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뮬러 1/1957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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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57년 그랑프리[편집]
1957년 포뮬러 원 시즌은 8번째 FIA 포뮬러 원 시즌이다. 이 시즌은 1월 13일 아르헨티나 그랑프리를 시작으로 9월 8일 이탈리아 그랑프리 까지 총 8경기로 치러졌다. 이 시즌은 던롭, 에이본 러버, 피렐리, 잉글버트가 타이어를 공급했다. 후안 마누엘 판지오가 드라이버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으며 스털링 모스가 2위, 루이지 무소가 3위를 차지했다.
판지오의 마지막 우승 시즌으로 페라리를 나와 마제라티로 이적한다. 판지오가 떠난 뒤 페라리에 남은 콜린스와 영입한 호손은 별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판지오의 이적은 신의 한 수로 판명. 뉘르부르크링에서의 독일 GP는 판지오의 마지막 우승이자 역사에 남을 위대한 우승으로 평가받는데 2위와 30초 차이 나는 상황에서 핏스탑 중 메카닉의 병신짓(...)으로 리딩 그룹이었던 페라리의 콜린스, 호손과 무려 50초 차이가 나는 상황이 와 버린다. 판지오는 한 랩마다 그 차이를 10초씩 깎아나가고 트랙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따라붙었고, 마지막에서 두 번째 랩에서 콜린스와 호손을 차례로 추월하며 우승을 차지한다. 모스는 이탈리아에서 열린 2개 GP를 모두 우승하며 2위를 차지.
판지오가 기록한 5번의 최다 챔피언십 타이틀 횟수는 46년 뒤 미하엘 슈마허가 넘어서기 전까지 깨지지 않게 되었다.
2. 시즌 전 이적시장 & 소식[편집]
일정에 약간의 변동이 있었다. 제2차 중동전쟁으로 인해 일부 그랑프리가 취소되어 이번 시즌도 8개의 라운드로 구성하여 시즌이 치루어진다.
지난 시즌 페라리에서 챔피언을 차지한 후안 마누엘 판지오는 페라리와의 불화로 인해 라이벌 팀인 마세라티로 이적하게 되었다. 이에 페라리는 피터 콜린스-에우제니오 카스텔로티 라인업을 유지한 뒤, 몇 년 전에 영국의 팀들로 이적했던 마이크 호손을 다시 불러들인다.
마세라티는 판지오를 불러들인 대신, 그의 라이벌이었던 스털링 모스는 반월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반월로 이적한다.
한편, 지난 시즌을 끝으로 프랑스의 컨스트럭터인 에퀴페 고디니가 F1에서 철수하였다.
3. 1957시즌 라인업[편집]
- : 붉은색은 F2 클래스로 출전한 드라이버.
4. 1957시즌 캘린더[편집]
5. 시즌 상세[편집]
5.1. 1R: 1957 아르헨티나 그랑프리 (아르헨티나 GP)[편집]
이번 경기에 한해서 스털링 모스는 마세라티 소속으로 출전한다.
5.1.1. 퀄리파잉[편집]
스털링 모스가 개막전 퀄리파잉에서 폴 포지션을 차지하였다.
5.1.2. 레이스[편집]
스타트 직후 판지오와 베라가 좋은 스타트와 함께 선두권을 차지하며 일찌감치 모스를 비롯한 후미권과 격차를 벌리기 시작하였다. 모스는 설상가상 스로틀에 문제가 발생하여 무려 10랩을 손해보고 말았다. 페라리읟 ㅡ라이버들은 모두 심각한 클러치 문제를 겪었고, 이 중에서 지난 시즌 챔피언십 3위를 달성한 피터 콜린스와 루이지 무소는 클러치가 아예 타버려 리타이어하였고, 마이크 호손도 얼마 못가 리타이어하였다.
페라리 팀이 거의 전멸한 결과는 마세라티 드라이버들의 독식이었다. 홈그랑프리 개막전을 맞이한 판지오가 우승을, 장 베라가 18.3초 뒤진 2위, 그리고 판지오와 함께 홈그랑프리를 맞이한 멘디테기가 3위로 들어오며 마세라티 드라이버들이 포디움을 모두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며 좋은 시즌 스타트를 맞이할 수 있었다.
