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신화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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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문제점
4. 예시
4.1. 불교 기원론
4.2. 미트라 신앙
4.3. 이집트 신앙
5. 관련글


1. 개요[편집]


기독교구세주 예수가 실존인물이 아닌 만들어진 가상인물이라는 설. 주장에 따르면, 예수는 실존인물이 아닌 바울 혹은 신약성경으로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며, (신약)성서 그리고 기독교 자체가 다른 종교나 신화를 베껴온 아류 종교일 뿐이다. 당연하겠지만 유사역사학이다. 예수가 성경에 나와 있는 것과 차이가 많아서 그렇지, 실존했던 인물(역사적 예수)임은 분명하기 때문.

해당 주장은 예수 불자설 등 온갖(특히 반기독교적) 유사역사학과 뿌리를 공유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제기되는 반론도 상당히 닮아 있다.
이러한 신화론이 퍼지게 된 원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는데, 대개는 기독교 및 종교와 사학에 대한 이해도 자체가 부족한 경우, 혹은 기독교에 대한 반감으로 기독교와 예수를 부정할 논리를 찾기 위해 받아들이는 경우이다.[1] 그래서 예수가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주장이 딸려오기도 한다.


2. 역사[편집]


르네상스가 끝나갈 무렵(혹은 그 이후), 기존의 신화와 신학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론이 등장하고 있었다. 정치적, 사회적 개혁이 일어나면서 질문을 던진 이들 중 갓프리 히긴스라는 역사가가 여러 종교들 간의 관계를 서술하고자 하였고, 동서양 계통의 철학이 교류하면서 당시 존재했던 모든 종교가 탄생했다고 판단했다.

한편, 독일 철학자였던 브루노 바우어를 비롯한 일부 학자와 제자들은 역사적 예수와 신학에서 말하는 예수를 탐구하고 있었다. 브루노는 저서에서 처음으로 종교비교학의 기반을 제시하였고, 동일한 방법으로 기독교의 기원을 '유대교 신비주의와 그리스 철학의 융합체'로 정의하였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여러 설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이집트 신화와 기독교의 관계와 심볼 등을 정리하거나, 유대교 비의에 기반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실 이러한 주장들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닌 게, 예수는 공생애 기간 동안에는 여러 곳을 거쳐 이동했으며, 바울은 그리스어와 그리스 철학에 대한 이해도를 갖추고 있었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유대교의 헤브라이즘과 그리스-로마 문명의 헬레니즘의 교류와 융합으로 형성되었으며 초기교회가 고대 로마에서 활동하던 시기에는 영지주의와 디오니소스 밀교 등 온갖 신비학/종교의 도전을 받았다. 교회 내적으로는 이교와 영지주의, 내적으로는 몬타누스파에 시달렸고, 이는 사도신경의 기반을 구성할 근거로 작용하였다.[2]

당시 주류학계에서도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논의를 거치면서 근현대까지 살아남아 Zeigeist, Religulous 등 매체를 통해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3. 문제점[편집]


대부분 유사성과 불분명한 기원을 통한 유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높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 부분이 없지는 않으나 유사성만으로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거나 다른 쪽에서 가져왔다는 주장을 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대체로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유사성은 종교적 수렴진화일뿐 예수가 신화적 인물임을 검증하기에는 부족하며 기독교의 믿음에서의 신 그리고 구세주 신앙과 별개로 예수는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이 맞다는 설이 정설이다.

기본적으로 기독교와 사학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부족하다. 가끔 12월 25일은 타 종교의 신[3]이 태어난 날이며, 이를 기독교에서 베껴왔다는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곤 하는데, 정작 기독교 측에서는 예수 탄생일은 불명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성경 어디에도 12월 25일에 태어났다는 문구가 없다.



4. 예시[편집]



4.1. 불교 기원론[편집]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바로 예수가 인도를 거쳐갔다는 설과 불교이론을 이어받아 신약성서가 탄생했다는 설, 혹은 둘 다인 경우. 전자의 경우 예수 불자설 참고.

