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준(조선)

덤프버전 : r


신준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1. 개요[편집]


조선 전기의 문신. 는 언시(彦施). 는 나헌(懶軒). 시호는 소안(昭安). 본관은 고령(高靈).


2. 생애[편집]


신준(申浚)은 1444년(세종 26)에 태어났으며, 영의정을 지낸 보한재 신숙주의 아들이다.

1470년(성종 1)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병조참지에 특별히 발탁되었고, 이듬해 좌리공신 4등에 책록되었다. 그 뒤 병조참의를 거쳐 1477년(성종 8) 동부승지가 되었다. 이로부터 성종의 특별한 은총을 입어 같은 해에 우승지, 좌승지를 거쳐 도승지에 승진하였다. 이듬해 호조참판을 역임하고, 1480년(성종 11) 고양군(高陽君)에 봉해졌다. 이어서 이조참판이 되어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그 뒤 예조참판을 거쳐 1486년(성종 17) 한성부판윤이 되었다. 이듬해에는 이조판서가 되고 공조판서를 거쳐 그 뒤 우참찬, 평안도관찰사, 한성부판윤 등 내외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1495년(연산 1)에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다시 공조판서가 되고 이어 형조판서가 되어 지경연사(知經筵事)를 겸임하였다. 그 뒤 대사헌을 거쳐 세번째로 공조판서와 한성부판윤을 역임하고 우참찬, 좌참찬을 지내면서 언로의 개방 등 시무 10조를 진언하였다. 1503년(연산 9) 명나라 사신이 우리나라의 궁시(弓矢)를 요구하자 궁시의 성능은 우리가 우월하니 그 비밀의 누설은 국방상 불리하므로 명의 사신에게 주는 것은 불가하다고 진언하였다. 1506년(연산 12) 7월 23일 좌찬성으로 승진하였다.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에 책록되고 고양부원군(高陽府院君)에 진봉되었다. 1507년(중종 2) 반정에 공이 없는 공신은 대간의 청을 가납하여 음가(蔭加)를 회수할 것을 진언하였다. 1509년(중종 4) 7월 11일에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는 소안(昭安)이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03-01 08:02:07에 나무위키 신준(조선)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