5.2. 2R: 1957 모나코 그랑프리 (모나코 GP)[편집]
레이스 위크 전, 페라리의 에우제니오 카스텔로티가 모데나 오토드롬에서 진행된 페라리의 새로운 그랑프리 레이스카를 테스트 하던 도중 시케인의 높은 연석을 올라타다 차에서 던저지는 사고로 사망하였다. 향년 26세. 당시 속도는 약 137km/h로 적지 않은 속도였기에 안전벨트도 없던 당시 레이스카에서 안전하기란 쉽지 않았다. 부검 결과, 그는 다중 골절로 사고가 난 자리에서 즉사하였다고 한다.
한편, 반월 팀의 차가 드디어 준비가 되었고, 마세라티 소속으로 개막전을 뛰었던 스털링 모스는 이번 경기부터 반월 소속으로 출전할 예정이다. 그는 토니 브룩스와 함께 모나코 그랑프리에 반월 소속으로 엔트리를 올렸다.
5.2.1. 퀄리파잉[편집]
판지오가 시즌 첫 폴 포지션을 차지하며 모나코 GP 우승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였다.
5.2.2. 레이스[편집]
스타트 직후의 헤어핀에서 모스가 좋은 스타트로 판지오를 압박하며 기회를 엿보다가 레이스 리더 자리를 빼앗는 데에 성공한다. 하지만 4랩 째에, 판지오가 다시 리더 자리를 탈환하는 데에 성공하였고 그대로 크루징하면서 무난하게 모나코 GP를 우승하였다. 4랩 째에 모스가 터널을 나온 직후 시케인을 지나는 과정에서 살짝 충돌하였기 때문. 모스가 충돌을 일으킨 직후 트랙에는 데브리가 흩어졌고, 이를 피하려던 피터 콜린스는 항구 쪽의 벽에 충돌하고 만다. 판지오와 브룩스가 이를 피하기 위해 급히 속력을 줄이며 탈출하였고, 이 과정에서 일으켜진 정체 때 토니 브룩스는 마이크 호손의 리어를 들이받고 휠을 잃어 동반 리타이어한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판지오가 우승을, 토니 브룩스가 2위로 들어오며 데뷔 첫 포디움에 올랐다. 머스튼 그레고리도 3위로 들어오며 데뷔 첫 포디움을 맛봤다.
5.3. 3R: 1957 인디애나폴리스 500 (인디 500)[편집]
연습 주행 도중, 키이스 앤드류스(Keith Andrews)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앤드류스는 4번코너를 136마일(약 219km/h)의 속도로 진입하고 있었다. 하지만 컨트롤을 잃고 스핀을 하며 뒤쪽으로 벽을 들이받는 사고가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차량의 뒷쪽이 완전히 반파되었고, 앤드류스는 사고 직후 사망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현장에는 그의 아내와 두 딸이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5.3.1. 퀄리파잉[편집]
5.3.2. 레이스[편집]
제 41회 인디 500의 우승은 샘 행크스가 차지하였다.
5.4. 4R: 1957 프랑스 그랑프리 (프랑스 GP)[편집]
이번 시즌 프랑스 GP는 랭스-괴 서킷이 아닌 루앙-레제사르트 서킷에서 펼쳐진다.
5.4.1. 퀄리파잉[편집]
판지오의 연속 폴 포지션 기록은 프랑스 GP에서도 이어졌다. 챔피언십 포인트를 꾸준히 쌓아올리는 그가 이번 레이스에서도 우승을 이어나갈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
5.4.2. 레이스[편집]
스타트 직후 3위였던 루이지 무소가 좋은 스타트와 함께 1위를 빼앗으며 레이스를 리드하였다. 다소 내려앉은 판지오는 다시 격차를 줄여나갔고, 4랩 째에 무소를 추월하며 레이스 리더 자리를 되찾은 뒤 남은 70여랩을 크루징함으로써 1957 프랑스 GP의 우승을 차지하였다. 무소는 안정된 페이스로 51여초 뒤진 2위를 차지하였고, 3위는 피터 콜린스가 차지하였다.
판지오는 이번 경기에서도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3위인 루이지 무소[1] 와 벌써 18점 차이를 만들었기에 이번 시즌 월드 챔피언에 오르는 것이 매우 유력해지게 되었다.
5.5. 5R: 1957 영국 그랑프리 (영국 GP)[편집]
반월 팀은 홈 그랑프리를 맞이하여 대대적인 준비와 함께 이번 5R인 영국 GP에 돌아왔다. 특히 팀의 풀 타임 드라이버인 스털링 모스와 토니 브룩스는 직전 4R 프랑스 GP에 결장하면서까지 영국 GP에서의 우승에 대한 열망을 보여왔다.
