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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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인도 서남부 케랄라주의 항구 도시. 마두라이에서 서쪽으로 170여km 떨어져 있고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100km 가량 가면 코지코드 (캘리컷)이 나온다. 향신료 무역의 중심지로서 아랍 상인들이 드나들다가 16세기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서구 세력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유럽식 건축물이 여럿 남아있어서 기독교 비율이 높은편이다.
1996년 영국식민지시절 명칭인 Cochin을 Kochi로 개명하였으나 여전히 여러 명칭은 식민지시절을 유지하고 있는편이다.
2. 역사[편집]
코치는 1102년에 체라 왕국에서 독립한 코친 왕국의 수도가 되었는데, 14세기 후반부터 말라바르 해안의 주요 항구로 각광받기 시즉하였으며 15세기 초에는 정화가 이끄는 명나라 함대가 방문하기도 하였다. 1500년 12월, 바스코 다 가마에 이어 두번째로 인도로 파견된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은 캘리컷 대신 코친에 도착하였다. 그는 캘리컷에서 이미 힌두-무슬림 군대에게 쫓겨난 상태였지만 캘리컷의 간섭을 싫어하던 코친의 군주와 동맹을 맺을 수 있었다.
코친은 1503년부터 총독 (초대는 바스코 다 가마였다)이 파견되어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토착 지도자인 라자는 꼭두각시에 불과하였다. 1503년에 코친에는 성당과 요새가 지어졌는데, 전자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은 남아시아 최초의 그리스도교 예배당이고 바스코 다 가마가 묻힌 곳이기도 하다.
인도 반도의 서남쪽 끝에 있기 때문에, 유럽에서 동쪽 아시아로 항해할 때 희망봉을 지나 모잠비크쯤부터 인도양을 가로지르면 가장 가깝게 도착할 수 있는 인도 항구였기 때문에 대항해시대 이후 유럽인들에게 기항지로 각광받았다.
베트남 남부 호치민시 일대의 19세기 지명인 코친차이나는 인도의 코친과 어원이 다른데, 코친차이나는 포르투갈 상인들이 베트남 지역을 가리키던 말레이어 Kuzhi에서 따온 이름이다.[1] 다만 두 지명이 아예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포르투갈인들이 인도의 코친과 구분하기 위해 베트남 지역에는 차이나라는 말을 덧붙인 것이기 때문.
2017년에 코치 메트로(Kochi Metro)가 개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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