개월 이상 재활에 전념해야 할 것으로 보이던 안드레 고메스는 2개월 동안의 수술과 재활 훈련 이후 2020년 2월 24일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단 참고.

이후 19-20 시즌 18라운드 첼시전에서 뤼디거와의 볼 경합 과정에서 넘어진 손흥민은 축구화 스터드로 뤼디거의 복부를 가격했다. VAR 판독을 거친 심판진은 이를 고의적인 보복성 행위로 판단했고 손흥민은 다이렉트로 퇴장당했다.

안드레 고메스 부상사건 이후 약 2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데다, 위험한 파울을 저질렀는데도 오히려 억울해하며 판정에 항의한 모습까지 보였기에 굉장히 비판받았다.[6]

손흥민은 이 퇴장으로 약 7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3장의 레드카드를 수집하고, 1년에 3번 퇴장당한 역대 EPL 5번째 선수가 되었다. 게다가 3번의 퇴장 중 2번[7]은 확실한 보복성 행위였고, 안드레 고메스에게 행한 백태클도 보복성이 짙어보였기에[8] 더욱 이미지에 타격이 컸다. 다만 손흥민의 태클 자체가 부상을 일으켰다기보단[9] 그 이후 착지 과정에서 불운한 부상이 발생했고, 해당 태클로 인한 부상 가능성을 예측하기 어려웠다는 점과 통상적으로 수비 과정에서 발목을 거는 태클은 경고를 받는 선에서 끝난다는 점을 감안해 FA는 레드 카드와 경기 출장 금지 처분을 취소했다.

5. NFT 관련 구설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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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4일 손흥민은 공식 트위터 계정을 개설하였다.[10] 그런데 손흥민이 계정을 만들자마자 자신을 모델로 만든 NFT(대체불가토큰)를 알리는 글을 게재했고, 공교롭게도 손흥민 NFT의 런칭 시점[11]과 트위터 시작 시점이 겹치면서 트위터 댓글에 일부 팬들은 “손흥민이 현금을 쥐려고 트위터 가입한 거냐”, “손흥민이 토트넘 팬들과 소통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NFT 팔려고 한 거다”, “손흥민이 한 것은 최악이다”, “이 토트넘 선수는 트위터 가입한 지 24시간 만에 NFT 팔고 있네” 등의 반응들이 이어지며 논란이 가중됐다. # ## ### 팬들과 소통하겠다며 트위터 계정을 만들었다가 뜻밖의 논란으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된 손흥민은 온라인 상에서 논란이 생기자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다.[12] ###


6. 독일에 대한 인종차별 피해 증언 관련 구설수[편집]


2022년 7월 4일 서울 마포구 아디다스 홍대 브랜드 센터에서 열린 '손 커밍 데이' 행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독일전을 뽑으며 "내게 인종차별을 한 독일 사람들이 우는 걸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걸로 복수를 할 수 있었기에 기억에 남는 경기였다"라고 발언했다. 해당 인터뷰 영상 영상에서 손흥민이 '이유가 굉장히 많다'고 말한 것과 손흥민/바이어 04 레버쿠젠 문서를 고려하면 단순히 인종차별 뿐만이 아니라 이적 과정에서 마찰이 있었기에 한 발언이었겠지만 이런 잘 알려지지 않은 사정까지 알지 못하는 독일 팬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해당 인터뷰를 번역한 함부르크 모르겐포스트 기사에서는 손흥민을 응원하면서도 모든 독일인이 하나의 집단인 것처럼 묶어서 말하는 손흥민의 발언에 대해 불쾌해하는 반응이 나왔다. 손흥민이 겪었을 인종차별에 대해 동정하거나 그가 모든 독일인을 싫어하는 것은 아닐 거라고 이해하려는 반응이 있는 반면, 모든 독일인이 인종차별자라고 일반화하려는 것 같다고 느끼며 손흥민의 발언을 경솔한 것으로 비난하는 반응도 있었다. 물론 이 발언을 통해서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아시아 출신 선수들이 인종차별로 많은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주기도 했다.


7. 2022 카타르 월드컵 관련[편집]




7.1. 2701호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701호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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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9 00:57:17에 나무위키 손흥민/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아랍에미리트와 치렀던 브라질 월드컵 3차 예선이 끝난 다음날이다.[2] 2011년 당시의 기준이며, 2023년 기준으로는 출전금지 징계조항은 없으며 1년 이하의 자격정지 징계만 내릴 수 있다.[3] 당시 스포탈코리아와의 통화에서 손흥민은 부친의 발언과 관련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입장을 밝히는 것을 거부했다.[4] 이후 FA는 2019년 11월 6일에 출전 정지 징계 및 레드 카드 처분을 취소하였다.[5] 이다음 7일 경기에서 손흥민은 골을 넣은 뒤 세리머니 대신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였고, 안드레 고메스에게 사과 문자를 보냈다며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6] 다른 토트넘 팀 동료들은 이미 퇴장을 예상한 듯 항의하지 않고 고개를 떨구거나 한숨을 쉬었다.[7] 레르마와 뤼디거에게 행한 반칙[8] 평소 수비 가담에 적극적이지 않던 손흥민이었으나 이 장면에서는 전력질주로 고메스를 따라가 이미 발에서 공이 빠져나간 고메스의 발목을 걸었다.[9] 보통 태클이 즉시 부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스터드를 들고 발목을 미는 경우이다. 이 때는 다이렉트 퇴장이 자주 발생한다.[10] 첫 게시물을 올린 지 5시간 만에 팔로워는 15만명을 돌파했고, 하루 만에 20여만명을 훌쩍 넘어서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11] 2022년 4월 27일 싱가포르 기반 대체 불가능 NFT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NFT스타는 다음달 5월 4일부터 5일까지 축구선수 손흥민의 NFT 컬렉션 ‘메타 손흥민’을 판매한다고 밝혔다.[12] 존 테리리버풀 FC 등 역시 NFT 홍보 활동을 펼치다 팬들의 거센 비난에 휩싸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