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증명

최근 편집일시 :

라틴어
Probatio Diabolica
영어
Devil's Proof
1. 개요
2. 사례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악마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악마를 보여주면 그만.

그러나 악마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도 악마를 만나지 못했다고 해서 어딘가에 그들이 숨어서 살고 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으므로.

악마의 증명(Devil's Proof)


중세 유럽에서 사용된 법적용어.

요지는 존재를 증명하려면 그 한 건에 대한 증거가 필요하나,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있었던 모든 일들에 대해 증거가 없음을 증명해야 하므로, 그것은 거의, 어쩌면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라고 한다.[1]

더 직관적으로는 '부재의 증명'이라 부른다. 이 논리는 막강한 가불기다. 존재를 증명한 것은 1(100%)에 닿은 확실한 행위지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은 우주 전체를 샅샅이 뒤지지 않는 한 99.9999%까지 닿을지언정 절대로 1에 다다를 수 없다. 즉, 없음을 아무리 입증해도 "아직 어딘가에 있을지 없을지 확실하지 않다."고 일축하면 그만이고, 상대가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계속 같은 논리만 반복하면 된다. 내 차고 안의 용도 유사한 논리다.

입증책임과 연관이 있다. '악마가 존재한다'는 주장과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충돌하게 된다면, 입증책임은 '악마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측에 있다. 왜냐하면 반대로 존재치 않는다는 쪽에 입증 책임이 있다면 없다는 것을 증명 못한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것을 믿어야하기 때문. 예를 들어 러셀의 찻주전자 같이 어떤 허황된 소리일지라도 없다고 증명 못한다면 믿어야 된다. 재판에서 피고를 기소한 검사도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거하여 피고의 혐의를 검사가 입증해야한다. 피고가 무혐의를 입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피고 입장에서도 현장부재증명 등을 통해 자신의 무혐의를 최대한 입증하려 한다.

귀납법과도 관련이 있다. "모든 백조는 하얗다"를 존재 증명이 핵심인 악마의 증명에서는 "일부 백조는 하얗다"고 바꾼 셈이다. '일부 백조'가 존재함을 보이면 끝이다. 반면에 "나머지 모든 백조가 검다"라고 주장하는 경우에는, 말 그대로 모든 백조의 사례를 찾아봐야 하는 귀납법의 문제로 바뀌게 된다. 이렇게 변형을 한 이유는 악마의 증명이 법정 추론으로서, 효율적이고 강한 설득 논변으로 구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편적 명제를 찾아내는 귀납법은 당장 한 두 개 증거가 중요한 상황에서 별 쓸모가 없다. 또한 악마의 증명에서 보듯이 무엇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거로 하는 방식은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역시 법정에서 꺼리는 논증방식이 된다.

논리학적으로는, (두 명제가 증명되지 않았을때) "A는 존재함도, 존재하지 않음도 증명되지 않았다." 라고 하면 옳다.


2. 사례[편집]


"외계인은 없다"라고 주장하는 측은 외계인이 이 무한하게 넓은 우주 어디에도 없다는 증거를 가져와야 한다. 이는 우주의 크기를 생각하면 현 인류의 기술력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한편 "외계인이 있다"라고 주장하는 측은 외계인을 데려오기만 하면 그만이다.

논리적으로도 딱히 헛점이 없는 강력한 가불기투사 성향이 있는 유신론자들이 즐겨 사용한다. '신을 보여드릴 순 없지만, 존재할 가능성이 있으며, 당신은 이를 부정할 수 없다' 식으로. 얼굴에 철판만 깔면 딱히 반박할 수 없는 논리. 따라서 불가지론의 경향을 띈다. 종교 안 믿기로 유명한 천문학자[2] 생물학자[3][4] 중에도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들이 반반 정도로 나뉘는 등 부재의 증명은 여전히 강력한 논리로 쓰인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의 한계는 신의 정체가 사실은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라는 주장에 동일한 논리를 적용하면 이들도 자신의 논리에 의해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양심적 병역거부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대체복무가 생기기 이전, 형사적 처벌의 대상으로 검사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피고에 대해 양심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 원칙이다. 형사법 상의 입증책임은 피고의 유죄를 주장하는 검사에게 귀속되기 때문이다. 판례(2016도10912)는 이에 대해 '진정한 양심의 부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은 마치 특정되지 않은 기간과 공간에서 구체화 되지 않은 사실의 부존재를 증명하는 것과 유사하다. 위와 같은 불명확한 사실의 부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사회통념상 불가능한 반면 그 존재를 주장/증명하는 것이 좀 더 쉬우므로, 이러한 사정은 검사가 증명책임을 다하였는지를 판단할 때 고려하여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피고인은 자신의 병역거부가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서는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따른 것이며 그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이라는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하고, 검사는 제시된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진정한 양심의 부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는 악마의 증명이라는 사례가 실제 재판에서 적용됨을 잘 보여준다. 현재는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위와 같은 재판이 반복될 일은 없다고 보이나 최근 양심을 이유로 예비군을 거부한 사례에서 상기 판례가 반복되었다.[5]

