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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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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작센 왕국의 국왕 게오르크의 아내이자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3세의 어머니다.
포르투갈 왕국의 마리아 2세와 페르난두 2세의 장녀이고 페드루 5세,루이스 1세의 여동생이며, 카를 1세의 외할머니이기도 하다.
루마니아 왕국의 국왕이었던 페르디난드 1세의 이모이다.
2. 생애[편집]
1843년 8월 21일, 마리아 2세와 페르난두 2세의 장녀로 태어났다. 1853년 어머니인 마리아 2세가 사산한 후 사망하자 마리아 아나가 포르투갈 궁정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여성이 되었다. 큰 오빠 페드루의 아내인 호엔촐레른마크지링겐의 스테파니가 포르투갈으로 시집을 온 후에 서열이 바뀌었지만 마리아 아나와 스테파니는 서로 잘 지냈다고 한다.[1] 마리아 아나는 가족들에게 매우 사랑을 받았으며 특히 큰 오빠인 페드루 5세가 매우 예뻐해서 오촌 당숙인 영국의 앨버트 공에게 여동생을 칭찬하는 편지를 보내곤 했다.
1859년, 15세가 된 마리아 아나는 26세의 작센의 게오르크 왕자와 리스본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포르투갈의 왕비였던 에스테파니아는 시누이를 위해 결혼식을 성대하게 치르자고 제안했지만 포르투갈 왕실과 작센 왕실 모두 결혼식을 조용하게 치르기를 원했다고 한다.
남편 게오르크는 포르투갈 왕실에 호의적이지 않아 마리아 아나가 작센 왕실로 시집을 올때 포르투갈 출신 시녀를 데리고 오지 못하도록 했고, 오로지 오빠 루이스 왕자만 동행하는 것을 허락했다. 이에 큰 오빠인 페드루 5세가 매우 안타까워 했으며, 고작 15세의 나이였던 마리아 아나는 대성통곡을 했다.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았지만 마리아 아나는 어머니 마리아 2세처럼 의무에 충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25년동안 8명의 자녀들을 출산했다. 1883년에 막내아들인 알베르트가 매우 아파 간호를 정성껏 했는데, 이게 무리였는지 건강이 점차 악화되어 1884년에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 게오르크는 마리아 아나가 죽은지 18년 후인 1902년에 작센 국왕으로 즉위했으며 재혼을 하지않고 1904년에 사망했다.
3. 가족관계[편집]
3.1. 자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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