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구 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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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유래
3. 인물
4. 향렬자
5. 지역
6. 여담



1. 개요[편집]


오늘날의 전라북도 군산시인 옥구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2. 유래[편집]


옥구 장씨는 흥덕 장씨계 가문이며, 고로 흥덕 장씨의 시조인 장유의 부친인 장경을 공식적인 도시조로 모시고 있다.
이후 장경의 7대손 장익이 집현전 대제학 평장사에 오르고 옥성군에 봉군되어 옥구장씨로 임관분파하였다.
고로 옥구 장씨의 시관조로 모셔진다.
이후 혼란으로 계대를 잃었지만 장익의 4대손 장송이 다시 계대를 이어 기세수일세손으로 모셔진다.

한편, 옥구장씨 대종회에선 장보고와 연관성 또한 주장하고 있는 바이다.

3. 인물[편집]


장보고
장사검(張思儉): 고려 때 시랑을 역임했다.
장화(張華): 장송의 손자로, 고려 때 판도 판서를 역임했다.
장대유(張大有): 장화의 아들로, 고려 때 부사를 역임했다.
장한: 장대유의 아들로, 조선판서를 지냈다.
장윤: 장대유의 아들로, 조선 때 참의를 역임했다.
장효동: 조선 때 현령을 지냈다.
장계동: 조선조에 만호를 역임했다.
장승중: 조선 때 군수를 지냈다.
장승조: 조선 때 군수를 지냈다.
장순손: 조선 때 장사랑에 올랐다.
장현손: 자(字)는 선보(善補). 조선 때 현감을 역임했다.
장원익: 자(字)는 원린(元鱗). 조선 때 사직을 지냈다.
장명강: 자(字)는 柔白, 호(號)는 낙봉(樂峰). 조선 때 참봉을 지냈다.
장철수: 조선 때 교수를 역임했다.
장세한: 조선 때 첨사를 역임했다.
장희: 조선 때 어모장군에 이르렀다.
장만준: 字는 卿叔. 동네서 소문난 효자였다.
장순명: 조선 때 어모장군에 이르렀다.
장정: 조선 때 참의를 역임했다.
장순걸: 조선 때 첨사를 역임했다.
장인복: 조선 때 우후를 지냈다.
장만건: 字는 善叔. 조선 때 효자로 칭송받았다.
장만웅: 字는 伯英, 號는 江海. 조선 때 전국에 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장위한: 字는 世卿. 조선 때 현감을 지냈다.
장석한: 字는 伯用. 조선 때 영장을 역임했다.
장우한: 조선 때 사헌부 집의를 역임했다.
장환일: 조선 때 청안향교 전교로 역임했다.

4. 향렬자[편집]



28세: 문
29세: 환
30세: 기
31세: 현
32세: 원
33세: 병
34세: 우
35세: 시
36세: 용
37세: 호
38세: 상
39세: 응
40세: 달
41세: 종
42세: 하
43세: 동
44세: 희
45세: 규
46세: 석
47세: 승
48세: -
49세: -
50세: -
51세: -





5. 지역[편집]



• 군산시
옥구 장씨의 본관 소재지이다.

• 괴산군
옥구 장씨의 집성촌이 있으며, 괴산군 청안면에 위치한 청안향교, 옥구장씨효열비, 함이재 등 모두 옥구장씨와 관련한 문화재들이다.

•서울시
가장 많은 옥구 장씨가 거주 중인 도시이다.

• 청주시
서울을 제외한 도시 중 옥구 장씨가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이다.

• 증평군
옥구장씨열녀문이 위치해 있다.

•광주시
옥구 장씨 종친회관이 위치해 있다.


6. 여담[편집]


1. 2015년 기준 현재 남한에 6050명이 거주 중이다.
2. 집성촌충북 괴산군이며, 대부분이 충청도에서 거주 중이다.
3. 대한제국 때, 장환일은 향교의 교장으로서 황제의 서명과 우의정, 좌의정의 서명이 적힌 서를 하사받았다고 한다.
4. 항렬자로 우 자(字)는 곱게 산 사람이 없어서 대개 '운' 자(字)로 대체한다.
5. 청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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