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위주 교육/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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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역사적 배경
1.1. 학력과 집단으로 갑과 을로 나누는 사회
1.2. 친척들 사이의 무시로 인한 명절증후군
2. 독재정권 유지의 수단
3. 인맥에 관계없는 상대적으로 가장 공평한 권리 보장
4. 입시 위주 교육을 찬성하는 국민들


1. 역사적 배경[편집]


현 입시위주 교육의 뿌리는 메이지 일본의 교육제도[1]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메이지 일본의 교육제도 뿌리는 18세기 프로이센의 교육제도[2]에 뿌리를 둔다.

입시위주 교육은 해방 직후부터 1990년대까지는 매우 효과적인 교육정책이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미군정, 6.25를 겪으며 기존의 질서가 완전히 붕괴되었고, [3] 국력은 크게 약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남침 위협으로부터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라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국민 전체의 교육과 문맹탈출로 빠른 지식 수준 성장이 필요했다. 그런데다 나라는 가난하고 힘없지, 기술은 뒤쳐져 있지, 땅에선 기름 한방울 안나지, 관광자원같은걸로 먹고 살 수도 없는 땅덩어리에 주변에는 중국과 일본, 러시아같은 한국보다 국력이 월등한 나라들이 버티고 있었다. 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범국민적인 산업화 교육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단시간안에 성공시키기 위해 한국은 모든 역량과 자원을 "교육"에 쏟게 되었다. 이것이 입시위주 교육이라는 현실적인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다수의 문맹인 국민들을 빠르게 산업화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노동력으로 교육시키는 것(기술력을 이해, 개발시키고 노동을 위한 기초적인 지식 습득)이 목적으로 현장에서 일꾼으로 쓰는데 필요한 것을 선택적으로 속성으로 암기시키며 경쟁시키는 것이 당시엔 최선의 정책이었다.

거기에 지리적으로,문화적으로 비슷하면서 초고성장을 기록하던 일본의 교육체계가 아무래도 정부가 한국에 적합한 교육제도를 찾는것보다 이미 성공사례를 보인 일본을 따라가는 것이 비용으로 보나 시간으로 보나 훨씬 쉽고 간편했었고 당시 경제적 상황이 반 한개에 80명씩, 학년당 20개씩은 될 정도로 한명한명씩 맞춰서 교육시킬수 있는 형편도 아닌데다가 시대적 상황은 제조업이 핵심적인 산업이었다.(이와 비슷한 사례인 중국만 봐도 알수 있다) 당시에는 창의성 위주의 서비스업의 시대가 아니었으니 산업구조도 맞아떨어졌다.

정치적으로 봤을 때 당시 독재 체재로도 이만큼 안전하게 체제를 유지하는것도 힘든것도 작용했다. 창의성을 길러서 국가에 비판의식을 기를지 아니면 당장 제조업에 필요한 산업역군이 필요한지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이와 별개로 주입식 교육만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고등교육을 배우는 방법이라고는 대학 이외에는 책 밖에 별다른 학습방법도 없었으며, 대학 안에서 해당 전공에 관한 지식, 업계에 관한 산업동향과 흐름,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습득할 방법이 대학뿐이었고 배웠다는것을 증명하는 방법도 대학졸업장 뿐이었으며, 같은 전공별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인맥이 만들어지는 유일한 방법도 대학뿐이었다. 인터넷이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4]

따라서, 한국의 산업화와 정치적 상황,국가의 경제상황,지리,문화적으로 가까운 일본의 빠른 고성장의 선례, 대치상황,대학이라는 구조상황을 고려하면 국민 전체의 빠른 교육이 필요했기에 일본의 선례인 입시위주 교육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나타난 것. 적어도 한국의 근현대 입시위주 교육은 국민의 빠른 산업화 적응이라는 목적의식이 뚜렷했고, 이는 어느정도 성공적이었다.

