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2세(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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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개신교로 처음 개종[1] 한 팔츠 선제후이다.
2. 상세[편집]
팔츠 선제후 필리프와 바이에른란츠후트의 마르가레테(Margarete von Bayern 1456~1501)의 4남으로 1508년부터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오스트리아 대공 막시밀리안 1세를 따라 캉브레 동맹 전쟁에 참여하는 등 합스부르크 가문을 위해 일했다. 1519년 황제 선거에서 막시밀리안 1세의 손자인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선출되는 것을 도왔으며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카를 5세의 여자 형제들 중 하나와 결혼하고 싶어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1535년 전 덴마크와 노르웨이 국왕이었다가 폐위당한 크리스티안 2세의 딸 도로테아(Dorothea af Danmark 1520~1580)[2] 와 결혼했다. 합스부르크 가문을 위해 헌신했으나 거의 보답받지 못했고 유럽 각지를 떠돌며 살다가 빚이 쌓이던 와중에 형 루트비히 5세가 사망하면서 팔츠 선제후가 되었다.
초창기에는 신성 로마 제국에서 발생한 종교 문제 중재에 노력을 기울였으나 1545년 작센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 1세와 헤센 방백 필리프가 주도한 슈말칼덴 동맹에 가입했고 이듬해에는 가톨릭을 완전히 등졌다. 그러나 슈말칼덴 전쟁에서 카를 5세에게 패해 물러났고 1548년 5월 아우크스부르크 가신조 협정을 받아들이면서 굴복했다. 이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가 체결되는데 공헌했으며 합스부르크 가문과 마찰 없이 지내다 1556년 사망했다.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형 루프레히트의 아들 오토 하인리히가 팔츠 선제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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