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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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前 KIA 타이거즈 소속의 외야수.
2. 선수 경력[편집]
2.1. KIA 타이거즈[편집]
2.1.1. 2005~2011 시즌[편집]
단국대학교를 졸업[1] 하고 2005년 계약금 1억을 받으며 데뷔, 좌타 거포 유망주로 나름대로 기대를 모았으나 별로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이후 2008년 경찰청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2010년 초 제대. 제대한 후에도 포텐은 터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2010년 1군에서 2개의 홈런을 기록하면서 최소한의 기대는 가지게 만들었지만.. 2010 시즌이 끝나고 12월 26일에 결혼했다.
2.1.2. 2012 시즌[편집]
2012년까지도 여전히 1군 레귤러 멤버가 되지 못하고 있다. 퓨처스리그에서 3할은 치고 있지만 2012년 들어 이준호, 윤완주 등의 신인들이 치고 올라온 데다 조영훈까지 가세하면서 입지가 더 좁아졌다.
2012년 9월 들어서 자주 출장하고 있는데, 9월 17일까지 19타수 6안타, 타율이 0.316으로 괜찮은 편이다. 그리고 이와 별개로, 9월 14일[2] 부터 16일까지 4경기 연속으로 사구를 맞고 있는 중. 이 기간 한정으로 최정을 능가하는 자석이 되었다.
10월 2일 롯데전에서는 6회말 파울 타구에 발을 맞아 다리 상태가 영 좋지 못했던 이용규를 대신해 대주자(...)로 들어섰고 이후 우익수 자리를 맡게 되었다. 9회초 2사 1, 3루 상황에서 황성용의 장타성 타구를 잡아내어 김진우의 2656일만의 완봉승을 지켜주는 결정적인 호수비를 해냈다.
2.1.3. 2013 시즌[편집]
부상으로 재활군에 있다가 신종길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5월 16일 1군 콜업. 외야 수비는 그럭저럭 했지만 극악의 타격으로 팬들을 좌절시켰다.
2014 시즌 퓨처스리그 종료 후 선수단에서 제외되었다.
3. 연도별 성적[편집]
4. 지도자 경력[편집]
이후 선수 생활을 접고 경찰 야구단 코칭 스태프로 합류했다.
2017년부터는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야구부 타격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2017년 8월경 홍익대학교 야구부 타격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2020년에 제주관광대학교 야구부 코치로 이동했다.
5. 여담[편집]
- 특유의 불쌍해보이는 외모로 불량감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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