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모도어 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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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odore International

1. 개요
2. 역사
2.1. 초창기
2.2. MOS 테크놀로지 인수
2.3. 성장
2.4. 잭 트러멜 사임 및 아미가 인수
2.5. 몰락
2.6. 이후
3. 주요 제품
4. 기타




1. 개요[편집]


지금은 없어진 미국의 컴퓨터 회사. 초창기 PC 역사에서 코모도어 64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아미가로 유명했다. 창립자는 폴란드계 유대인인 잭 트러멜(Jack Tramiel, 1928~2012)[1]이다.


2. 역사[편집]



2.1. 초창기[편집]


1958년에 회사가 설립되었고, 처음에는 타자기 회사로 출발했다. 트러멜이 타자기 회사를 설립한 것은 군 복무 시절[2]의 영향인데 그 시절 타자기 수리 기술을 배워서라고 한다. 1953년 타자기 수리점부터 시작해 타자기 회사를 설립했는데 코모도어라 이름을 지은 것 역시 그 시절의 영향이다. 그는 회사 이름으로 General(장군), Admiral(제독)을 고려했으나 전부 등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Commodore(준장)을 선택한 것이다.

1960년대 일본에서 만든 저렴하고도 튼튼한 타자기들이 미국에 쏟아져 들어오면서, 트러멜은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1966년 금융인이었던 어빙 굴드(Irving Gould)의 투자금을 받아 코모도어를 전자계산기 및 관련 주변기기 회사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1975년경을 전후해서 카시오 등 일본산 계산기가 들어오고 미국 내에서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등의 경쟁 업체들이 치킨 게임을 벌이는 바람에 전자계산기 시장 역시 레드 오션이 되자 다시 한번 위기를 겪게 되었다. 그러던 도중 MOS 테크놀로지 반도체 엔지니어였던 척 페들[3]이 트러멜을 설득해 컴퓨터 시장에 일찌감치 뛰어들기로 결정한 덕분에, 1970년대 후반, 개인용 컴퓨터 여명기에 애플 II, 탠디 코퍼레이션 TRS-80와 견줄 만한 기종이자 간발의 차이로 '최초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PC' 타이틀을 가져간 코모도어 PET[4]를 내놓으며 성공적으로 개인용 PC 시장에 안착했다.


2.2. MOS 테크놀로지 인수[편집]


당시 코모도어의 성공 뒷배경엔 MOS 테크놀로지의 인수가 있었는데, 이를 통해 호환 및 개량 마이크로프로세서 및 CPU를 좋은 가격에 공급받으며 시장에서 좋은 위치를 선점할 수 있었다. MOS 테크놀로지 역시 예전에는 계산기용 CPU가 주력이었으나, 모토로라의 6800을 개량한 6501등 65xx 시리즈를 코모도어 컴퓨터에 공급하는 등 가성비가 좋은 CPU 및 컨트롤러 칩을 다수 생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MOS 테크놀로지 6502가 그 예.


2.3. 성장[편집]


코모도어 PET는 주로 업무용과 교육용 컴퓨터로 팔렸다. 당시 가격 약 795달러에 팔렸는데, 주로 애플 II와 경쟁했다. 애플 II는 1298 달러라는 비싼 가격에다가 또 다른 경쟁자인 TRS-80은 695달러라 PET는 그 사이에 있긴 했었지만, 모니터와 저장 장치가 별도인 다른 컴퓨터들과는 다르게 PET는 일체형 모니터에다 일부 모델은 저장 장치로 카세트 드라이브까지 달려 있었기 때문에 가격이 매우 저렴해 많은 인기를 누렸다.

그 뒤엔 코모도어는 업무와 교육 시장 뿐만 아니라 가정용 컴퓨터 시장을 노려서 1980년에 8비트 컴퓨터인 VIC-20을 출시하게 된다. VIC칩[5]과 20KB의 ROM과 5KB의 RAM을 가진 이 컴퓨터는 PET가 모니터를 지니고 있었던 것과 다르게 모니터를 없애는 대신 TV에 연결할 수 있게 했다. 또 조이스틱 같은 게임 기능을 강조했고 컬러로 출력할 수 있었다. 코모도어는 미국의 유명 드라마 스타트렉제임스 T. 커크 선장으로 유명한 배우인 윌리엄 샤트너를 고용해 공격적으로 홍보했고, 다른 컴퓨터들과 달리 일반 소매점에서도 판매할 수 있게 해 299.95달러라는 저렴한 가격 덕분에 VIC-20은 가정용 PC로 불티나게 팔리게 된다.