문제는 이런 입시위주의 교육은 문맹상태인 국민들이 일정 수준까진 지식을 빠르게 습득해도, 고도의 정보화된 현대 시대에는 시대에 굉장히 뒤떨어지고 비효율적이면서 결과적으로 더 많은 비용을 써야 하는 시스템이라는 것. 그러니까 당시에는 가장 효율적이었다가 현재에 들어서는 가장 비효율적인 시스템에 된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정보화된 한국 사회에서는 웹서핑으로 교과 지식과 전문지식을 원할때 손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어서 사실상 의무교육 외의 전문적인 산업화와 지식전달의 필요성은 많이 퇴색되었다.

IMF를 겪은 부모 세대들의 공포가 반영된 현대의 입시 경쟁은 과열경쟁으로 변질되어 과도한 병폐를 낳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명분과 의도를 잃은 입시위주 교육은 사실상 부모 세대들에 의해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한 용도로만 변질되었다고 보는게 정확하다. 특히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하여 안그래도 시대에 뒤떨어지는 입시 위주 교육은 국가를 완벽하게 도태시키고 있다.

물론, 한국의 경우는 규모의 경제도 어느정도 확립이 되었고, 고도화된 정보화 기술면에서 떨어지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국민 전체의 사회적응및 지식은 어느정도를 유지하지만, 사회가 발전하기 위한 고도의 지식은 모두가 할 수 없으므로 선별적으로 할 수 밖에 없는데, 이를 위해서는 사회가 필요한 지식을 선별하는 것은 물론, 이를 지식에서 생산기술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실패도 어느정도 사회가 떠안아야 한다. 하지만 입시위주 교육은 철저하게 효율과 대단위 생산에 치중해있으므로 그런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선진국의 출산률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예전 같으면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그중에 튀는 생각, 지식을 가진 젊은이들의 창의성을 발굴해서 활용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젊은이와 어린이 수가 줄었기 때문에 그만큼 사회에 새로운 피가 공급되지 못하고 사회적 경직성이 가속화된다.

선진국은 이제 있는 사람이라도 지켜내야 하기 때문에 ADHD아스퍼거 등과 같은 경증장애아를 대상으로 한 특수학교가 있는데, 예전같으면 사회가 이들을 받아들일 여력이 없었지만 이제 이런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사회성, 학습능력 등에 있어서 느린 것은 사실이지만 제대로 된 특수교육을 받는 등 관리를 잘받는다면 충분히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사회가 보호하고 육성하는 것이다.

사실상 대한민국의 입시위주 교육 시스템은 마치 핑크 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in the wall 2의 뮤직비디오처럼 국민의 정서와 지식들을 공산품처럼 찍어내는 거나 다름없다.

비유하자면, 70~80년대 한국 경제는 스타크래프트에서 보급고로 인구수를 확보한뒤 해병을 빠르게 생산해서 많은 물량을 빨리 확보하여 기본적인 전투력을 구축한 수준이었지만, 게임이 장기화되고 테크트리가 올라가면 탱크, 베슬같은 고테크의 강한 유닛이 필요한데, 아직도 마린 위주의 병력을 고수하여 탱크, 베슬 들어갈 자리에 해병만 잔뜩 들이붓고 성과를 못내는 꼴이다.

정부도 그 상황을 알고 반도체나 휴대폰 같은 소수 고부가가치 정보산업에 투자해 성과를 냈지만 이들의 실적에 따라 경제가 요동을 치는 불균형과, 중산층,서민 복지 약화로 인해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이상으로 인적 기반이 흔들리면서 위기를 맞는 것.

다시 스타크래프트의 예로 돌아가면 2000년대 이후 한국 경제는 염보성이 자주 실패하는 SK테란처럼 다수 마린과 소수의 베슬,탱크가 갖춰져있긴 하지만, 메딕(서민 복지)이 부족하여 스탑럴커같은 내부 모순에 취약하고, 베슬(고부가산업)이 소수라 이걸 잃으면 대책이 없다는 것, 또한 SK테란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병력 통제가 매우 어려운 조합이라 그만큼 컨트롤이 중요한데 컨트롤하는 경제부처 높으신 분들과 다른 주체들의 상태가 영 좋지 못하며 심지어 중산층,서민층과 반목하고 있다는 것.

중국이나 인도처럼 들이부을 마린이 압도적으로 많다면 어떻게든 버틸수 있지만 한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주요 선진국에 비해 인구도 적고, 출산율은 국가 위기를 걱정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 물량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게 심각한 문제다.

