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우크라이나 관계/202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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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大韓民國
Republic of Korea
우크라이나
Україна
Ukraine
1. 개요
2. 2020년
3. 2021년
4. 2022년
5. 2023년
5.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2020년대, 2020년에서 2029년까지의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관계를 설명한 문서이다. 양국의 관계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부터 교류와 협력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한국내에선 러시아어로 표기된 지명들을 우크라이나어로 교체하고 있다(예컨대, 키예프를 키이우로 바꾸는 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일어나자 한국 정부와 국민들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했다. 다만 한러관계의 문제로 인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식량, 의약품이나 방호용 장비와 같은 비전투 물자로 한정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체류중인 한국 교민은 선교사 14명, 유학생 4명, 자영업자 및 영주권자 46명으로 총 64명이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많이 줄어들었다.

한국 혈액관리본부에서는 우크라이나를 헌혈 금지 지역으로 정하지 않아 우크라이나에 장기간 체류한 사람도 아무 문제 없이 헌혈할 수 있다.

2. 2020년[편집]


2020년 9월 14일에 한국의 플라스틱 가드레일 전문기업 카리스는 우크라이나 도로 현대화 사업 재원 마련을 위한 대규모 국채 발행을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자체 보유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터미널을 통해 사료용 밀을 국내로 처음 들여왔다.#


3. 2021년[편집]


MBC에서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 방송에서 우크라이나 소개에 체르노빌을 넣는 희대의 사건을 일으키는 바람에 대한민국에서 나라 망신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대한민국으로 비유하자면 외국 방송사에서 개막식을 중계하며 대한민국 소개에 삼풍백화점이나 세월호를 넣은 것과 마찬가지다. 무엇을 소개해야 할지 모르면 그 나라 지폐에 나온 내용이라도 편집해서 보내면 되는데 기초 조사도 안 하고 대충 만들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해당 스캔들은 우크라이나 언론에도 소개되었다.# 우크라이나가 어머니의 고향이기에 일리야 벨랴코프 역시 해당 사건을 공개적으로 질타한 바 있다.

주한우크라이나대사관의 이고르 데니식 대사대리2021년 7월 26일 뉴스1의 이메일 질의를 통해서, '우크라이나는 오랜 역사를 가졌고 여러 분야에서 놀라운 업적을 남겼고 우수한 인재와 풍부한 문화를 지니고 있는데, 이 비극적인 사건으로만 비춰져서 불편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오늘 문화방송의 사과 서한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다만 이 사건이 양국간의 외교적 분쟁으로 확대되는 걸 원치 않는 듯, 지난 주말 동안 많은 한국 친구들로부터 응원 메시지를 받은 점에 대해 감사함을 표하면서 '2022년은 양국의 수교 30주년이라는 점을 한국 언론에서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10월 15일에 경찰청은 우크라이나 경찰, FBI, 인터폴과 함께 우크라이나에서 수사를 벌여 랜섬웨어 클롭을 유포한 조직원 4명을 밝혔다.#


4. 2022년[편집]


2021년 후반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전쟁 위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외교부는 우크라이나내 교민 안전을 위한 준비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또한 주우크라이나 한국 대사관 철수는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으며# 교민들의 철수 역시 촉구했다.#

2월 11일에 외교부는 한국 시간으로 13일 자정 12시부로 전쟁 위기 등을 이유로 우크라이나를 여행금지로 지정했고 우크라이나 체류 교민의 철수를 요청했다.#

코이카인도, 타지키스탄, 우크라이나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개발협력 사업을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내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우크라이나를 빠져나가는 교민들이 증가했다. 국토부는 우크라이나에 체류중이던 건설근로자 4명이 전원 인근 국가로 대피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도 교민 보호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회의를 개최했다.#

2월 22일,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하여 문재인 대통령이 NSC 전체회의와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 연석회의를 주최하였다.

3월 29일, 젤린스키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의 전화통화에서 지지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울산대학교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우크라이나 유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나토 정상회의에서 양국이 나란히 초대됐다.#

2022년 우크라이나가 북한과 단교하면서 남한의 단독 수교국이 되었다.


4.1.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편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22년 2월 24일, 1년 이상 공석이었던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에 경제 전문가 드미트로 포노마렌코가 임명됐다.

