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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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53년 9월 9일
충청남도 보령군 청라면 옥계리
사망
1925년 10월 23일
충청남도 보령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유호근은 1853년 9월 9일 충청남도 보령군 청라면 옥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895년 을미사변단발령이 잇달아 발발하자 1896년 2월 윤석봉(尹錫鳳) 등과 함께 유인석에게 격려문을 보내 의병을 지원했다. 또한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1906년 5월 민종식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해 홍주성 공략에 함께 했다. 그러나 일본군의 반격으로 홍주성이 재함락 당한 뒤 고향에 은거했다.

이후 국권 회복의 기회를 노리던 그는 3.1 운동이 일어나던 무렵 곽종석, 김창숙, 장석영 등이 주도하는 파리장서에 서명했다. 이후 일경에게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일제는 이들 유림이 한국인의 존경을 받는 인물들이었으므로 민족적 감정이 더욱 번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크게 부각시키지 않았고, 그는 곧 석방되었다.

출옥 후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1925년 10월 23일 보령군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유호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0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