5.5.1. 퀄리파잉[편집]
대대적인 준비와 함께 돌아온 반월 팀의 스털링 모스가 이번 시즌 첫 폴 포지션을 차지하였다. 아울러, 이는 반월의 F1 팀 데뷔 첫 폴 포지션이다. 챔피언십 리더인 판지오는 불과 0.4초 뒤진 4위를 기록하였다.
5.5.2. 레이스[편집]
영국 팀의 첫 우승, 조국의 에이스와 함께 이룬 업적
토니 브룩스와 스털링 모스가 반월 팀과 함께 역사적인 홈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하였다. 초반 스타트는 스털링 모스의 훌륭한 스타트와 함께 22랩까지 무난하게 리드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23랩 째에 장 베라에게 리드를 빼앗기며 페이스가 떨어진 모스는 25랩 째에 피트 인 한다. 한 바퀴를 기다린 이후 토니 브룩스를 불러들여 그는 브룩스와 드라이버 스왑을 이루었고, 브룩스는 모스의 차량에 탑승하여 1바퀴 뒤진 백마커로 레이스를 이어가게 된다. 알고 보니, 51랩 째에 브룩스가 탄 모스의 차량에 엔진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고, 브룩스는 차를 세워야만 했다. 반월의 유일한 희망이 된 모스는 질주를 이어갔다. 빠른 페이스를 자랑한 모스는 베라를 압박해 나갔고, 베라가 69랩 째에 클러치 문제로 리타이어하며 모스는 다시 리드를 되찾는다.
결과는 스털링 모스와 토니 브룩스가 합작한 공동우승이었다. 조용히 달려온 루이지 무소가 2위를, 그리고 홈 그랑프리를 맞이한 마이크 호손이 3위로 포디움에 올랐다. 챔피언십 리더인 판지오는 49랩 째에 엔진 문제로 리타이어하며 챔피언 확정을 한 경기 더 미루었다.
5.6. 6R: 1957 독일 그랑프리 (독일 GP)[편집]
판지오는 이번 경기에서 우승을 기록할 시 남은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이번 시즌 챔피언을 확정짓는다.
5.6.1. 퀄리파잉[편집]
판지오가 뉘르부르크링에서 폴 포지션을 차지하였다.
5.6.2. 레이스[편집]
Pax Fangiona, 최고의 경기력과 함께 정상에 오르는 것을 확정짓다
페라리의 드라이버들이 피트 스톱 없이 모든 랩인 22랩을 달릴 것이라는 것을 전해들은 판지오는 그들과는 달리 피트 스톱을 가져가는 전략을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페라리 팀이 하드한 타이어와 연료를 가득 실어 레이스를 스타트한 것과 달리, 판지오는 소프트한 타이어와 절반의 연료만을 실어 레이스에 임하였다. 폴 포지션이었던 판지오는 스타트 직후 호손에게 자리를 내주며 고전하였지만, 3랩 째에 다시 리드를 되찾으며 11랩까지 리드를 유지하였다. 이후 콜린스에게 리더 자리를 빼앗기자마자 13랩 째에 그는 계획대로 피트인한다. 이 시점에서 30초 앞에는 페라리의 마이크 호손과 피터 콜린스가 위치해있었고, 피트 작업 후 여유있게 그들을 잡으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그에게 재앙이 닥친다.
마세라티 팀의 미케닉이 판지오의 왼쪽 뒷바퀴를 교체하던 중, 휠 너트를 차량 밑으로 잃어버리는 대참사를 저질러버린 것이다. 그것을 찾는 데에만 거의 30초 가까이 시간이 소요되었고, 판지오가 피트에서 나왔을 때는 2위 콜린스와는 예상보다 길어진 무려 48초 차이가 나고 말았다. 그러나 판지오는 자신의 레이스 커리어 중 가장 위대한 우승을 향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그는 피트작업을 마친 직후의 10랩 동안 9랩 연속으로 랩 레코드를 갈아치우며[2] 맹추격하였고, 이후 호손과의 격차를 15.5초, 다음 랩은 8.5초를 줄여나갔다. 레이스 완주까지 2바퀴 남은 21랩 초반에는 콜린스를 추월하여 2위까지 올라섰고, 급기야 21랩 후반에는 호손을 추월하며 레이스 선두로 올라섰다.