2월 24일부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자 한국내에선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반전시위, 기도회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2월 26일에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을 중심으로 정교회 서울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서 기도회가 열렸다.# 그리고 주한 우크라이나인들은 집회에서 우크라이나 지지를 호소했다.# 반전 시위에는 주한 우크라이나인들 외에도 주한 러시아인들이 참여했다.#

20대 대선을 앞두고 여야 대선 후보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발언으로 논란이 된 이재명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하 및 우크라이나 침공 책임전가 논란, 윤석열 귤 사진 논란이 해외에도 소개되었다.#

대한민국은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SWIFT 배제에 동참하면서, 아울러 우크라이나군복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인도적 지원으로 1천만 달러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법무부는 한국 체류 우크라이나인 3,800여 명에게 인도적 특별체류 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3월 1일,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이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에게 러시아어로 된 우크라이나 지명을 우크라이나어로 바꿔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는 우크라이나 지명 중 러시아어로 된 지명들을 우크라이나어로 바꾸는 움직임이 일어났다.[1] 조현 유엔대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며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와 연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3월 2일,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부 장관이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 침략을 강력히 규탄하며 러시아에 대한 제재 압박에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드미트로 쿨레바 외무부 장관은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전화통화로 우크라이나 사태와 한국의 인도적 지원 및 대러 제재 동참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고 연대의식에 사의를 표명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생 이후, 교류가 적었던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관계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SK그룹은 우크라이나 어린이 난민 구호를 위해 100만 달러를 기부한다고 밝혔다.# 또한, 각계각층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과 우크라이나 정부를 위해 기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한국에선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을 희망하는 경우가 생겨났다.#1#2 다만, 외교부는 우크라이나가 여행금지로 지정된 나라이기 때문에 참전하는 경우에는 여권 몰수를 포함해서 처벌받는다고 밝혔다.#1#2

외교부에서 우크라이나의 주요 지명들을 우크라이나식 표기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3월 4일, ROTC 중앙회는 우크라이나에 성금 1억 원을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해 600만 달러를 기부한다고 밝혔다.#

이근이 SNS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고 알리자, 한국 내에서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한 안드리 니콜라옌코 의원이 러시아군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총을 들었다.#

박서보 화백이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지지하며 5천만 원을 기부했다.#

우크라이나에 체류 중인 한국 교민들이 34명으로 집계됐다.#

3월 6일, 안산시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들과 러시아인들이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한 성금 캠페인 및 반전 캠페인을 벌였다.#

주 우크라이나 한국 대사관이 르비우에 임시사무소를 설치했지만, 르비우에까지 러시아군의 폭격이 이어지자 헝가리로 옮겼다.#

KBS와 SBS에서 외교부의 특별허가를 얻어 우크라이나로 입국해 취재를 시작했다.#1#2

3월 23일, 세운철강이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위해 5천만원을 기부한다고 밝혔다.#

3월 24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인 드미트로 포로마렌코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연대를 강조하고 재해구호기금 20만 달러(약 2억 4천만 원)를 전달했다.#

3월 26일, 우크라이나내 고려인 31명이 광주지역공동체의 지원을 받아 입국했다.#

3월 30일, 오데사 거주 고려인들이 한국으로 입국했다.#

4월 2일,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4월 11일에 한국 국회에서 화상연설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피난길에 여권을 잃어서 한국에 입국 못 한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을 위해 한국 정부가 입국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한다고 밝혔다.# 이광재 의원이 우크라이나내 고려인들을 군수송기로 이용해 한국으로 옮겨야 한다고 밝혔다.# 이용빈 의원은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을 수송기로 즉시 옮겨야 한다고 밝혔다.#

4월 8일, NATO 파트너국 합동 외교장관 회의에서 3천만 달러 규모의 추가지원을 한다고 밝혔다. #

4월 11일, 젤렌스키 대통령의 국회 연설이 예정되는 것과 동시에 우크라이나측이 한국에게 무기 지원을 요청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한국 국회에서 화상연설을 했다.# 화상연설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한국에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연설에서 국회의원들이 대거 참여하지 않은 것이 알려지면서 비판받고 있다.# 자세한 것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국회 연설 홀대 논란 참조.

