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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영(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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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조선의 국성 전주 이씨의 시조 이한의 9대손.
2. 상세[편집]
이충경의 아들로 벼슬은 생원 호장이었다.배위는 유수(留守) 윤필인(尹必仁)의 딸이다.
슬하에 3남을 두었는데 장남은 이사십(李四十), 차남은 이삼십(李三十), 3남은 이충민이다.
`유수'는 수도 이외의 인근 도시 또는 행궁(行宮)에 두던 특수한 지방장관이다. 고려 ·조선조에 걸쳐 두었는데 중앙 관서의 직속 기관이었다.
<완산실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경영이 7세에 부모가 함께 돌아가시니 증조모 정씨(鄭氏)가 등에 업고 구걸하면서 키 워 16세가 되어 유수 윤필인의 딸에게 장가가셨다. 윤씨 부인은 증조모 정씨를 섬길 때, 증 조모 정씨가 나이가 많고 치아마저 없자 윤씨는 자신의 젖을 짜서 지성으로 효도하여 천수 를 마치게 하니, 고을 사람들이 모두 효성스런 손부라고 칭찬했다.'
<동국세기>와 <충효전>에도 똑같은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다만 다른 점은 이러하다. 경 영공의 이름이 `직(直)' 또는 `진(進)'으로 표기되고, 증조모가 오씨로, 강남의 큰 장사꾼 최 원(崔元 : 崔遠)에게 발탁되어 16세에 요명궁(寥明宮 : 瑤明宮) 거사(居士) 홍무(洪武 : <충 효전>에는 洪務日)의 사위가 되었다. 부인 홍씨의 효행이 특이하여 97세 된 증조모 오씨가 치아가 없음을 알고 자신의 젖으로 봉양하여 101세까지 사시게 하고 돌아가시자 3년상을 치 르는데 죽만 먹고 그 애통함이 예도를 넘었었다는 점이다.
[1] 유수(留守) 윤필인(尹必仁)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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