불경과 신약성서의 관계에서 유사성을 근거로 불경(혹은 불교사)이 원전이라는 주장은 여러 번 제기되었다. 그 중에서 성서와 불교의 유사성을 제시한 민희식 박사에 의해 출간된 <법화경과 신약성서>에 정리되어 있다. 2020년 11월에는 금강신문에 민희식 박사[4]의 초대석이 실렸다.

유마거사가 음식이 없는 상황에서 기적으로 신도들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았다./난다가 신도 모두를 떡 한 덩어리로 먹였으니 떡은 여전히 남았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었더니 여전히 남았다.(증일아함경)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군중을 먹였다.

말씀을 듣는 군중이 배가 고파서 떡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아 거두었다는 내용이다. 다른 불경에는 물고기도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완벽히 같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음식이 불어난다는 것을 제외하면 맥락상 별 유사성도 보이지 않는 것은 둘째치고, 시기부터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우선 법화경 원형의 형성 시기는 빨라야 기원전 1세기~기원후 반세기 정도다. 증일아함경이라고 해서 특별히 신약성서보다 앞서 나왔다고 하기도 힘들다. 당장 불경을 한 번만 들여다보아도 베껴쓰는 게 힘든 건 둘째치고, 이미 성경에는 열왕기하 4장 42절에 오병이어의 기적이 언급되어 있다.[5][6]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만든 떡 곧 보리떡 이십 개와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그가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그 사환이 이르되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그가 그들 앞에 주었더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먹고 남았더라. (열왕기하 4:42~44)


열왕기의 작성 시기는 BC.6~7세기이며, 기원전 7세기 즈음부터 이미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는 싯다르타가 태어나기도 전이었다. 석가는 생전에 예수처럼 경전을 남기지 않았으므로 결집이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4.2. 미트라 신앙[편집]


흔히 태양신 기념일을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제정했다는 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7] 고고학적으로는 로마 지역에서 발견된 미트라스 신전과 교의가 있었다고 한다. 즉, 서력 초에 이미 밀교의 형태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 신화설에서는 미트라 신앙을 베껴 신약성서를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실제로 여러 유사성이 발견되어 주목받기도 했다.

우선 미트라 신앙의 형태와 유입시기를 따져야 한다. 미트라 신앙은 로마시대에 군인들을 중심으로 자리잡았던 밀교, 즉 비의종교다. 집회에 참가했던 선택받은 소수의 인원이 집회에 밀의를 전수받있다. 가장 큰 특징은, 베끼는 대상이 될 문서가 없다. 미트라스 신앙은 벽화와 조각을 통해 그들의 신화를 담았다. 그러다 보니 참여 여부는 물론, 베낄 대상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지부터 문제가 생긴다. 유사성이 있다고 쳐도, 성경에 담긴 상징들이 한 종교만의 전유물이냐면 그것도 아니다. 일례로 12제자를 베꼈다고는 하지만, 이미 그리스 철학의 영향권에 있었던 시기에 문서로도 안 남은 내용에서 가져올 수는 있는가? 예를 들어, 에녹서의 경우 하늘(혹은 천국)에 그리스-로마식 등급을 매기면서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8]

따라서 미트라 신앙의 유사성 만으로 신약성서의 원전 역할을 한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미트라교의 활동이 확인된 시기는 아무리 일찍 잡아도 기원후 1~2세기 정도이며, 에녹서는 기원전 3~2세기의 문서다. 미트라스가 제시하는 심볼이 그들만의 코드는 아니라는 것. 황도 12궁의 핵심인 별자리 점성술에 대한 관념은 무려 기원전 10000년에도 있었으며, 히브리계 수비학과 구약성서[9]에도 등장하는 심볼이다. 애초에 미트라 신앙은 페르시아 멸망 후 로마로 유입되었는데, 그 시기가 정확하지 않으며, 당연히 확인되지 않은 시기가 길고 늦을수록 성서가 베끼기는커녕 영향을 주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결과적으로 미트라스의 영향은 비약 이외에는 설명이 어렵다. 신화설 논란이 있는 디오니소스 밀교의 경우, 미트라스 밀교보다 많은 고고학적 자료와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기원전에 유대인 노예들을 디오니소스 숭배에 참여시켰다. 즉 '가능성' 정도는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디오니소스 신앙이 성서의 모델이 되었다는 설은 영 인정받지 못한다.


