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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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 빅토리아 시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 사회 전반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를 통하여 영국의 농촌 사람들이 몰락하는 상황을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2. 생애[편집]
잉글랜드 도싯 주에서 석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독서를 좋아한 어머니 덕에 어려서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았으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건축가의 도제 생활을 거쳐 제도사로 일했다. 1862년 런던으로 이주한 후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근대어학(Modern Languages)과 프랑스어를 전공했으며, 이 기간 홀로 습작하며 작가의 꿈을 키워갔다. 1868년 첫 소설 가난한 남자와 귀부인을 탈고했으나 정치적 논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이유로 끝내 출간되지 못했다. 1871년 절박한 해법, 1872년 푸른 숲 나무 밑에서를 잇달아 출간한 뒤 잡지 연재 제의를 받고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대표작으로는 장편소설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캐스터브리지의 시장, 더버빌 가의 테스, 무명의 주드 등이 있다. 작품 대부분이 그가 태어났고 소설가로 성공한 후에도 살았던 웨식스 지방을 무대로 하는데, "캐스터브리지"는 그가 살던 도체스터를 변형한 가상의 도시이다. 한정된 지역을 무대로 삼았으나 그 지역색에 한정되지 않고, 시간을 초월하는 가치와 당대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작품들로 작가적 역량을 인정받았다. 또한 19세기 말 영국의 인습과 편협한 종교 · 제도를 비판하고, 빅토리아 시대의 통념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도덕관을 보여주어 독자들로부터는 뜨거운 호응을 얻었으나, 교회와 보수 진영으로부터 공격받았다. 무명의 주드 출간 후 격렬한 비난을 받고 분서의 수난까지 겪자 소설 집필을 접고 시 쓰기에 몰두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나폴레옹 시대를 그린 장편 서사시극 제왕들 3부작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창작 활동을 했다. 1910년 영국 왕실로부터 메리트 훈장(Order of Merit)을 받았다. 이 시기 노벨 문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나 수상엔 실패하였고, 11년 뒤인 1921년에 다시 노벨상 후보에 오르지만 수상엔 실패한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브리스톨 대학교와 애버딘 대학교에서도 하디에게 명예 학위를 수여했다.
당대의 대문호였기 때문에 왕족을 비롯한 수 많은 사회 저명인사들이 그의 집(Max Gate)을 방문했으며, 그의 집은 영국 내셔널트러스트 (National Trust)에 의해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1928년 1월 11일 88세로 영면한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다.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고향에 묻히고 싶어 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심장은 도체스터에 있는 아내 무덤 곁에 묻혔다.
3. 하디의 작품들[편집]
4. 관련 영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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