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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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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儼
?~266
삼국시대 손오의 문관이며 자는 자절(子節)로 양주 오군 사람.
젊어서 이름이 알려져 현위를 지냈고 아는 것이 많아 대홍려에 임명되었으며, 265년에 사마소가 사망하자 266년 1월에 장엄은 오관중랑장 정충과 함께 조의를 표하러 갔다. 그 곳에서 가충, 배수와의 문답을 거절하고 양호, 하정 등과 우의를 쌓지만 장엄은 돌아오는 길에 병사한다.
이 사람이 지은 책 중에 묵기(黙記)라는 것이 있는데, 제갈각의 위작이라는 논란이 있는 제갈량의 후출사표도 여기에서 나왔다. 후출사표의 제갈각 위작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장엄이 제갈각과 가까운 사이라 후출사표를 실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정사 삼국지 내에 제갈각과 장엄이 서로 관계가 있었다는 내용은 전혀 없어서 오히려 위작론의 근거가 없어지는 감도 있다. 어쨌거나 습착치가 한진춘추에 인용한 묵기의 후출사표 말고도 배송지가 묵기의 내용 중에 일부를 정사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에 인용했다. 그 내용인 즉슨 묵기의 술좌편이라는 부분에서 제갈량에 대해 평가한 내용으로 오나라 사람의 관점에서 쓰여졌기에 편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이 위나라 인구의 1/9밖에 안되는 인구로도 대항했고 농업, 군사, 형법 등을 잘 정비해서 기산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했으며, 또한 사마의가 10배나 되는 땅과 군사를 보유했지만 제갈량이 이를 발랐다는 것으로 군사적 능력에 높은 평가를 주면서 제갈량이 단순한 문관이 아니라는 반론을 펼칠 때 많이 인용된다.
아래는 배송지가 묵기에서 인용한 전문.
그의 아들로 장한(張翰)이 있고 자는 계응(季鷹)으로 서진 때 사마경 휘하에서 대사마동조연을 지내다가 팔왕의 난이 일어나자 벼슬을 그만두었다. 또 다른 아들 장발(張勃)은 서진의 역사가로서 손호의 죽음까지 다루는 역사서인 오록(吳錄) 30권을 썼다. 현재 오록은 1권 분량의 집본으로만 남았지만 산일되기 전 오록 역시 배송지가 정사 삼국지에 인용하였다.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9에서만 등장하는데 능력치는 통솔 38, 무력 27, 지력 79, 정치 86으로 매우 좋다. 제갈량을 좋게 평가해줬기에 코에이가 인심 좀 쓴 듯하다. 가진 병법도 누선, 혼란, 배반으로 괜찮은 편.
?~266
1. 개요[편집]
삼국시대 손오의 문관이며 자는 자절(子節)로 양주 오군 사람.
2. 생애[편집]
젊어서 이름이 알려져 현위를 지냈고 아는 것이 많아 대홍려에 임명되었으며, 265년에 사마소가 사망하자 266년 1월에 장엄은 오관중랑장 정충과 함께 조의를 표하러 갔다. 그 곳에서 가충, 배수와의 문답을 거절하고 양호, 하정 등과 우의를 쌓지만 장엄은 돌아오는 길에 병사한다.
이 사람이 지은 책 중에 묵기(黙記)라는 것이 있는데, 제갈각의 위작이라는 논란이 있는 제갈량의 후출사표도 여기에서 나왔다. 후출사표의 제갈각 위작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장엄이 제갈각과 가까운 사이라 후출사표를 실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정사 삼국지 내에 제갈각과 장엄이 서로 관계가 있었다는 내용은 전혀 없어서 오히려 위작론의 근거가 없어지는 감도 있다. 어쨌거나 습착치가 한진춘추에 인용한 묵기의 후출사표 말고도 배송지가 묵기의 내용 중에 일부를 정사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에 인용했다. 그 내용인 즉슨 묵기의 술좌편이라는 부분에서 제갈량에 대해 평가한 내용으로 오나라 사람의 관점에서 쓰여졌기에 편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이 위나라 인구의 1/9밖에 안되는 인구로도 대항했고 농업, 군사, 형법 등을 잘 정비해서 기산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했으며, 또한 사마의가 10배나 되는 땅과 군사를 보유했지만 제갈량이 이를 발랐다는 것으로 군사적 능력에 높은 평가를 주면서 제갈량이 단순한 문관이 아니라는 반론을 펼칠 때 많이 인용된다.
아래는 배송지가 묵기에서 인용한 전문.
그의 아들로 장한(張翰)이 있고 자는 계응(季鷹)으로 서진 때 사마경 휘하에서 대사마동조연을 지내다가 팔왕의 난이 일어나자 벼슬을 그만두었다. 또 다른 아들 장발(張勃)은 서진의 역사가로서 손호의 죽음까지 다루는 역사서인 오록(吳錄) 30권을 썼다. 현재 오록은 1권 분량의 집본으로만 남았지만 산일되기 전 오록 역시 배송지가 정사 삼국지에 인용하였다.
3. 미디어 믹스[편집]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9에서만 등장하는데 능력치는 통솔 38, 무력 27, 지력 79, 정치 86으로 매우 좋다. 제갈량을 좋게 평가해줬기에 코에이가 인심 좀 쓴 듯하다. 가진 병법도 누선, 혼란, 배반으로 괜찮은 편.
[1] 이게 그 오나라 입장에서 쓰여졌다는 것을 입증하는 글이다.[2] 북쪽의 적이란 뜻으로, 보통은 이민족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조위를 뜻한다.[3] 여기서 '농업에 힘쓰고 전쟁하는'의 한자 단어가 '경전(耕戰)'인데 이는 법가의 서적인 상군서(商君書)의 경전편에서 단어를 따온 것이다. 상군서의 저자 상앙은 백성들에게 농사를 권장해 경제력을 키워 부국을 이루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강병을 이루는 부국강병 정책으로서 이른바 '경전론'을 제시했는데 장엄이 제갈량의 정책을 평가하며 '경전(耕戰)의 대오를 갖추게 했다'이라고 씀은 곧 그가 파악하기론 제갈량이 법가적 입장에서 부국강병을 이루었다고 봤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 단어 바로 다음에 제갈량이 '형법을 정제(整齊)했다'는 말을 덧붙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장엄은 법가적 정책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법으로서 질서를 안정케 한 인물로 제갈량을 파악했음을 알 수 있는데, 정작 제갈량 본인은 상앙은 덕으로 교화함이 부족했다고 비판하긴 했다.[4] 춘추시대 정나라의 재상 공손교(公孫僑)의 자이다.[5] 즉 삼국이 아직 정립된 상황에서도 제갈량은 천하의 큰 인물로 인정받았다는 이야기이다. 묵기의 이 편의 내용으로 보아 아직 촉한이 강건하게 버티고 있던 시절에 묵기가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미 삼국시대 당시에도 제갈량은 시대의 거물로서 존경받고 있었던 것이다.[6] 여포가 포위당했을 때 진궁이 말한 그 기각이다.[7] 원문 단어는 '숙정(肅整)'으로 행동이 단정하다는 뜻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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