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용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대한민국 가톨릭 교회의 제2대 전주교구장, 제4대 대구대교구장. 세례명은 '바오로'이다.
2. 생애[편집]
용산 예수성심학교 재학 중 1914년 대구대목구에서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개교하자 성 유스티노 신학과로 편입, 1918년 졸업과 동시에 사제품을 받았다.
1918년 부터 22년 까지 고향인 함양지역의 사목을 전담하였고, 22년부터 31년까지는 목포로 임지를 옮겨 거기서 사목했다.
1931년 대구관구 대신학교 교수신부로 임명되어 대구로 돌아온다.
1941년 성청으로부터 전주지목구장의 소임을 받고 46년까지 재임하다가, 1946년 제3대 대구대목구장 하야사카 큐베에 주교가 사망하자 이에 대구대목구장을 겸하게 되어 대구대목구장좌에 착좌한다.
1948년 교구장직 사임을 청원하였고 수리된 후 당시 춘천지목구장이었던 구 토마스 몬시뇰의 요청을 받아 본당 사목과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의 지도사제로 봉직했다.
1968년 현직에서 물러나 교회사 연구에 전념하여 <한국 가톨릭사의 옹위>, <배론성지> 등의 교회사 서적을 집필하였다.
1975년 11월 1일 사망하였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2 07:27:24에 나무위키 주재용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다만 가톨릭대사전에서는 출생지를 경남 거제로 명시하고 있다. 본 문서에서는 대구대교구의 기록을 준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