이후 다른 경쟁사들이 가정용 컴퓨터에 뛰어들어 경쟁하게 되자 코모도어는 VIC-20의 후속 컴퓨터를 준비하는데, 더욱 강화된 VIC-II칩과 SID 사운드 칩셋 그리고 64KB의 RAM을 지닌 8비트 컴퓨터 코모도어 64를 1982년 8월에 내놓게 된다. 코모도어 64는 당시 불가능해 보였던 64KB의 RAM을 넣고도 595달러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유지한 것으로 유명하다. 더욱 강화된 게임 기능으로 인해 북미에선 MSX격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코모도어 BASIC을 통해 프로그래밍을 접했다. 이렇게 저가 가정용 컴퓨터에는 VIC-20, 고급형 가정용 컴퓨터에는 코모도어 64로 대박을 치면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잭 트러멜은 영국에서 BBC 마이크로나 ZX 스펙트럼같은 저렴한 컴퓨터들이 절찬리에 판매되는 것을 보고 100달러 컴퓨터 시장을 노리기 위해 코모도어 C16과 저가형 업무용 컴퓨터 코모도어 플러스/4를 준비하게 된다. 코모도어는 이 컴퓨터에 들어갈 TED라는 칩셋을 새로운 개발하는데, Text EDitor의 약자로 그래픽 기능과 시계, 사운드, 입출력 등 여러 기능들을 한번에 통합한 칩셋이었다. 이렇게 통합 칩셋을 만든 이유는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함이었다. 그러다보니 코모도어 64에 들어간 VIC-II칩이나 SID칩보다는 수준이 떨어졌다. 그렇게 1984년 1월 소비자 가전 전시회에서 코모도어는 이 TED 칩셋을 탑재한 컴퓨터들의 프로토타입들을 선보이게 되는데, 그러나 이후 큰 문제가 생기게 된다. 바로 잭 트러멜이 쫓겨났다는 것이다.


2.4. 잭 트러멜 사임 및 아미가 인수[편집]


잭 트러멜이 1984년 1월 소비자 가전 전시회 때 경영 방침에 대해 투자자인 어빙 굴드와 심하게 다툰 끝에 회사를 떠나게 된다. 어빙 굴드와 이사회는 후임으로 마셜 스미스(Marshall Smith)를 고용했으나, 2년만에 토머스 래티건(Thomas Rattigan)으로 바꿨다. 토머스 래티건 역시 3년만에 쫓겨났고, 메흐디 알리(Mehdi Ali)가 후임 CEO가 되었다. 문제는 어빙 굴드와 이사회가 뽑은 CEO들은 컴퓨터에 문외한이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잭 트러멜 떠난 이후의 컴퓨터 제품들 계획해야 했다.

그들의 눈에 아미가라는 회사가 들어왔다. 아미가는 1981년 제이 마이너(Jay Miner, 1932~1994)와 여러 아타리 직원들이 아타리를 떠나 세운 회사로서 그들은 로레인(Lorraine)이라고 불리는 아케이드 게임 머신을 구상 중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1983년에 일어난 아타리 쇼크 때문에 아미가는 경영난에 빠지게 되었다.

코모도어는 1984년 8월 2,500만 달러에 아미가를 인수했다. 그리고 코모도어는 16비트 컴퓨터를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그들이 예전에 만들었던 로레인을 개량해 새로운 컴퓨터가 탄생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아미가 1000으로서 1985년에 1295 달러에 출시가 되었다. 또 그의 저렴한 보급형 버전인 아미가 500을 내놓아 인기를 끌게 된다. 아미가 컴퓨터에 자세한건 아미가 참고. 그러면서 그들은 코모도어 65 혹은 C64DX, 코모도어 LCD, 코모도어 900 등의 개발을 취소했다. 비슷한 시기에 코모도어 128도 내놓았지만 코모도어 64와 차별점이 없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코모도어 역시 코모도어 128보다 코모도어 64의 비용 절감 버전인 코모도어 64C를 더 주력으로 판매했다.

한편으로 잭 트러멜은 아타리를 인수해 아타리 ST[6]를 내놓게 되어 아미가와 경쟁하게 되었다.


2.5. 몰락[편집]


그러나 1990년대가 되면서 아타리 ST와 아미가는 컴퓨터 시장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는데,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를 탑재한 IBM PC 호환기종 계열과 매킨토시 계열의 컴퓨터들이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PC 또한 사운드 카드나 그래픽 카드 기술이 발전하면서 아미가의 장점이 퇴색되었다.

