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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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어원
3. 성립
4. 영향과 후계 도검



1. 개요[편집]


스파타는 엄격한 의미에서 로마 제국 시대부터 서기 5백년 경 까지 사용된 직선형 장검류를 말한다. 넓은 관점에서 보자면 아밍 소드가 등장하기 이전 시대의 장검류를 포괄할 수 있다. 길이는 대략 3 피트(1m) 안쪽.


2. 어원[편집]


긴 날붙이나 폭이 넓은 칼 따위, 갈비뼈라든가 노라든가 베틀의 북 등등 길고 평평하게 생긴 물건을 뜻하는 고전 그리스어 σπάθη (spathe)가 그 어원.

하지만 Spatha라는 단어 자체는 spathe의 도리스식 그리스 방언 σπάθα (spatha)[1]을 라틴어화하여 등장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 단어는 유럽 전역에서 도검을 뜻하는 용어에 넓게 영향을 미쳐서, 그리스어의 σπάθα (spatha), 라틴어에서 이탈리아어로 옮겨가면서 spada,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에서는 espada, 불어로 옮겨가면서 épée[2], 루마니아 말에서는 spată, 알바니아 말에서는 shpata로 그 흔적이 남는다. 하지만 게르만 계열, 고대 영어 등의 도검을 가리키는 sweord나 그에서 이어진 sword 따위와 spatha 간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게르만 계열 언어의 경우 spatha의 조상격인 인도유럽조어 단어로부터 전해내려온 단어는 spade, 곧 쟁기나 삽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한편 서양의 플레잉 카드에서 스페이드라는 영어단어는 쟁기와는 전혀 무관하고 이탈리아어의 spada가 변형된 것이다. 애초에 놀이용 카드의 스페이드는 타로 카드의 '검'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에. 인구조어까지 거슬러올라가면 같은 단어에서 유래하긴 하지만.


3. 성립[편집]


도검의 분류 상, 스파타는 켈트 도검의 후계 위치에 존재한다. 원래 로마의 적이던 켈트족이나 랑고바르드족 등이 이러한 장검류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로마군에서는 전장에서 기병의 역할에 대한 관점이 바뀌면서 기병용과 장교용의 긴 장검으로 채용하고, 게르만 보조병(Auxilaries) 등이 가지고 오면서 단병접전에서 장검의 우수성을 인식해 보병용으로도 퍼지기 시작했다. 즉, 스파타는 로마의 기병 검으로 알려져 있지만 로마 후기에는 보병용으로도 많이 사용되었으므로 기병 전용이라고 말하기는 무리가 있다. 종전의 로마 군단병들이 사용하던 글라디우스보다 길기 때문에, 우측 허리에 차는 글라디우스와는 달리 좌측 허리에 차게 되어있다.

스파타는 로마군이 상대하는 야만족들이 매우 강력해지고 수도 많아졌던 로마 후기에 비로소 널리 퍼졌다. 이전까지는 넓은 면적의 스쿠툼과 전우의 엄호를 믿고 정면의 짧은 리치에서 적을 상대하는 레기온테스투도 전법이 잘 먹혀 들어갔기 때문에 굳이 스파타처럼 긴 칼을 보병 제식으로 채용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로마 후기에는 이런 전술에 익숙해진 강해진 야만인들이 머릿수로 밀어붙여버리는 사태가 자주 일어났는데, 수백 년의 세월 동안 레기온의 파훼법이 주변 야만족들에 의해 연구된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또 다른 원인엔 제국의 열악한 경제 사정도 영향을 미쳤는데, 갈수록 나빠지는 제국의 경제 사정으로 군비지출도 전성기만큼 되지 못했고 장비도 갈수록 질이 떨어져 갔다. 이런 상황에서 드넓은 국경을 질적으로 옛날만 못한 병사와 장비로 죽여도 죽여도 끝도 없이 오는 야만족을 막아야 했다.

결국 병사 1인당 맡아야 할 전투 공간이 늘어나면서 스파타와 같이 리치가 긴 무기들로 갈아탔다. 더불어 전술도 레기온의 모습이 점차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후기 로마군의 주된 전법은 원형 방패로 유동적인 방패벽을 그때그때 쌓아 적을 막으면서 싸우는 것이었다. 이 전술은 바이킹이 매우 잘 써먹음으로써 오늘날에는 바이킹의 대표적인 전술로 인식되지만, 이 전술의 원류는 후기 로마군이다.

다만 글라디우스에서 스파타로 바로 제식 장비를 바꾼 건 아니며, 글라디우스 자체가 조금씩 검신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절 로마 군단병의 글라디우스는 이미 이전 아우구스투스 시절 로마군의 글라디우스보다 꽤 검신이 길어지긴 했으나, 여전히 보조병의 스파타보다는 짧았다. 카라칼라 황제 때 기존 보조병과 군단병의 편제 구분이 없어지게 되는데, 당시 사람들은 요즘이라면 스파타로 구분할 검도 관습대로 글라디우스라고 여전히 불렀다. 군단병의 글라디우스가 이미 최소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이전 시기부터 서서히 검신이 길어져서 보조병의 스파타를 따라잡기 시작하다가, 그 후 약 두 세대 뒤인 카라칼라 때 보조병과 편제 구분이 없어지면서 기존 스파타와 글라디우스를 혼용해서 썼고 그러다가 결국 스파타로 이행하게 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스파타는 철기 기술이 충분히 발달한 이후에 도입되고 대개 패턴 웰딩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런저런 재료를 다 쓰고 품질 수준이 시대마다 오락가락하는 글라디우스에 비해 대체로 더 나은 품질을 갖고 있었다.


4. 영향과 후계 도검[편집]


로마시대 도검인 스파타는 장검의 역사 상에서 큰 형님뻘 되는 의미 깊은 도검이다. 우선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나 독일 북부, 네덜란드 지역에서는 철기 시대를 구분할 때 로마 이전 철기시대와 로마의 영향을 받은 이후의 철기 시대의 차이를 두는데, 로마 이후 철기시대 도검류가 스파타에 영향을 받는다. 덴마크의 Nydam 늪에서 발견된 유물이 좋은 예다.

그리고 서기 4~8세기 또는 게르마닉 철기시대의 게르마닉 도검류도 영향을 받으며, 8세기경부터의 바이킹 소드는 민족이동시기의 도검에 영향을 받았으니 역시 스파타의 후계이고, 10에서 11세기쯤의 노르만 시대에 바이킹 소드가 노르만 도검으로 변해간다. 중세 전성기(High Middle Age)에 이르러 노르만 도검의 후계가 바로 우리가 중세 장검으로 생각하는 아밍 소드, 기사의 장검이 된다.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칼날 형태의 변화뿐만 아니라 폼멜 형태의 변화와 크로스 가드의 형상도 눈여겨보면 도검 계보의 흐름을 연구하는데 좋다. 폼멜 형태는 문화적인 차이 즉 유행을 제법 엿볼 수 있는 부분이고, 크로스 가드 형태는 중세~르네상스 검술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부분인데, 스파타의 크로스 가드는 비교적 크기가 작음으로 인해 손에서 미끄러지는 것을 막아주지만 방어기제로의 성능은 기대할만한 정도가 못되나, 아밍 소드에 이르러 십자가형 크로스 가드는 검술의 방어 기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소가 된다.

동로마 제국에서도 스파타란 이름과 양식은 그대로 이어졌지만, 서유럽의 영향을 받아 후기에는 아밍소드에 가까운 형상으로 변하기도 했으며, 한손 곡도인 파라메리온과 공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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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꽃봉오리[2] 펜싱의 종목 '에페'가 여기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