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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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출신 감독.
2. 선수 경력[편집]
군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에 진학했다. 홍익대의 에이스로 이름을 날리면서 홍익대 출신으로는 처음 국가대표가 되는 영광을 안았다. 졸업 무렵에 현대전자로 스카우트되어 현대 소속으로 충실하게 활약했다. 가드로서 비록 동 시대의 강동희, 허재 등에 비해 뛰어났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건실하게 자기 몫은 해 줬다.
그런데 현대전자가 프로화를 앞두고 연봉 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이영주에게 단기 계약을 제시하면서 사실상 그를 내치고 말았다. 아무래도 상무에서 복귀하는 이상민을 염두에 둔 것 같은 행동이었지만 그래도 이 행동으로 인해 이영주는 졸지에 붕 뜨면서 잠시 공백기를 가지게 됐다. 여기에는 이영주 자신의 실수도 한몫했는데 사업하자는 선배의 제의에 거짓으로 무릎이 아프다고 하면서 구단을 나가려고 했다가 없던 일이 되면서 다시 농구를 하려고 했다고 한다. 결국 이 때문에 현대에서 나가게 됐다.
1997년 3월 단대부고 코치로 부임해서 괜찮은 성과를 냈다. 1998년 1월경에 막 창단한 용인대학교 농구부 감독에 부임했지만 학교가 구단을 한 달만에 해체하면서 백수 신세가 됐다.
그를 구원한 것은 구단 선배 출신인 박수교였다. 박수교의 부름을 받아 기아자동차 소속으로 2시즌 간 백업 가드로 뛰었다. 하지만 결국 프로 무대를 밟았다는 것 외에는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은퇴했다. 그리고 바로 역시 구단 선배인 박종천이 감독으로 있던 여자 농구단 현대건설로 건너가서 코치를 맡으면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3. 지도자 경력[편집]
박종천 감독과 함께 2002년 구단 역사상 최초의 한국여자프로농구 우승을 일궜다. 박종천 감독이 구단 수뇌부와의 갈등으로 사임한 후 감독 대행을 거쳐 정식 감독이 됐다.
그런데 이때는 현대그룹이 풍비박산나던 시절이라 농구단 지원도 끊어지던 무렵이었고 힘겨운 시간을 이영주는 끈질기게 버티면서 2004년 신한은행이 농구단을 인수될 때까지 선수들을 다독이며 그 결실을 맛봤다. 바로 2005년 WKBL 우승을 차지했고 2007년 겨울리그에서도 역시 우승을 차지하면서 일약 여자 농구판의 강자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특히 2007-08 시즌을 앞두고 하은주와 정선민을 영입하면서 초강팀으로 변신시킨 그 시점에서...
전격적으로 감독직을 그만뒀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건강 문제였다. 엄청난 스트레스로 몸무게가 10kg 이상 빠지고 신경성 위염과 불면증이 겹치면서 의사가 정말 이대로 농구 감독을 계속하면, 몸이 망가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역시 구단 내 파벌 문제였는데 트레이너를 해임하는 과정에서 해임된 트레이너가 은행 수뇌부에 진정서를 넣으면서 은행 측의 감사와 스태프 기용을 둘러싸고 구단 고위층과 불화를 빚은 것이 컸다. 여기에 우승 감독인데 연봉이 타 구단 감독에 비해 적었던 것도 한 원인이었다.[2] 결국 이 두 가지가 겹치면서 자진 사임하고 구단을 떠났다.
이후에는 잠시 모교인 군산고등학교 농구부 감독을 맡았다가 물러났다.
참고로 2005년 5월 전주원 코치가 선수 복귀를 선언해 코치직에 공석이 생기자 당시 모비스에서 FA로 풀린 후 재계약하지 못하고 은퇴한 위성우를 신한은행의 코칭스태프로 불러들인 장본인이기도 하다.
2020년 7월에는 한국골프대학교 농구부 감독으로 부임했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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