코모도어는 결국 아미가를 버리고 IBM PC 호환 기종인 코모도어 PC 시리즈를 내놓게 되나 이마저도 대만이나 대한민국에서 생산되기 시작한 저렴하고 품질 좋은 PC들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코모도어는 경영난에 빠지게 된다. 코모도어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다시 게임기 시장에 진출하기로 하고 아미가를 이용해 게임기를 만들게 되는데, 이게 아미가 CD32다.

게임기 시장은 소니아타리, 닌텐도,세가, 3DO 같은 회사들이 피터지게 경쟁하고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에서 코모도어가 서 있을 자리는 없었으며 아미가 CD32는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이었고, 게다가 특허 분쟁에 휘말려 북미 시장에 나오지도 못했다. 결국 아미가 CD32는 코모도어의 몰락을 앞당겼다.

아미가 CD32의 실패로 코모도어는 1994년 6월에 파산했다.


2.6. 이후[편집]


파산한 이후 코모도어의 자산들은 산산조각나서 여러 회사에 팔려나갔는데, 그 중 아미가는 법인화해 여러 회사에 팔려다녔다. 한편 유럽에선 튤립 컴퓨터라는 회사가 이름만 빌려 2004년에 코모도어 64 Web-it 라는 컴퓨터를 내놓았는데, 노트북에 모니터만 없는 괴악한 생김새의 저사양 컴퓨터였다.[7]

현재 회사 자체는 페이퍼 컴퍼니로 남아있고 주식도 장외거래 시장에서 CBUIF라는 티커로 거래되고 있다.


3. 주요 제품[편집]


  • 코모도어 KIM-1: 6502가 장착된 싱글 보드 컴퓨터로서 코모도어가 내놓은 첫번째 컴퓨터다. 작은 크기와 키패드가 달려있었기에 직관적인 사용성, 그리고 기업이나 공장에서 쓰이는 임베디드 시스템으로 개발된 제품으로서 인기를 끌었다.
  • 코모도어 PET 시리즈: 역사상 최초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개인용 컴퓨터다. 이러한 상징성에다 모니터까지 합체된 사다리꼴형 독특한 디자인까지 합쳐져 컬렉터용 아이템으로 여전히 인기이며, 심지어 각종 영화에도 단골 손님으로 등장하는데, 당대의 영화뿐만 아니라 2000년대 이후의 영화에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등 대단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기종. (보러가기) 옛날 디스플레이 내장 탁상형 게임기처럼 생긴 사다리꼴 컴퓨터가 영화에 등장한다면 십중팔구 이녀석으로 봐도 될 정도. 심지어 터미네이터 3에도 등장한다!
  • VIC-20: 코모도어 64의 전신격 제품. VIC 칩을 이용해 컬러로 출력할 수 있었다. AVGN에서 가끔 다룬 적이 있다.
  • 코모도어 맥스: 일본 시장용 제품으로서 맴브레인 키보드와 새로운 그래픽 칩셋인 VIC-2 칩셋을 사용한 게이밍 콘솔에 가깝게 만들어진 컴퓨터다. 일본시장에서 실패했으며, 그러나 맥스의 기반을 이용해 코모도어 64가 탄생하게 된다.
  • 코모도어 64: 항목 참조. VIC-20의 소프트웨어도 호환한다.
  • 코모도어 에듀케이터 64: 코모도어 64의 교육시장 버전. PET과 비슷하게 CRT가 달린 외형으로, 초록색 모노크롬 CRT 모니터가 달렸다. 그러나 교육시장에선 이미 애플IIe가 재미를 보고 있었기에 소프트웨어 부재로 실패했다.
  • 코모도어 SX-64: 휴대용 코모도어 64다. 아에 1541 디스크 드라이브와 내장 CRT 모니터가 달려있어 들고다닐수가 있었다. 다만 배터리는 없었고 코드를 꽂아서 쓰니 '들고 다닌다'에만 의미가 있었다. 의외로 가격이 비쌀거 같았지만 코모도어 64의 모니터와 1541 디스크 드라이브 포함 가격과 동일했다고 한다. 이점을 생각하면 꽤나 메리트가 있어 보이나 정작 코모도어는 SX-64을 홍보조차 하지도 않았으며 소매가 아닌 업무용으로 팔아치우는 실책을 저질렀고 SX-64의 모니터 또한 글자 표시엔 적합하지 못한 저해상도 CRT라서 업무용으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 코모도어 SX-100: SX-64의 흑백 CRT를 쓰고 배터리까지 내장해 코드를 꽂지 않아도 사용할수 있게 만든 제품. 프로토타입만 나오고 출시가 취소되었다.
  • 코모도어 DX-64: SX-64의 듀얼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버전. 프로토타입만 나오고 출시되지 않았으나, 기존 SX-64가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윗부분이 한칸 비어 있기에[8] 이곳에다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하나 더 구해와 넣는 개조를 해 DX-64로 만든 유저들이 많이 존재한다.
  • 코모도어 Plus/4: TED라는 올인원 칩셋을 이용한 저가형 업무용 컴퓨터이나 코모도어 64와 호환되지 않아 실패했다.
  • 코모도어 C16: 저가형 가정용 컴퓨터로 코모도어 64의 케이스를 가져오고 TED 칩셋을 사용했으며 RAM을 16KB로 낮췄다. 역시 코모도어 64와 호환되지 않아 미국 시장에서 실패했으나, 동유럽이나 멕시코 시장에서 성공적이었다.
  • 코모도어 LCD: 무려 LCD를 이용해 휴대성을 증가시킨 코모도어의 휴대용 노트북 버전이었지만, 취소되었다.
  • 코모도어 64C: 코모도어 64의 외형을 128과 비슷하게 현대적으로 바꾼 제품이다.
  • 코모도어 128: 코모도어 64의 개량형으로 RAM이 128KB로 확장되었고 추가 포트를 통해 최대 512KB까지 확장이 가능했으며, 해상도가 개선되었다.
  • 코모도어 64GS: GS는 Gaming System의 약자로서 코모도어 64에서 키보드를 제거하고 게임기로 만든 제품. 코모도어 64 게임들 대부분이 키보드를 필요로 하기에 망했다고 한다.
  • 코모도어 65 혹은 C64DX: 코모도어 64의 후속격 제품으로 개발도중 취소되었다.
  • 코모도어 900: 워크스테이션으로 자일로그 Z8000 CPU를 장착한 16비트 컴퓨터였다고 한다. 저렴한 UNIX 제품을 목표로 했다고 하며 유럽시장에 PET을 대체하기 위해 계획되었다고 한다. 50대 정도 만들어졌고 취소되었다.
  • 아미가 시리즈: 아미가 항목 참고.
  • 코모도어 PC 시리즈: IBM PC 호환기종. 그러나 비싼 단가로 큰 재미를 보진 못했다.
  • 아미가 CD32: 아미가를 기반으로 만든 게임기. 사실상 코모도어의 마지막 제품이다.
그리고 당시 컴퓨터 회사들이 대부분 그러했듯 모니터나 프린터, 소프트웨어도 제작했다.


