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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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홍성여.jpg
본관
남양 홍씨[1]
출생
1925년 12월 16일
평안남도 안주군 입석면 용담리[2]
사망
2004년 8월 7일
서울특별시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직업
독립운동가, 정치인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편집]


홍성여는 1925년 12월 16일 평안남도 안주군 입석면 용담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안주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2년 항일결사인 송학사(松鶴社)에 참가했다. 송학사는 일본의 패망을 예견하고 연합군 및 독립군이 국내에 진격해 올 때, 이에 호응하여 봉기할 것을 계획한 독립투쟁단체였다. 그들은 먼저 동지포섭에 힘을 쏟아 조직확대를 꾀하는 한편, 일제의 패망과 다가온 조국독립에 관한 내용을 담은 인쇄물을 민중들에게 살포하면서 항일의식을 고양했다.

그러나 송학사의 활동이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고 말았고, 홍성여는 1944년 6월에 체포된 뒤 1944년 11월 29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3년 장기 5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8.15 광복으로 출옥했다. 이후 한국독립당 최고위원, 인천시장 직무대행, 국가보훈처 고문 등을 지냈으며, 2004년 8월 7일 서울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홍성여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2004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당홍계 35세 성(性) 지(志) 항렬.[2] 남양 홍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