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키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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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제6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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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스타키스
오네시모스
폴리카르포스 1세
플루타르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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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폴리카르포스 2세
제11대
제12대
제13대
제14대
제1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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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지스
라브렌시오스
알리피오스
페르티낙스
제16대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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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1세
필라델포스
키리아코스 1세
카스티노스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제25대
에브예니오스 1세
티토스
도메티오스
루피노스 1세
프로보스
제26대
제27대
제28대
제29대
제30대
메트로파네스
알렉산드로스
알렉산드로스
파울로스 1세
니코메디아의 에우세비오스
제31대
제32대
제33대
제34대
제35대
안티오키아의 에브독시오스
디모필로스
에바그리오스
막시모스 1세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
제36대
제37대
제3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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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리오스
요안니스 흐리소스토모스
타르수스의 아르카시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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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대
제44대
제45대
네스토리오스
막시미니아노스
프로클로스
플라비아노스
아나톨리오스
제46대
제47대
제48대
제49대
제50대
엔나디오스 1세
아카키오스
프라비타스
에브페미오스
마케도니오스 2세
제51대
제5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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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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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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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대
제5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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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티히오스
요안니스 3세
요안니스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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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대
제12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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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아스 2세
파코미오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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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7대
제268대
제269대

막시모스 5세
아시나고라스 1세
디미트리오스 1세
바르톨로메오스 1세




이름
아카키오스
(Ακάκιος, Acacius)
출생
미상
사망
489년
직위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종교
정교회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제 47대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사후 콥트 정교회로부터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아카키오스 분열의 주역이다.


2. 생애[편집]


출생지 및 초기 생애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그는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에서 고아들을 보살피는 역할을 맡아서 탁월한 성과를 거뒀다. 무척 유쾌한 성격에 매우 훌륭한 사교성과 매너를 갖췄다고 하며, 황제 레오 1세는 그를 마음에 들어 했다. 471년 총대주교 예나디오스가 사망하자, 레오 1세에 의해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에 선임되었다. 474년 레오 1세가 사망하자, 아들 레오 2세가 즉위했으나 겨우 10개월만에 사망하고 제노가 새 황제로 등극했다. 475년 바실리스쿠스가 반란을 일으켜 제노를 축출하고 새 황제가 되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디모데 아엘로스의 영향을 받아 칼케돈 공의회를 거부하는 선언문 에킬리오스(egkylios)를 준비했다. 아카키오스는 처음에는 에킬리오스에 서명하려 했지만, 콘스탄티노폴리스 수도원 공동체의 압력으로 칼케돈 공의회를 옹호하는 데 힘썼다.

476년 8월 제노는 일루스 장군의 도움으로 바실리스쿠스를 몰아내고 황위에 복귀했다. 그는 아카키오스와 함께 칼케돈 공의회를 옹호했다. 그런데 482년, 단성론파가 페터르 몽고스를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로 선출하여 기존의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요안니스 탈라이아에 대적했다. 이로 인해 혼란이 일어나자, 제노는 아카키오스에게 문제 해결을 의뢰했다. 이후 칼케돈 공의회파와 단성론파간의 해묵은 갈등을 해결하는 방안을 놓고 장고를 거듭했다. 그러던 중 몽고스가 자신을 총대주교로 인정한다면 두 종파간의 분열을 치유할 수 있다고 권했다. 반면 탈라이아는 로마 교황 심플리치오의 지지를 얻어낸 뒤 그를 무시했다. 이에 몽고스를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로 밀어주기로 마음 먹었다.

얼마 후 제국의 단결을 이루기 위해 헤노티콘(Henoticon)을 발표했다. 헤노티콘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재확인하고, 에우티케스의 교리와 네스토리우스의 교리를 비난하고,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의 아나타마를 받아들인다고 하였다. 다만 예수의 인성과 신성에 대해 명확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고, 단지 "하느님의 유일한 아들"이라고만 묘사해, 반발을 가능한 한 최소화하고자 하였다. 페터르 몽고스는 헤노티콘을 기꺼이 수용했지만, 탈라이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를 명분으로 삼아 제노에게 탈라이아를 파면하고 몽고스를 새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로 세우라고 권했고, 제노는 그 말에 따랐다. 이렇게 밀려난 탈라이아는 로마로 피신한 뒤 교황청에 자신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했고, 로마 교황 심플리치오는 페터르 몽고스가 알렉산드리아의 단성론파와 깊은 연관이 있다며 서한을 보내 항의했다. 그러나 제노와 아카키오스는 무시했다.

심플리치오가 483년 3월 10일 사망한 뒤, 새 교황 펠릭스 3세는 비탈리스와 미세누스를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사절로 가서 아카키오스에게 로마로 와서 탈라이아의 고소에 응답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사절들을 회유했고, 사절들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484년 로마로 돌아갔다. 펠릭스 3세는 공의회를 소집해 두 주교가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임 및 파문하고, 아카키오스를 파문하기로 결의했다. 투투스는 교황의 지시에 따라 아카키오스에게 파문장을 전달하려 했다. 아카키오스가 면담조차 하지 않자, 그는 파문장을 양피지에 배껴 쓴 뒤 소피아 대성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아카키오스의 외투에 몰래 넣었다. 몇 달 후 외투 주머니에서 이걸 발견하고 분노하였고, 펠릭스 3세의 이름을 딥티코스(diptyque)에서 삭제했다. 딥티코스는 정교회에서 사용하는 세계 정교회 독립교회 주교들의 명단으로, 성찬예배 중에 보제가 큰소리로 낭송하는데, 세계 각지 여러 정교회들과 영적으로 연대하고 기억하는 걸 암시한다. 반면에 딥티코스에서 이름을 언급하지 않겠다는 것은 상대를 독립교회의 합법적인 수장으로, 또는 아예 독립교회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리하여 서방과 동방 교회는 분열했지만, 알렉산드리아 시민들이 아카키오스의 결정에 따랐기 때문에, 탈라이아는 끝내 알렉산드리아 대주교로 복귀하지 못하고 놀라의 주교가 되었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동방 전역에 헤노티콘을 널리 받아들이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했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주교들을 황제에게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혐의를 뒤집어 씌워 파문에 처하고 직책에서 추방했다. 그는 끝까지 교황과 반목하다가 489년 사망하였다. 그러나 헤노티콘은 칼케돈 공의회파와 단성론파의 화해를 이끌어내는 본연의 임무에 실패했고, 서방 교회의 반발만 야기했다. 519년, 유스티누스 1세 황제와 총대주교 요안니스 2세는 교황 호르미스다와 협의해 헤노티콘을 부정하고 아카키오스를 정죄하기로 하였다. 다만 콥트 정교회는 아카키오스를 성인으로 시성하고 하투르의 달 30일을 축일로 삼았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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