4. 기타[편집]


1987~88 시즌부터 1993~94 시즌까지 잉글랜드 프로축구팀 첼시 FC를 후원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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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는 미국식 이름으로 폴란드식 본명은 이데크 츠미엘(Idek Trzmiel)로 폴란드 우치(Łódź)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 대전에 나치 독일은 그와 그의 부모를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로 강제 이송시켰고 요제프 멩겔레는 그와 그의 아버지만 하노버-알렘 노동 수용소로 보냈으며 미군 제84보병사단에 의해 구출되었다. 1984년 자신이 설립한 코모도어에서 경영 방침 문제로 쫒겨난 뒤 망해가던 아타리의 하드웨어 사업부를 인수해서 아타리 ST를 만들기도 했다. 1996년 아타리 재규어를 마지막으로 아타리를 JTS에 매각하면서 은퇴했다. 은퇴 후 그는 자신과 같이 기구한 과거를 겪은 동포들을 위해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과 폴린 박물관(폴란드 유대인 역사 박물관)에 후원했다.[2] 그는 미군에 의해 하노버-알렘 수용소에서 구출된 후 미군에 자진입대해 복무했다.[3] Chuck Peddle. 1937~2019. 그는 모토로라 6800 개발을 주도했으며, 이후 MOS 테크놀로지로 이직해 MOS 테크놀로지 6502의 개발을 주도했다. 코모도어 PET 뿐만 아니라 그 전의 코모도어 최초 출시 컴퓨터인 KIM-1의 개발도 이 사람이 주도했다.[4] Personal Electronic Transactor; "개인용 전자 처리기" 쯤 되는 뜻이다.[5] '''Video Interface Chip의 약자로 기존에 화면에 각종 정보를 나타내는 분야에서 사용되어진 칩셋이었다. 공항에 시간표나 아케이드 머신이나 병원기기같은 다양한 분야에 쓰이고 있는 칩이었다.[6] 사실상 아미가와 아타리 ST는 배다른 형제이기도 한데, 아타리 ST 또한 로레인의 부품들을 사용했기 때문이다.[7] 사실 코모도어 64의 모습이 본체에 키보드가 붙어있는 걸 생각하면 어느 정도 비슷한 모습을 갖춘 셈이긴 하다.[8] 보통 이곳에 키보드 케이블이나 플로피 디스크 같은 수납공간으로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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