거기다 현재 학부모 세대들이 대학 입학~졸업후 IMF라는 초대형 경제파멸 사건을 겪으며, 이로 인해 이전까지 공부 잘하면 부자, 못하면 부자가 안된다 수준에서, 공부 잘하면 살고, 못하면 죽는다 수준으로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5] 이런 특수성 때문에 과거 6~80년대의 고학력자 대우까지 겹쳐져 기성 세대 전반이 좋은 대학 나와 대기업에 취업해야 살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박혔다.

원래 고학력자를 우대하던 시대에 살던 50대 이상 세대는 물론, 그들의 아들딸로 80~90년대 입시위주 교육을 받고 자란 지금의 30~40대 학부모들은 당연히 자기가 배웠던대로 자식에게 대물림하게 되어있다. 이것이 학벌 카르텔이라는 왜곡된 형태로 더욱 공고해지게 된 것.

지금의 10대 혹은 20대 에게 "불지옥 반도" 라는 말을 유행하게한 원인이 이것으로 보이는 것은 기분탓일 것이다.[6]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대학입시같은 시험에 목을 매는 이유가 과거 한국사회는 집성촌을 기반으로 한 씨족사회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 마을에서 장원급제자가 나오면 그 동네 사람들이 그 장원급제자를 방패막이삼아 부정부패 등 나쁜짓들을 마음껏 저지를수 있게되기 때문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지금도 행정고시 등 고시에 합격하면 시골동네에서 현수막 걸리고 동네 잔치 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한다.[7]

요약하자면, 우리나라가 가난하고 힘없었던 데다, 먹고살기 위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택한 결과가 이것인데, 시대가 변하면서 정치적 무관심으로 정책도 변하지 못해 실정에 안맞는 구시대적인 정책으로 변해, 이를 방치해둔 결과 먹고살기 어려워진데다 무한경쟁으로 돌입한 입시교육이 여러 폐단을 낳게 된 것이다.

1.1. 학력과 집단으로 갑과 을로 나누는 사회[편집]


학력이 좋거나 인기있는 직업에 종사하지 않으면 차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서는 소개를 받거나 집단에 소속될 때 대학이 어디냐, 회사가 어디냐 같은 걸 질문받는다.
문제는 나이가 많은데 직장이 없거나 사회적 홀대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하면 바로 무시하고 대화를 그만두는 사람이 세상에는 꽤 많이 있다. 반대로 명문대를 나오고 좋은 직장에 다니면 그것과 아무 관계 없는 사람에게도 쉽게 신뢰를 얻고 쉽게 호의를 받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혜택을 받는다. 이런 혜택을 주는 이유는 좋은 인맥이 돼서 떡고물이 오지 않을까 하는 시커먼 생각을 대놓고 드러내는 것으로 보면 된다. 결혼 배우자의 조건을 볼 때도 애 키우고 먹고 살만한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대기업, 고액 연봉, 사회우대 직업 종사자를 선호하는 것도 마찬가지다.[8]

인기있는 직업을 가지지 못하고,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고, 학력이 좋은 것도 아닌 3박자를 갖춘 사람이 살려면 단순히 빈궁한 것 외에 많은 어려움이 생긴다. 친구를 사귀고 싶어도 면전에서 대놓고 비웃음을 당하고 친해지지 않으려고 슬슬 멀어지는데 그 원인이 학력이나 직업 때문인 상황, 애인을 사귀고 싶은데 맞선에서 거절당하는데 그 직접적인 이유가 학력이나 직업 때문인 상황, 결혼하겠다고 상대 부모님에게 찾아갔는데 학력이나 직업을 이유로 거절당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이런 차별을 한 번도 안 받아 본 사람이거나 멘탈이 매우 강한 사람이라면 행복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학력, 직장만으로 차별을 겪으면 갑과 을을 따지지 않고 살던 사람도 저절로 억울해지게 마련이다.

