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에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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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전투기 에이스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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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이름
국적
격추 수
주 기종
비고
1위
에리히 하르트만
독일
352대
Bf109
세계 1위
2위
게르하르트 바르크호른
독일
301대
Fw190
세계 2위
3위
귄터 랄
독일
275대
Bf109
전후 서독 공군 총감 부임
4위
오토 키텔
독일
267대
Fw190
Fw190 톱 에이스
5위
발터 노보트니
독일
258대
Fw190

6위
빌헬름 바츠
독일
237대
Bf109

7위
에리히 루도르퍼
독일
222대


8위
하인츠 베어
독일
220대


9위
헤르만 그라프
독일
212대
Bf109
세계 최초 적기 200기 격추
10위
하인리히 에를러
독일
208대


▼ 11~20위



독일 국방군 공군 제5전투항공단장
하인리히 에를러
Heinrich Ehrler


파일:하인리히 에를러.jpg

출생
1917년 9월 14일
독일 제국 오베르발바흐
사망
1945년 4월 4일 (향년 27세)[1]
나치 독일 프로이센 자유주 슈텐달 상공
복무
루프트바페(1935년 ~ 1945년)
최종 계급
소령
참전
스페인 내전
2차 세계 대전
주요 서훈
백엽 기사십자 철십자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하인리히 에를러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활약한 총 400번 출격, 208대 격추 에이스이다.[2] 대부분의 격추 기록을 동부전선에서 얻었으며, 서부전선에서는 9대를 Me 262로 격추하였다.

2. 생애[편집]


1935년, 국방군에 입대하였고, 당시 보직은 공군 방공 포병이였다. 그는 이후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였고, 이후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전투기 조종사로 보직을 변경하였다.[3]

이후 에를러는 JG 5의 지휘관으로서, 독일 전함 티르피츠를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으로[4] 군사 재판에 넘겨졌으며, 당시 재판부는 에를러의 직위를 박탈함과 동시에 3년 2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당시 독일의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에를러의 형은 감형되었고 직위 상실은 철회되었으며, 1945년 2월에 그는 JG 5를 떠나 JG 7으로 재배치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945년 4월 4일, 그는 Me 262로 연합군 폭격기 2대를 격추하고,[5] 탄약이 떨어지자 폭격기에 충돌하여 세 번째 폭격기(B-24 또는 B-17)를 파괴함으로써 삶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Theo, Heinrich hier! Habe zwei Bomber abgeschossen; Munition ist alle. Ich ramme jetzt. Auf Wiedersehen, sehen uns in Walhalla!"

"테오, 폭격기 둘을 격추했는데 탄약이 떨어졌다. 이대로 들이받겠다. 잘 지내라, 발할라에서 만나자!"

하인리히 에를러의 마지막 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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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전중 사망, 자세한 이야기는 후술[2] 또한 이는 전세계에서 10위안에 드는 기록이다.[3] 처음에는 JG 77/제4비행단으로 배치되었고, 이후 제4 비행단이 JG 77에서 JG 5로 재배치되었다.[4] 이는 티르피츠가 에를러가 지휘하는 JG 5가 호위하던 목표물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나 티르피츠는 공습으로 격침되었으니, 더더욱이나 책임이 공군 쪽 지휘관이었던 에를러에게 향한 것.[5] 파일:B-24 Red Bow.jpg
당시 사진이다. 참고로 저 두 동강난 B-24에서는 무전수 1명 밖에 살아 남지 못했다.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기록에 따르면, 30mm 2~3 발을 쏴, 두동강이 나버렸거나, 로켓을 1~2발을 쏴 두동강이 나버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