4.3. 이집트 신앙[편집]


케메티즘과 더불어 제법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모세오경에서 드러나는 탈출기와 근동 고대사를 엮어 기독교 자체가 이집트 신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주장, 그리고 신약성서의 원전이 이집트 신앙이라는 주장이 있다. [11]

시대정신과 <The Pagan Christ>에서는 예수의 기원이 호루스 신앙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호루스는 기원전 3000년, 12월 25일에 처녀 이시스에게서 태어나 3명의 왕에 의해 숭배되었다. 호루스는 12살에 지도자가 되었으며, 30세에 세례를 받고 성직자가 되었다.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다녔으며, 병자들을 고치고 물 위를 보행하는 기적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호루스는 배반당해 책형으로 사망하였고, 3일 뒤 부활하였다. (중략) 이는 예수의 생애와 완벽하게 일치하며, 이는 호루스에 국한되지 않는다. 십계명이 사자의 서 125번 주술을 인용한 것처럼 말이다.

<시대정신>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발생한 오류다. 우선, 성경에 12월 25일이 예수의 탄생일이라는 말, 세 명의 동방박사가 찾아왔다는 구절은 없다. 예수는 귀한 곳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만났던 동방박사의 수는 불명이다. <Aicient Egyp>에 따르면, 호루스의 생일은 가을과 춘분이며, 정확히 12월 25일에 태어났다고 하지 않는다. 애초에 호루스는 죽은 오시리스를(혹은 생식기관을)살려 태어날 수 있었는데, 이게 처녀수태가 맞기는 한가? 마찬가지로, 예수는 성직자(Ministry)였던 적도 없다.


5. 관련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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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기독교 안티예수'에서도 법화경과 신약성서를 인용한다.[2] 연세대학교 출판부: 성서와 기독교 제 4장 311쪽[3] 크리슈나, 호루스, 아티스, 바커스 등... 누가 누구를 베꼈는지에 대한 고찰이 사실상 없다.[4] 서울대 불문과 출신으로, 유학 중 불경과 성경을 공부하였다. 불경과 성경의 공통점을 분석하여 <법화경과 신약성서>를 출간했고, 종교계의 비판을 받았다.[5] 예수는 율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 완성시키기 위해 왔다고 하였으며, 신명기를 포함한 여러 부분을 성서에서 인용하고 있다. 누가복음에서 말하길, "회개를 위해서는 모세선지자들이 남긴 지혜로 충분하다. 그마저 듣지 않는다면 죽었다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6] 신약성경의 그리스도론은 전체적으로 '시편 그리스도론'이다.《구약성경 개론》[7] 그러나 이는 문헌적 근거가 부실하다는 비판을 받는다.[8] 최고층에는 크로노스, 두 번째 하늘에 아프로디테, 세 번째는 아레스, 여섯 번째에 헤르메스,를 두고 일곱 번째에 별들의 조각을 모아 조각달을 배치했다. 낮을 비추는 태양과 밤을 비추는 달은 가장 낮은 층이로다. 태양이 12궁의 짐승들을 따라가도록 하기 위해 열두 달과 천둥치기, 기간, 순서와 이름을 주었다.[9] 12지파, 히브리 진법 등[10] 전통적 견해. 성서비평학에서는 빨라도 BC 1000~600년 즈음에 작성되었을 것이라고 본다.[11] 실제로 아케나톤이 만든 일신교 체제에서 유래했다는 학자들도 존재하며, 구약성서가 최초로 작성되었을 것이라 여겨지는 시기와 아케나톤의 재위기간 직후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