특히 외부인에게 그냥 명절날 한 소리 듣는 정도가 아니라 무능력한 상사 밑에서 밟히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에게 밟히는 위치에서 벗어나려는 심리가 상당하다. 교육열을 해소하고 싶으면 자기 자신부터 다른 사람이나 다른 사람의 자녀에게 "걔는 공부도 못 하고 다른 할 줄 아는 것도 없다며? 그 아저씨 아직 취업도 못했다며? 그 누나 월급 120만원 받는다며? 후훗" 이런 오지랖을 부리며 남의 자존감을 깎아먹는 이야기를 자제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도 "냅둬요, 우린 우리만의 삶의 방식이 있음"하면서 쿨하게 무시해버리는 태도도 필요하다. 이런 오지랖은 "정부고위공직자, 교사, 기업인"이라 해도, 그 어떤 정책을 들고 와도 한 두사람의 힘으로는 해소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거 말고는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해결책은 없다. 정말 없다.


1.2. 친척들 사이의 무시로 인한 명절증후군[편집]


공부 강요는 단순히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만 행해지는 게 아니다. 한국인들은 추석이나 설날같은 명절이나 집안 행사때 다른 친척의 자녀와 자신의 자녀를 비교하기 좋아한다. 만악의 근원

자녀가 초중고에서 전교권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하거나 명문대 재학생이거나 대기업,금융권,전문직 또는 사회우대 직업 종사자[9]라면 큰 문제 없이 넘길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친척들 사이에서 학교에서 공부 몇등하냐?, 어느대학 어느과냐?, 취업했냐?, 연봉은 얼마냐?, 결혼은 언제하냐? 등과 같은 듣는 사람 자존심 상하게 만드는 질문을 대놓고 물어보며 자존심을 상하는 경험을 당한다.[10][11]

상황이 이렇다보니 요즘에는 남들 앞에 자랑할 만하거나 혹은 말주변이나 순발력이 개그맨 수준으로 뛰어난 자녀가 아니라면 명절날 아침에 제사만 지내고 바로 집으로 가거나 제사 안지내는 집의 경우는 아예 고향에 안가는게 거의 불문율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공부뿐 만 아니라 대기업 입사나 고시합격 등에 목맬려고 하는 것도 이러한 배경도 있다고 볼수 있다.


2. 독재정권 유지의 수단[편집]


공부 강요가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의 특징들은 하나같이 똑같다. 바로 단 한가지 목표에 집중시키는 것이다. 전 국민을 한가지 목표에 집중시켜서 딴 생각을 아예 품지 못하게 원천봉쇄하는 수단으로서 공부 강요를 하는 것이다.

일례로 야간자율학습항목의 '제정 배경에 관한 일화' 문단을 보면 전두환대통령 시절에 사교육 근절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4.19 혁명의 재탕을 막는 등 학생들이 시위에 나서지 못하게 막기 위해 야간자율학습을 실시했다는 내용이 있다. 정권의 색깔에 따라 무엇을 독재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삼는지는 다르지만 전두환 정권에서는 입시만을 위한 교육을 시키는 쪽을 택했다. 그래서 이에 충실하지 못할수록 도태되는 시스템이 되었고 결국 학생들은 내 코가 석자인지라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만 했으므로 점점 정치에 대해서 멀어지고 입시에 대한 경쟁에만 전념했다.

386세대 항목에서 볼수 있듯, 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연고전을 공중파 방송에서 생중계하기도 했고, 대학 원서마감일에는 10~20위권안에 드는 상위권 대학들의 경쟁률을 마치 선거 개표방송을 하듯이 무슨 대학 무슨 과 몇대 일 이런식으로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해서 공개방송을 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대학가요제 등에서 불려진 노래가 전 세대를 걸쳐 히트를 치거나[12], 대학 캠퍼스를 배경으로 한 청춘드라마들이 많은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386세대는 20퍼센트도 되지 않는 극소수가 대학교에 진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캠퍼스 문화가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서 많이 미화되면서 노출되었으며, 또한 대학생을 주도로 한 청년문화가 한 세대의 문화를 리드하며 당시 대다수였던 고졸이나 그 미만의 학력을 가진 자들이 대학을 가지 않은 것에 대해 수치스러움과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한 마디로, 학력이 낮은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떳떳한 일원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독재정권에서는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학생시위라는 이름의 방해요소를 제거함으로서 자기들 마음대로 독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노태우 이후의 민주정권이 된 이후에도 이 입시위주 교육이 전혀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 말대로라면 입시위주 교육이 있는 이유가 독재 때문만은 아니라는 이유도 된다.[13][14] 지금도 한편으로는 독재라는 이야기도 된다.

