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H. P. 블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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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헨리 퍼넬 블랜디
William Henry Purnell Blandy


출생
1890년 6월 28일
미국 뉴욕주 뉴욕시
사망
1954년 1월 12일 (향년 63세)
미국 뉴욕주 세인트올번스
복무
미합중국 해군
최종 계급
미국 해군 대장
복무 기간
1913~1950
학력
미국해군사관학교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미국의 군인.


2. 생애[편집]


뉴욕시에서 태어났고 1913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다. 멕시코 혁명당시 판초 비야를 잡기위한 베라크루스 원정대에 참가했고 1차대전엔 전함 USS 플로리다에 승선해 대서양에서 영국함대와 연합해 독일 해군과 전투를 벌였다.

전후에도 군경력을 이어갔고 2차대전에 미국이 개입하자 잠수함 부대에 배치되었다. 이후 함선으로 돌아와 이오지마 전투에서 수륙양용지원군 제1전단장을 맡아 해병대가 상륙할 수 있게 함포로 공격준비사격을 지원했고 상륙 후에도 함포지원을 맡았다.[1] 1945년 중반 태평양 함대 구축함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전후 1946년 비키니 섬 핵실험에 참가했고 1947년 대장으로 진급해 대서양 함대를 거쳐 미 함대전력사령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1950년 퇴역했고 1954년 사망했다. 시신은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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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포탄을 보충할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포탄을 퍼부어달라는 상륙부대 사령관 해리 슈미트 소장의 요청을 거의 받아주질 않아 상륙 초반 해병대의 피해를 키우는데 일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