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곤의 이사벨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포르투갈 왕국 국왕 디니스 1세의 왕비이자 가톨릭 성인.
아폰수 4세의 어머니이자 페드루 1세의 할머니이며, 포르투갈의 엘리사벳, 포르투갈의 성녀 엘리사벳으로 불렸으며 가톨릭에서 평화와 중재의 사도로 알려진 인물이다.
카탈루냐어 이름은 '엘리사벳(Elisabet)'이고, 아라곤어 및 포르투갈어 이름은 '이사벨(Isabel)'이다.
2. 생애[편집]
2.1. 어린시절[편집]
1271년, 아라곤의 왕인 페드로 3세와 시칠리아의 쿠스탄차 2세의 딸로 태어났다. 이사벨의 아버지인 페드로 3세는 딸이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해 헌신한 페드로 3세의 이모인 헝가리의 에르제베트을 본받으라고 같은 이름을 지어주었다.
2.2. 포르투갈의 왕비[편집]
1282년, 이사벨은 11세의 나이로 포르투갈의 디니스 1세와 결혼하게 된다. 어린나이에 결혼했지만 수년이 지나서 1남 1녀 자녀를 낳았다. 장녀 콘스탄스는 아라곤의 페르난도 4세의 왕비가 되었고, 장남 아폰수 4세는 포르투갈 국왕이 되었다.
디니스 1세는 왕으로서 좋은 통치자였지만 남편으로서는 영 아니었는데 이사벨 왕비는 자신이 낳지 않은 남편의 사생아들의 교육을 담당하였다고 한다. 끊임없이 기도와 경건한 삶을 추구하며 자선사업에도 힘써 병원, 고아원, 매춘 여성들의 보호소, 양로원 등을 만들고, 순례자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숙소도 마련해주었다. 이사벨 왕비는 디니스 1세의 냉대에도 인내심을 갖고 대했고, 1297년 이복형제들에게 관대한 아버지의 행동에 분개한 아들 아폰수와 남편 사이의 대립을 중재하고 조정을 했다. 이런 그녀의 노력과 정치적 영향력 때문에 오해를 받아 한때 알랑케로 추방되기도 했다고 한다.
2.3. 왕대비[편집]
1324년, 디니스 1세가 병에 걸리자 옆에서 간호해 주었다. 남편 디니스가 이사벨의 정성으로 인해 감화되어 뒤늦게 가톨릭 신앙을 찾게 되었지만 이듬해 승하한다.
디니스 1세로부터 재산을 상속된 이사벨 왕대비는 왕비 시절부터 운영한 자선 사업을 아낌없이 지속적으로 했다. 코임브라에 성 클라라 가난한 자매 수도원으로 거처를 옮겼고, 작은 형제회의 3회원이 되어 수도자 못지않은 엄격한 신앙 생활과 봉사활동에 전념했다.
한편 이사벨 왕대비는 포르투갈과 카스티야의 전쟁을 막아냈다고 한다.
2.4. 선종[편집]
1336년 7월 4일, 이사벨은 아폰수 4세와 카스티야 국왕 알폰소 11세의 중재를 하러 가는 도중 과로와 열병으로 인해 에스트리모스에서 선종하였다. 이사벨 왕대비의 유해인 자신의 거처로 썼던 성 클라라 가난한 자매의 수도회 성당에 안장되었고, 포르투갈과 카스티야의 평화에 힘썼던 그녀의 노력으로 인해 두 나라는 동맹을 맺었다고 한다.
3. 시복과 시성[편집]
1516년 교황 레오 10세에 의해 복녀로 시복되었고, 1626년 교황 우르바누스 8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1630년 로마 순교록에 성녀의 축일이 7월 4일로 수록되어 있었으나, 1695년에 교황 인노켄티우스 12세는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8일 축제[2] 와 겹치는 관계로 7월 8일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1969년 전례력 개정과 함께 선택 기념일로 변경되면서 축일 또한 이사벨의 선종한 날인 7월 4일로 변경되었다.
4. 가족관계[편집]
4.1. 조상[편집]
4.2. 자녀[편집]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0-15 22:18:02에 나무위키 아라곤의 이사벨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