결국 집권자가 국민의 불만의 방향을 다른데로 돌려서 국민들끼리 서로 이간질 시켜서 이이제이??자신들이 의도하는 대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도구로서 입시위주 교육을 실시했다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도 체감상 1960년대의 고졸과 2010년대의 대졸이 비슷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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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맥에 관계없는 상대적으로 가장 공평한 권리 보장[편집]


사회 일각에서는 수능이나 공무원 시험과 같은 정량적 기준은, 기득권층이 자기네 계층의 공고화를 위해 만든 기준에 불과하며, 가난하지만 실력 있는 인재들의 정성적 장점들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행정학의 이론에 따르면 이건 완전히 거꾸로다.
도리어 가난하지만 실력 있는 학생들을 제대로 뽑기 위한 치우침 없는 객관적인 잣대를 찾으려다 나온 것이 바로 수능과 공무원 시험과 같은 정량적 기준에 의한 평가체제이다.[15] 이런 시험들은 어떤 한 개인에 대해서 "이 사람이 얼마나 똘똘하고 성실한가"를 점수로 치환해서 설명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대치동 학생이든 뒷골목 양아치든 차별 없이 똑같이 숫자로만 보여준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뒤집어서 말하면, 현대사를 살펴보면 수능을 폐지하는 등 '정성적 기준'을 쓰게 되면 무슨 음서제니, 천거니 따위의 별명이 붙는 걸로 인재를 선별하게 되는 등 전근대적인 상황이 도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게 "같이 오랫동안 살면서 지켜봤는데 저놈 쓸 만하더라"라는 주관적 제보 정도로 끝나면 정말 다행인데, 실제로는 "업무는 배우기 싫어하지만 아부 잘 하고 비위 잘 맞추는 자, 부모님이 우리 회사의 간부인 자, 부모님이 고위공직자인 자, 부모님이 우리 회사에 많은 투자를 해 줄 수 있는 부유한 자" 위주로 뽑히게 된다. 낙하산 인사 문서의 경우, 하급 기능 계약직의 경우 상당수가 시험이 아닌 인맥을 통해 뽑게 된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4. 입시 위주 교육을 찬성하는 국민들[편집]


