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뮬러 1/1989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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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9년 그랑프리[편집]
1989년 포뮬러 원 시즌은 40번째 FIA 포뮬러 원 시즌이다. 이 시즌은 3월 26일 브라질 그랑프리를 시작으로 11월 5일 호주 그랑프리 까지 총 16경기로 치러졌다. 이 시즌은 굿이어와 피렐리가 타이어를 공급하였다. 맥라렌-혼다가 팀의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우승을 거두었고, 알랭 프로스트가 드라이버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였다. 아일톤 세나가 2위, 나이젤 만셀이 3위를 차지했다.
1.1. 1989년 라인업[편집]
- 시즌 개막일 기준.
- 굵은 글씨는 소속을 옮긴 드라이버 또는 신인 드라이버
1.2. 1989년 캘린더[편집]
2. 경기 결과[편집]
2.1. 1전 브라질 GP[편집]
마우리시오 구겔민이 F1 데뷔 처음이자 마지막 포디움에 올랐다.
2.2. 2전 산 마리노 GP[편집]
2.3. 3전 모나코 GP[편집]
스테파노 모데나가 F1 데뷔 첫 포디움에 올랐다.
2.4. 4전 멕시코 GP[편집]
2.5. 5전 미국 GP[편집]
에디 치버가 F1 커리어 마지막 포디움에 올랐다.
2.6. 6전 캐나다 GP[편집]
2.7. 7전 프랑스 GP[편집]
2.8. 8전 영국 GP[편집]
2.9. 9전 독일 GP[편집]
2.10. 10전 헝가리 GP[편집]
2.11. 11전 벨기에 GP[편집]
2.12. 12전 이탈리아 GP[편집]
2.13. 13전 포르투갈 GP[편집]
윌리엄스는 새 차량(FW13)으로 교체했으며 스테판 요한손이 F1 커리어 마지막 포디움을 이 경기에서 기록하였다.
2.14. 14전 스페인 GP[편집]
2.15. 15전 일본 GP[편집]
세나는 챔피언십 경쟁을 최종전까지 끌고 가기 위해선 이 경기 우승이 필요하였다. 폴포지션에서 출발한 세나는 저조한 스타트로 프로스트에게 곧바로 자리를 내주었다. 피트스톱 이후 되살아난 페이스와 함께 프로스트에게 다시 접근하였고, 사건은 47랩 째에 터진다.
스즈카 서킷의 마지막 좁은 시케인에 접근하며 세나는 무리하게 인코스로 파고 들었고, 코너를 지나려 하던 1위 프로스트를 들이받는다. 이로 인해 프로스트는 이 경기에서 리타이어하였고, 세나는 마샬들의 도움으로 다시 출발하여 우승을 차지하였다. 프로스트와 6점차로 좁히며 최종전에서 챔피언 타이틀 경쟁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세나는 경기 종료 후 실격을 받게 된다. 이유는 프로스트와의 충돌 이후 정해진 시케인으로 달리지 않고 가로질러 갔기 때문이었다. 세나와 맥라렌은 이에 항소하였으나, 항소는 기각되었고 오히려 맥라렌 측에 10만 달러의 벌금이 부과되었다. 결국 알랭 프로스트의 3번째 월드 챔피언이 확정된 순간이었다.
2.16. 16전 호주 GP[편집]
3. 챔피언십 포인트 순위[편집]
3.1. 드라이버 포인트[편집]
3.2. 컨스트럭터 포인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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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위스 자본가인 요아힘 뤼시가 팀을 사들여 1년만에 F1 그리드에 복귀하였다.[2] 그러나 뤼시가 탈세 혐의로 체포당하였고, 팀은 미들브릿지 그룹을 비롯하여 여러 투자자들에 의해 사들여지며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3] 이번 시즌 신생팀으로 출전한다.[4] 신생팀으로 출전.[5] 시즌 참가를 선언한 후, 퍼스트 레이싱은 시즌 시작 직전에야 FIA의 충돌 안전성 테스트를 가까스로 통과할 정도로 섀시 개발이 매우 지체되고 있었다. 섀시를 개발한 이후에도 지나치게 과도한 무게 등으로 시즌 참가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결국 팀의 수장인 람베르토 레오니는 1989 시즌 참가를 철회하게 된다. 이후, 퍼스트 레이싱은 다음 시즌인 1990 시즌에 라이프 레이싱으로 F1에 입성하게 된다.[6] 퍼스트 레이싱 팀의 시즌 참가 철회로 타퀴니는 AGS 팀으로 이적하여 2R부터 빈켈호크와 같이 뛰게 된다.[7] 13R(포르투갈 GP)에서 타이어 교체와 연료 주입을 위해 피트인을 하던 중, 자기 팀의 피트를 지나쳐버렸다. 그런데, 이 때, 만셀은 (30초부터)피트크루들이 그의 차량으로 다가갈 때 후진하는 일을 벌이고 만다. FIA는 이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만셀에게 1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8] (45초부터)3R(산마리노 GP)에서 첫 번째, 고속 코너인 탐부렐로 코너에서 벽을 향해 약 290km/h의 속도로 돌진하여 부상을 입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는 몸의 일부분만 가벼운 부상을 입었을 뿐이며, 1경기만 결장하기에 충분했다. 천운이 따랐다고 말할 수 있다.[9] 이러한 사고를 보고도 이몰라 서킷은 따로 레이아웃을 변경하거나 타이어월을 설치하지 않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 서킷에서 5년 뒤, 잊을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나고 만다.[10] 시즌 참가를 선언한 후, 퍼스트 레이싱은 시즌 시작 직전에야 FIA의 충돌 안전성 테스트를 가까스로 통과할 정도로 섀시 개발이 매우 지체되고 있었다. 섀시를 개발한 이후에도 지나치게 과도한 무게 등으로 시즌 참가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결국 팀의 수장인 람베르토 레오니는 1989 시즌 참가를 철회하게 된다. 이후, 퍼스트 레이싱은 다음 시즌인 1990 시즌에 라이프 레이싱으로 F1에 입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