연애 관계에서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단순히 느낌만으로 증명하기 어렵다. 일례로 의처증에 걸린 남편이 법원에 아내가 날 사랑하지 않으니 이혼시켜달라고 호소해봐야 아내가 당신의 착각일뿐이라고 반박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배우자가 외도를 했거나 가평계곡 살인 사건처럼 사망보험에 들어놓고 죽이려는 시도를 했다든지 객관적인 증거가 있어야 법정에서 인정받는다. 물론 직접적으로 상대에게 사랑한다는 것을 입증해보라고 할 수 있다. 날 사랑하면 뭘 해달라고 요구한다든지, 불륜 상대에게 배우자와 이혼하라고 요구한다든지 그런 것을 통해 판단의 잣대로 삼을 수 있다. 물론 사랑을 해도 여건이 안돼 그건 못해주는 걸 수도 있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그걸 감수할만큼 사랑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하고 관계를 청산하는 근거로 삼을 수 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다/없다'는 말은 무언가를 해보기 전에는 증명할 수 없다. 무언가를 해봐야 견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일례로 군 입대 전 신체검사에서 군대 갈 줄 알았던 사람이 병이 발견되어 면제를 받거나, 면제인 줄 알고 좋아했다가 현역이 나오는 사례가 있다. 내가 그것을 하는 것 또는 못하는 것을 보여주면 증명이 된다. 따라서 일상적으로 쓰는 "나는 '무엇'을 할 수 없다"는 명제는 정확히 말하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가 되어야 한다. 이때 화자는 가타부타를 말할 수 없는 판단중지(에포케) 상태가 된다. 이것은 멀리는 고대 그리스 철학인 피론주의와도 연결되고, 가까이는 70년대 한국 선불교의 숭산스님이 '오직 모를뿐'이라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다만 적성검사를 받아보고 이런저런 알바를 해본다면 대략 견적이 나와 모든 일을 다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몸이 약해 운동에 소질이 없다면, 스포츠 모든 종목을 일일이 다 해보지 않고도 한두종목 해본 것만으로 충분한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법학에서 유전자 검사의 경우 집단 유전학적 통계 자료 및 부권 확률 공식에 근거해 유전자 일치율이 99.95% 이상이면 '우연히 두 사람의 유전자가 일치했을 가능성'을 부정하고 자식과 친부모로 판정한다.# 지문 또한 용의자의 지문과 비교하여 완전히 일치할 경우 '우연히 다른 사람의 지문일 가능성'이 약 870억 분의 1에 해당하므로 강력한 증거로 채택된다. 정말로 이 세상에 용의자의 지문과 우연히 지문이 일치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사건 현장에 접근 가능한 공간적, 시간적 제약까지 모두 일치할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실질적인 확률은 사실상 0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내려간다. 이것도 손가락 1개를 비교했을 때 이야기이고 손가락 2개를 비교하면 우연히 일치할 확률은 64조 분의 1로 내려간다.

과학에서 부존재를 증명할 때는 표준편차(시그마)를 활용한다. 예를 들어 중력파 검출의 경우 5.1 시그마, 신뢰수준 99.99994% 의 결과로 나타났는데 이정도 결과라면 '다른 변수에 의해 우연히 측정되었을 가능성'을 부정하고 측정 결과가 예측한 값과 동일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3.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7 20:26:08에 나무위키 악마의 증명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무죄추정의 원칙과 비슷하다.[2] 종교인들의 착각과 달리 우주의 거대한 스케일을 보며 신에 대한 경외감을 느낀다기보단 무상함 혹은 신에게 선택받은 존재라는 것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다고 한다. 태양계가 우주의 상당 부분이라는 관념에서 머물러 있다면 이해가 안 되겠지만... 은하가 별빛처럼 수놓아진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 사진을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우리가 속한 우리은하의 경우 약 10만 년간 빛의 속도로 직진해야 지름이 맞는 크기이며, 이는 은하 중에서도 크다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이건 그냥 망원경의 한 컷일 뿐이다(...) 이런데 우주에 유일하거나 선택받은 생물이 인간이라고 단정한다면 그건 어쩌면 오만일지도 모른다.[3] 중요 논리인 진화론부터가 신이 인간을 현재의 모습으로 창조했다는 것을 전면 부정한다.[4] 영국 왕립 생물학회의 경우 신을 믿는 학자들의 비율은 겨우 4%다.[5] 양심상의 이유로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소집에 따른 입영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피고인은 자신의 예비군훈련거부와 병력동원훈련소집에 따른 입영거부가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서는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따른 것이며 그 양심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이라는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하고, 검사는 제시된 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진정한 양심의 부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이때 예비군훈련과 병력동원훈련소집에 따른 입영을 거부하는 자가 제시하여야 할 소명자료는 적어도 검사가 그에 기초하여 정당한 사유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구체성을 갖추어야 한다(2019도18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