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정왕후 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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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역대 태후
대한제국 수립고종 대
명헌태후 홍씨
황조 멸망



효정왕후(孝定王后)
시호명헌숙경예인정목홍성장순정휘장소단희수현의헌강수유령자온공안효정왕후
(明憲淑敬睿仁正穆弘聖章純貞徽莊昭端禧粹顯懿獻康綏裕寧慈溫恭安孝定王后)
출생지전라북도 함열현(咸悅縣) 관사
사망지한성부 경운궁 수인당
본관남양(南陽)[1]
배우자헌종(憲宗)
아버지익풍부원군 홍재룡
어머니연창부부인 안씨
생몰
기간
음력1831년 1월 22일 ~ 1903년 11월 15일
양력1831년 3월 6일 ~ 1904년 1월 2일(향년 74세, 만 72세)
재위
기간
1844년 ~ 1849년(왕비)
1849년 ~ 1857년(대비)
1857년 ~ 1897년(왕대비)
1894년 ~ 1904년(왕태후)[2]

1. 개요
2. 매체에서


1. 개요[편집]


조선 24대 국왕 헌종 이환의 계비.

성은 홍(洪)씨이며 본관은 남양 홍씨. 1831년 돈령부영사 익풍부원군 홍재룡의 딸로 태어났으며, 헌종의 첫 번째 왕비였던 효현왕후가 사망하자 1년만에 헌종의 왕비가 되어 가례를 올렸다.

1849년 헌종이 승하하여 철종 이원범이 즉위하자 효정왕후는 대비가 되어 명헌이라는 존호를 받게 된다. 1857년 시할머니 순원왕후가 사망하자 왕대비가 되었고 예인, 정목, 홍성, 장순, 정휘 등의 시호가 더해졌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왕태후로 칭호가 격상되었다. 태후로서 주로 명헌태후라고 불렸다.

1904년 1월 2일[3] 덕수궁 수인당에서 73세의 나이에 고혈압으로 사망하였으며 헌종과의 소생은 없다. 능호는 경릉(景陵)으로 남편 헌종과 그의 첫째 왕후인 효현왕후와 나란히 묻혀있다. 1908년(순종1년)에 남편인 헌종이 헌종성황제로 추존되면서 효정성황후(孝定成皇后)로 추존되었다.


2. 매체에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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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드라마 명성황후에서는 김정하[4]가 배역을 맡았는데 초반에는 왕실 어른 1로 그냥 대비들끼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 나온다. 하지만 다른 대비들과 달리 20세기 초까지 오래 살기 때문에 후반부에는 을미사변 당시 일본 낭인들이 궐에 들어와 칼을 휘두르며 왕태자였던 순종순명효황후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내는 등 행패를 부리는 것을 보고 실신하고[5] 아관파천 때도 남의 나라 공사관으로 피신한 것을 한탄하며 명성황후 장례 준비 때 통곡하는 등 안습한 상황을 연달아 겪는다.(...) 참고로 명성황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오래 출연한 인물 중 하나이다.


[1] 남양 홍씨 32세손 '종(鍾)' 항렬이다. 김옥균을 암살한 한국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 홍종우와 박정희 정권 시기 초대 대통령 경호실장을 지냈던 홍종철, 그리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내정자 홍종학이 먼 친척 동생 뻘.[2] 갑오개혁으로 왕실의 호칭이 격상되면서 왕대비에서 왕태후로 승격되었다.[3] 음력으로 11월 15일이라 사망년도를 1903년으로 적은 경우도 있다.[4] 막돼먹은 영애씨에서 이영애(김현숙)의 어머니로 출연.[5] 이 때 의화군이 효정왕후에게 할마마마라 하는데 고증오류다. 효정왕후의 남편 헌종과 의화군의 아버지 고종은 같은 항렬이며 족보 상 형제지간이기 때문. 그래서 의화군에게 효정왕후는 큰어머니가 되지만 큰어마마마(...)란 말은 없기에 그냥 대비마마라 부르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