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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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74년 5월 18일
평안북도 철산군 여한면 신포리
사망
몰년 미상
사망지 미상
이명
유상돈(劉尙燉,劉相敦), 유철(劉鐵, 劉哲), 서택(徐澤)
상훈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1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유상돈은 1874년 5월 18일 평안북도 철산군 여한면 신포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8년경 철산군에서 의병을 일으켜 계석노, 이여숭(李汝崇), 차연욱(車連旭), 이정식(李定植)과 함께 총과 곤봉 등으로 무장하고 1908년 10월 14일 평안북도 의주부 송장면 영달동에 거주하는 신운상(申雲祥)의 집에서 군자금을 거두었다. 이후 1908년 11월 17일부터 1909년 3월 26일까지 여러 차례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1909년 벽동군에서 '수주(守主)'를 처단한 뒤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의주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탈옥했다. 이후 러시아로 이주하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권업회(勸業會) 경찰부원(警察部員)으로 활동하였다. 권업회는 한인의 실업을 권장하고 직업과 일터를 알선하며 생활 기반을 다지기 위해 저축을 권장하고 상애(相愛),상신(相信)의 친목을 도모하려는 목적에서 조직되었다. 그러나 이는 러시아 당국의 공인을 받기위한 편의였다. 권업회 조직 목표는 시베리아 한인사회 각계 각층의 항일 독립운동가와 민족운동가를 효과적으로 조직하여 조국독립의 최고 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었다.

1915년 경, 유상돈은 러시아 이르쿠츠크로 이동하여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결성된 '21형제(兄弟)'라는 모임에 참가하였다. 1918년 10월에는 중국 목릉현(穆陵縣) 팔면둔(八面屯)에서 일본군 출병에 저항하여 약 150~300여 명을 결집시켰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19년 블라디보스토크에 결성된 노인동맹단(老人同盟團) 이사에 홍범도와 함께 선임되었다.

노인동맹단은 원래 1912년 신한촌에서 조직되었다가 3,1운동 이후 확대, 개편된 조직이다. 노인동맹단은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독립운동에 종사하는 청년들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독립운동단체로 독립운동자금 모집,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 제출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암살을 기도했던 강우규도 노인동맹단의 단원이었다.

노인동맹단에 참여한 뒤, 유상돈은 러시아 이만지역에서 민회장(民會長)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조선독립단결사대장(朝鮮獨立團決死隊長)으로 1922년 러시아인 오르소닌으로부터 '조선 내지에서 공산주의 선전'을 의뢰받은 치타 공산학교(共産學校) 졸업생 한경서(韓京瑞) 등과 함께 협의한 뒤 국내에 선전원(宣傳員)을 파견하였다.

1924년 9월에는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의 후원과 이동휘 지도 아래 중국 목릉현 소수분에 조직된 동양혁명대의단(東洋革命大義團)의 집행부장(執行部長)으로 활동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유상돈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3. 여담[편집]


2019년 3월 19일 KBS 교양 프로그램 이웃집 찰스에서 러시아의 고려인 출신 음악가 안톤 강이 한국에서 자신의 선조인 유상돈의 기록을 찾는 과정을 담은 내용이 방영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