4월 14일, 150~200여개의 군용 물자뿐만 아니라 러시아제 T-80 전차도 문재인 정부에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대사가 LIG넥스원 본사 방문을 추진할려다가 방문이 불발됐다.#

4월 17일, 주한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진행했다.#

4월 21일, 대한적십자사는 우크라이나에 총 2억 5천만 원 상당의 분유 1만팩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4월 25일, 우크라이나 정부 트위터 계정에서 올린 영상 중 하나에 현재 러시아를 과거의 파시즘 국가들과 같은 세력이라고 표현하는 장면에서 아돌프 히틀러, 베니토 무솔리니와 함께 당시 일본의 지도자로 쇼와 덴노가 나온 것에 대해 일본 정부 측의 항의로 영상을 내린 일이 발생하자, 한국과 세계의 네티즌들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이냐며 우크라이나와 일본 양국을 모두 비판했다. 러시아의 일방적 침략전쟁과 더 나아가서 전체주의에 가까운 정치체제가 계속 문제시되는 상황에서 그보다 더했던 일본 제국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니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2]

한국교회봉사단은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를 돕고자 한국 정교회를 통해 우크라이나 정교회에 3,000만 원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에 이어 SBS가 르비우를 방문해 취재했다.#

대한체육회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올림픽 솔리대리티 펀드를 통해 우크라이나 스포츠 공동체에 2만 달러(약 2,500만 원)를 지원했다.#

5월 19일, 드미트로 포로마렌코 대사는 윤석열 정부에 대해 전 정부보다 높은 수준의 연대와 지원을 호소했다.#

5월 26일, 우리나라 국방부는 우크라이나에 방독면 등 비살상 군수물자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5월 29일, SBS 단독 특종으로 한국에서 우크라이나에 10만 발의 포탄을 지원했다는 것이 확인됐다. 직접적인 지원이 아닌 우회적으로 지원했으며 우크라이나에 155mm 포탄을 대거 보내는 바람에 비축분이 바닥난 캐나다군에 우리 군 비축분 10만 발을 제공한 것.(SBS) SBS 인터뷰에서 익명의 정부관계자는 지원을 인정하며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고도 우크라이나의 무기 확보를 간접적으로 돕는 묘안이라고 밝혔다.

6월 4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의약품과 식료 지원을 원하고 한국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6월 8일, 한국 외교부는 우크라이나의 무기 지원 요청을 재차 거절한 것으로 나타났다.#

6월 21일, 3천만 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이 결정되었다. 주로 보건의료용품, 식량지원으로 무기지원은 포함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추후 2천만 달러 규모의 추가 지원계획을 발표했다. #

주독일한국문화원이 독일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 학생들을 초청해 음악회를 연다고 밝혔다.#

7월 1일, 여의도에서 폴란드로 피난간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을 돕기 위한 행사가 개최됐다.#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광주시와 광주시 지역기관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입국한 고려인들을 지원하기로 했다.#

8월 1일, 외교부는 우크라이나에 체류중인 한국 국민들이 35명이고 체류 국민들의 안전을 점검중이라고 밝혔다.#

대한적십자사가 루마니아내 우크라이나 피난민 센터 4곳을 열었다고 밝혔다.#

8월 16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부차 학살을 저지른 러시아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광주 고려인마을에 정착한 우크라이나 고려인이 600명을 넘었다.#

11월 10일, 한국 정부가 비밀리에 우크라이나에 갈 포탄을 미국에 팔기로 했다고 WSJ이 보도했다.#

11월 29일, 우크라이나산 곡물 지원사업에 한국도 동참했다.#

12월 30일,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일환으로 삼성 갤럭시 탭 S6 라이트 6천 개를 학생들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12월 31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한 한국 교민이 폴란드 국경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도와 화제가 됐다.#


5. 2023년[편집]


1월 5일, 데니스 슈미할 총리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우크라이나 양국 협력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5월 21일, 우크라이나 세계지리 교과서 4종에서 대한민국의 한강의 기적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우크라이나에서 한국 관련 내용이 포함된 교과서가 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한국을 6~9쪽 분량의 별도 장으로 다뤘다.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은 이번 개정 교과서 발간에 대해 한국의 달라진 위상을 반영한 결과이자,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국력과 이에 걸맞은 외교를 펼쳐가는 한국을 비중 있게 다루는 것이 타당하다는 우크라이나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

7월 25일, 한 우크라이나 대사관 직원이 이태원의 한 주점에서 줄을 서지 않고 들어가려다 이를 제지하는 직원을 폭행하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까지 폭행한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하지만 그가 면책 특권을 행사할 수 있는 외교관 신분임을 확인한 경찰은 이튿날인 26일 오전 그를 석방했다.#1#2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 측은 해당 인물을 본국으로 송환할 예정임을 밝히면서 면책 특권을 행사할 것임을 확인했으며 따라서 해당 인물이 한국에서는 조사와 재판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해당 직원은 8월 9일 밤에 우크라이나로 출국하였는데, 그 사이 대사관을 찾아온 피해자에게 대사관 측은 사과는 커녕 피해자의 휴대폰을 가져가고[3] 해당 직원이 이미 출국했다고 거짓말을 한 것도 모자라 피해자 잘못이라고 훈계[4]까지 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주한 우크라이나 서기관의 술집 직원 폭행 사건을 참고할 것.

