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라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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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인도 아그라에 위치한 무굴 제국의 요새이자 왕궁으로 타지마할 서문(West Gate) 기준으로 서쪽으로 약 3km(도보로 30분)거리에 위치한다.
타지마할을 지은 황제 샤 자한이 아우랑제브에게 유폐당해 여생을 쓸쓸히 갇혀지낸 공간으로 유명하다.
2. 방문시간 및 입장료[편집]
2023년 기준 일출 30분 전에 개장하고 일몰 30분 전에 폐쇄하며 아마싱 게이트(Amar Singh Gate)에서만 티케팅을 할 수 있다.
타지마할 티켓이 있다면 ₹50 가 할인된다고 한다.
3. 역사[편집]
무굴 제국의 초대 황제 바부르는 1526년 파니파트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부터는 북인도의 델리를 주요 거점으로 삼았다. 하지만 막 나라를 세운 데다가 황궁을 신축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에 델리 술탄국의 마지막 술탄 이브라힘 로디의 궁전을 그대로 사용했다. 바부르가 죽고 황위를 물려받은 2대 황제 후마윤 역시 로디의 궁전을 물려받아 썼다. 하지만 셰르 샤 수리가 1540년 후마윤을 꺾고 아그라를 탈취했으며, 1540년까지 수르 왕조가 아그라를 차지했기에 무굴 제국이 아그라에 제대로 된 황궁을 세울 여력은 없었다.
아그라 요새가 세워진 건 악바르 대제의 재위기다. 후마윤을 계승한 악바르는 흔들리던 무굴 제국의 기반을 탄탄히 굳히고 정치적 중심지를 발원지인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북인도로 옮겨왔는데, 이때 아그라에 새로운 황궁을 세울 여력과 시간이 생겨났던 것이다. 악바르는 1558년 아그라를 수도로 선포하고 폐허로 남아있던 벽돌 요새 유적을 새 궁전 부지로 선정했다. 새 요새는 라자스탄에서 끌어온 붉은 사암으로 지어졌다. 겉은 사암으로, 속은 벽돌로 지었다. 약 4,000여 명의 일꾼들이 8년 동안 쉬지않고 작업하여 1573년에 완공됐다.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건 악바르의 손자 샤 자한의 통치 기간 동안이었다. 당대 세계 1위 경제대국을 달리던 샤 자한의 무굴 제국이었기에 아그라 요새를 거대한 모습으로 개축했던 것. 다만 아그라 요새를 화려하게 장식한 샤 자한도 행복한 여생을 즐기진 못했는데, 아들 아우랑제브가 반란을 일으켜 샤 자한을 쫒아내고 아그라 요새에 가두어버렸기 때문이다. 샤 자한은 죽을 때까지 이 요새 안에 갇혀 아내 뭄타즈 마할의 아들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외롭게 지내야했다.
1700년대 이후 아우랑제브가 죽고 무굴 제국이 망해가자 아그라 요새의 소유권도 이리저리 떠돌았다. 마라타 제국이 무굴 제국을 침공하면서 아그라 요새에 알을 박기도 했고, 두라니 왕조의 아흐마드 샤 두라니가 북인도를 침공할 적에 아그라 요새를 함락해 약탈하기도 했다. 1785년에는 마라타 제국의 장군 마하다지 신데가 다시 아그라를 정복했고, 1803년 영국에게 빼앗길 때까지 쭉 아그라 요새를 다스렸다. 이후 1857년까지 영국 동인도 회사가 아그라 요새를 점유하고 있다가 인도 제국이 세워지며 영국 정부에게 요새도 양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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