입시 위주 교육이 수십년이 지나도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이 없는 이유 중의 하나로 한국인들 중에는 입시 위주 교육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사고방식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고, 이런 문제가 대물림되기 때문에 입시 위주 교육이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없는 것이다. 김상봉 교수 등 학벌주의 타파를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지만 이들의 주장은 아직 사회적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반적으로 대학에 들어가 고학력자가 되면 돈을 편하게 벌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 국민들 중 상당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 또한 대학에 가지 못한 저학력자들의 경우는 3D 업종에 종사하거나 학력으로 인해 사회적 불이익을 받는 경험을 한 뒤 입시 위주 교육을 찬성하는 사고방식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1번 목차에서 일부 사례가 언급되긴 했으나 더 자세한 사례에 대해선 추가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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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막부가 무너지며 대격변을 겪었고, 메이지 정부는 서양식의 산업화를 통한 성장 동력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독일 제국(프로이센)의 급성장에 주목한 메이지정부는 농사짓고 살던 평민들을 공업 현장의 일꾼으로 투입시키기 위해 프로이센의 방식을 받아들였고 이것이 입시 위주 교육의 뿌리이다.[2] 프로이센은 유럽 변방에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 국가 체계를 빠르게 정비하는 과정에서 기업과 군사력을 키우기 위해 경쟁위주의 근대 교육체계를 최초로 도입하여 독일 제국의 뿌리를 만들었다.[3] 그러나 이승만 정권에서 일본 정부제도식 개편을 통해 친일파 출신이 정계에 진출하면서 재산 유치의 처벌이 이뤄지지 않아 재산과 권력상의 이점이 많았고, 근현대 정계의 주 권력이 되었다. 오히려 독립유공자와 그의 후손은 국가차원의 지원이 없어 가난하게 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4] 현재는, MOOC를 이용해서 아이비리그 수준의 대학강의를 공짜로 듣는 것도 모자라 과제도 내주고 배웠다는 증명서도 내주고 인적 네트워크 인맥은 링크드인, 정신적인 오프라인 인맥은 meetup 등으로 다 대체가 가능해졌다.[5] IMF 이전에도 아는것은 힘이었기 때문에 6~80년대에는 고학력자가 매우 적은 상황에선 대우도 매우 높았다.[6] 사실, 이게 취소선 처리되어있지만 절대로 농담이 아니다.[7] 장원급제후 동네 잔치 여는 까닭?[8] 사실 이러한 직업에 종사하게 되면 연봉과 별개로 소위 말하는 또라이들을 주변에 두게되거나 상대하게 될 가능성이 낮아지는건 현실이다. 어쩌면 '남의 말 함부로 하지마라.'란 말도 '사람을 가려서 사귀어라.'란 말을 빙빙 돌려서 표현한 것이라고 볼수도 있다.[9] 이러한 직업에서 종사하는 자녀들은 명절날 쫙빠진 정장차림을 하고 정장 상의 왼쪽 카라에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회사나 단체의 뱃지(삼성그룹 로고, SK 행복날개 등)를 달고 친척집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대기업에 다닐 정도라면 설령 명절날 이러한 질문을 듣는다해도 임기응변에 있어서도 뛰어난 경우가 많다보니 질문공격에 잘 대처하기도 한다.[10] 참고로 이런 비교질은 시골의 집성촌 지역에서 더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으며 능력 좋은 자식 두고있는 부모는 주변 친척으로부터 '판사아들 있으니 밥 굶을 일 없겠다' 식의 부러움을 받는다. 하지만 부모든 자식이든 사회성이나 처세술이 좋지 않다면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된다는 것도 함정 또한 집안간 비교질이 워낙에나 심한 분위기다 보니 집성촌이 시골댁인 학생들은 부모로부터 입시와 관련된 압박과 스트레스도 일반 집안보다 더 많이 받는 경우도 많으며, 이런 문제는 작은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입시 및 취업경쟁 과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다.[11] 성적, 학벌, 직업 등 능력에 있어 뛰어나지 않더라도 말주변이나 순발력 등이 좋아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처능력이 뛰어나다면(특히 개그맨, 영업사원 등) 친척으로부터 질문공격을 받아도 당황하지 않고 잘 대처하는 경우도 있긴 있다.[12] 대표적으로 88년 대학가요제 대상곡이자 응답하라 1988의 주제곡이기도 한 무한궤도 - 그대에게 등이 있다.[13] 야간자율학습이 야근의 예행연습이라는 주장도 있다. 모 단체가 달력에서 공휴일이 늘어나는 것을 싫어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인 것이다. 어차피 대부분의 인문계 고등학교는 졸업 후 명문대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대기업 사무직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 불문율이다. 일단 SSAT 등 각종 인적성 시험들이 인문계 고등학교 출신자들에게 적합하도록 출제된다는 점을 생각해보자.[14] 삼성 X파일 사건 등에서 볼수있듯 93년 이후로 군사독재는 끝났지만 그 대신에 자본독재가 시작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식으로 경쟁이 심해질수록 자본가 입장에서는 보다 더 우수한 인재를 발굴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부분도 있다. 어떤 원리냐면 하위권 학생들이 경쟁해서 평균점수를 올리게 되면 중위권 학생들이 더 긴장해서 더 박차를 가할 것이고, 중위권 학생들이 성적을 올리면 상위권 학생들이 더 우수한 인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즉 육상, 수영 등 체육종목으로 비유하자면 중하위권 학생들에게 들러리 또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맡게하는 것이다.[15] 지금의 시험 제도는 과거 제도가 19세기에 서구로 넘어가서 생겨난 시스템이다. 과거 제도의 평가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