8월 6일,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체류 중인 기업인을 30여명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9월 25일 우크라이나 헤르손주와 인도적 식수 지원과 도시 재건을 위한 상호협력 업무협약을 했다.#

부산소방본부가 구급차 12대를 무상으로 지원했다.#

철도공사, 코레일이 우크라이나 철도공사와 철도 재건사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11월 23일.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인천 서구 창업·벤처클러스터에서 아나톨리 페도루크 우크라이나 부차시 시장과 만나 전후 재건사업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11월 27일. 한국수자원공사가 우크라이나 최초 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우크라이나 부차시와 협력하기로 했다.#

5.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편집]


2023년 2월 5일, 광주 고려인마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들이 1년 이상 피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월 15일, 한국 외교부는 바르샤바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재건 국제박람회에 참가한다고 밝혔다.#

2월 21일, 한국이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서 가장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도왔다는 자료가 발표되었다. 점수는 1~4점으로 매겨졌는데 한국은 2~3점 사이에 속한다. 해당 자료는 영국 텔레그래프지에 의해 작성되었다. # #

같은 날, 우크라이나의 소총수인 알렉산데르 페트렌코 일병이 서울경제와 화상통화를 했는데, 한국의 의약품 및 발전기 지원[5]에 대해 "한국이 보낸 발전기가 현재 키이우를 포함해 러시아의 공격으로 전기가 끊긴 우크라이나 내 여러 지역에 큰 도움이 됐다", "많은 전우들이 한국이 보내준 의료품으로 러시아군으로부터 입은 상처를 치료했다"고 감사의 뜻을 밝혔다. #

2월 24일, 외교부는 우크라이나에 1억 3,000달러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2월 26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과 관련된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을 언론에서 소개했다. 살상무기 지원은 꺼리고 싶지만 재건사업은 참여하고 싶어서 복잡하다는 것이 요지이다. #

4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러시아가 민간인을 대규모로 공격할 경우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4월 25일, 재향군인회가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지지하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올레나 젤렌스카를 접견했다.#


5월 21일, G7 히로시마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가졌다.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필요로 하는 지뢰제거 장비 등을 신속히 지원하겠다고 약속했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한국의 인도적·비살상 무기 지원에 감사를 표했다. #

파일:윤석열 부차 방문.jpg

7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키이우를 전격 방문해 젤렌스키와 정상회담을 했다. 한국 대통령으로는 최초의 우크라이나 방문이며, 개전 이후 아시아 국가 정상으로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이다. 또한 대통령이 파병지가 아닌 전시 국가를 방문하는 일은 대한민국 외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6]

2023년 12월. 우크라이나에 약속한 인도적 목적의 지뢰제거 장비가 전달됐다.#

6. 관련 문서[편집]


[1] 개정 이전에 키예프라는 지명도 KBS를 포함한 한국 방송사에서 키이우로 표기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게다가 한국 외교부에서 우크라이나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키이우로 바꾸기로 했다.[2]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크라이나가 친-일본 극우/군국주의 성향이라고 볼 수 없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 의회 연설에서 미국이 현재의 우크라이나와 마찬가지로 과거 겪었던 침략인 진주만 공습을 언급해 일본 여론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젤렌스키는 이런 식으로 서방 의회에서 연설할 때 그 나라의 역사(주로 전쟁, 위기)를 언급함으로써 공감과 연대를 이끌어냈고 이는 성공적이었다.[3] 다만 통역사의 휴대폰까지 같이 압수했었다고 하니 대사관을 나오기 직전 돌려받았을 가능성이 높다.[4] "우크라이나에서는 뒤에서 누군가 자기를 건드린다는 거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이거는 뭐 맞아도 할 말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주어만 바꾸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러시아가 내건 명분과 일치한다.[5] 대한민국 정부는 2022년 12월에 1억 달러 상당의 의약품과 발전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6] 박정희 전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 당시 월남을 방문하기도 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 당시 파병 기지를 찾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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