호손은 그대로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다시 몰아붙이며 판지오를 압박하였다. 하지만 판지오는 그의 추월 시도를 완벽히 틀어막았고, 그대로 22랩을 완주하며 우승을 차지, 5번째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확정짓는다. 호손이 2위, 콜린스가 3위로 들어오며 포디움을 확정하였다. 판지오는 인터뷰에서 "내 인생에서 이렇게 빨리 달린 적이 없으며 다시는 못 할 것 같은 최고의 레이스였다"라고 평하였다.
한편, 이 경기는 판지오의 마지막 F1 우승이었다. 그는 1957시즌을 끝으로 F1 풀타임 레이스를 그만두었으며 1958년 프랑스 GP에서 개인 참가를 끝으로 F1에서 은퇴한다.
5.7. 7R: 1957 페스카라 그랑프리 (페스카라 GP)[편집]
페스카라 서킷은 현재(2022시즌)까지의 F1 역사상 가장 길었던 서킷으로 알려져 있다.(1랩에 25.73km) 아울러, 페스카라 GP는 F1 월드 챔피언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번 1957시즌에 개최되었다.
워낙 길고 위험요소가 다분한
당시 이탈리아에선 시가지에서 레이스 하는 것을 금지하였지만, 정부는 이번에 한하여 그랑프리를 개최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대신, 페스카라 서킷의 seafront 스트레이트의 후반부에 시케인을 설치하여 속력을 줄일 수 있도록 하였다.
5.7.1. 퀄리파잉[편집]
후안 마누엘 판지오가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페스카라 GP에서 폴 포지션 기록하였다.
5.7.2. 레이스[편집]
레이스 시작 2시간 전, 판지오는 오른쪽 어깨에 통증을 호소하였으나 그대로 레이스에 출전하는 것을 강행하였다. 레이스는 매우 더운 날씨에서 시작되었고, 이 때문에 레이스 전반적으로 2위였던 스털링 모스에게 고전하며 리드를 빼앗기며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모스는 F1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페스카라 GP의 우승을 차지한 선수가 되었다. 해리 쉘은 3위로 들어오며 F1 데뷔 7년만에 첫 포디움에 올랐다.
5.8. 8R: 1957 이탈리아 그랑프리 (이탈리아 GP)[편집]
시즌 최종전이다. 이 경기는 후안 마누엘 판지오의 F1 풀타임 시즌 마지막 경기이기도 하다.
아울러, 몬차 서킷의 레이아웃이 다시 변경되었다. 지난 시즌까지 오벌 코스를 사용했던 것에서 벗어나 1954년까지 사용한 그랑프리 레이아웃을 다시 사용한다.
5.8.1. 퀄리파잉[편집]
스튜어트 루이스 에반스가 가장 빠른 기록과 함께 F1 데뷔 첫 폴 포지션을 차지하였다. 아울러, 반월 팀은 3명의 드라이버가 모두 프런트 로우를 독점하며 F1 팀 데뷔 이래 가장 좋은 시즌을 마무리지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5.8.2. 레이스[편집]
시즌 최종전의 우승자는 스털링 모스였다. 마지막 풀타임 시즌을 뛴 후안 마누엘 판지오는 준우승을 차지하였고, 볼프강 폰 트립스가 F1 데뷔 첫 포디움을 달성하며 레이스는 마무리되었다.
6. 챔피언십 포인트 순위[편집]
7. 총평[편집]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판지오가 페라리와의 불화로 마세라티에 갑작스레 복귀하였음에도 압도적인 실력과 함께 5번째 타이틀을 들어올렸다. 전반기는 그야말로 판지오의 독주 체제라 해도 무방하였지만, 반월 팀이 매섭게 치고 올라오며 페라리와 마세라티를 위협할 수 있는 다크호스로 급부상하였다. 이와 함께 스털링 모스는 시즌 최후반부에는 2연승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며 판지오 다음으로 압도적인 레이스를 많이 보인 드라이버였다. 인디 500을 제외하면 이 둘이 우승을 거의 모두 차지했을 정도로 압도적인 양대산맥이었으며, 6R 독일 GP에선 판지오의 역대급 역전쇼가 이번 시즌의 백미라고 할 수 있었다.
시즌 종료 후, 판지오는 다음 시즌부터 F1에서 뛰지 않기로 하며 사실상 은퇴를 선언한다. 판지오와 함께 마세라티 팀도 재정난으로 인해 F1을 떠나는 것을 선언하며 다음 시즌 F1은 그야말로 춘추 전국 시대가 될 것을 예고하였다.
아울러, 이번 시즌은 드라이버 스왑 시 포인트가 공동으로 분배되어 진행되는 마지막 시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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