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노 요리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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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쿠라 막부 제4대 정이대장군
후지와라노 요리츠네
藤原賴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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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218년 2월 12일
사망
1256년 9월 1일 (향년 38세)
재임기간
제4대 정이대장군
1226년 ~ 1244년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후지와라(藤原) 가문의 분파인 쿠조가 출신의 가마쿠라 막부의 제4대 쇼군.[1] '쿠조 요리츠네'라고도 불린다. 아명 겸 별칭은 '미토라(三寅)'.[2] '후지와라 쇼군' 또는 '섭가장군'으로 칭해지기도 한다.

8세에 호조 가문에 의해 쇼군으로 옹립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쇼군의 정무를 대리하는 싯켄 호조 가문과 정치적 실권을 두고 대립하기 시작했지만, 싯켄 호조에 의해 강제로 해임되어 아들에게 쇼군직을 양위하고 물러나야 했다. 이후 복귀를 꾀하다 실패하여 교토로 추방되었다.


2. 생애[편집]


후지와라노 요리츠네는 1218년 쿠조 가문의 3대 당주 쿠조 미치이에(九条道家)와 사이온지가 출신인 노리코(倫子) 사이의 3남으로 태어났다.[3] 3대 쇼군 미나모토노 사네토모가 후손 없이 시해되자 쇼군 후계자로 선택되어[4] 2살 때 가마쿠라로 옮겨왔다. 하지만 1221년 고토바 상황이 막부 토벌을 위해 군사행동을 일으키는 등 어수선한 정국 분위기로 인해 8세에 관례를 올리고, 9세에 가마쿠라 막부 4대 쇼군에 임명되었다.

당초 전임 쇼군이었던 미나모토노 사네토모가 조카 구교에 의해 살해되면서 겐지 쇼군가의 대가 끊기자 호조씨는 쇼군을 황족 출신으로 정하기를 바란다는 상주문을 지어 교토로 보냈다. 그러나 고토바 상황이 '황족 쇼군'에 반대하여 결국 셋칸가(攝關家)[5] 출신 요리츠네가 쇼군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다 이미 쇼군의 정무를 대리하는 싯켄(執権) 직위를 독점한 호조 가문에서 막부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탓에 요리츠네는 정치에 관여하기가 어려웠다. 2대 쇼군 미나모토노 요리이에의 딸 다케노 고쇼(竹御所)와 결혼했으나 그녀는 난산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이가 들면서 요리츠네는 싯켄 호조 가문의 정권 장악에 불만을 갖기 시작했고, 조금씩 정치에 관여하고자 하면서 호조 가문과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측근이었던 호조 미쓰토키와 미우라 야스무라 및 싯켄 정치에 불만을 갖고 있었던 이들과 힘을 합쳐 차츰 세력을 키워갔다. 이에 위협을 느낀 싯켄 호조 쓰네토키는 1244년 요리츠네를 쇼군의 자리에서 해임하였다.

쇼군의 자리에서 물러난 요리츠네는 형식적으로는 출가를 하여 ‘행하’라는 법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마쿠라에 머물면서 자신의 뒤를 이어 쇼군의 자리에 오른 아들 요리츠구를 보좌하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1246년에는 나고야 미쓰토키 등 호조 가문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싯켄 호조를 무너뜨리고 요리츠네를 다시 쇼군으로 옹위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들의 계획은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로 끝났으며, 츠네토키의 뒤를 이어 5대 싯켄이 된 호조 도키요리는 요리츠네를 교토로 추방했다.

요리츠네의 교토 송환 이후 1252년에는 그의 뒤를 이어 쇼군이 된 아들 요리츠구도 쇼군 직에서 해임되면서 셋칸가 출신 쇼군은 이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요리츠네는 1256년 3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는데, 그 다음 달에 아들 요리츠구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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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마쿠라 막부에서 처음으로 즉위한 비미나모토계 쇼군이다.[2] 생년, 생월, 생시가 모두 '인()'으로 겹친다고 하여 미토라(三寅, 3인)가 되었다.[3] 동복형제 중 큰형은 4대 쿠조가 당주가 되는 노리자네였고, 둘째형과 동생은 각각 고셋케의 일원이 되는 니조가와 이치조가의 시조인 니조 요시자네와 이치조 사네츠네였다.[4] 초대 쇼군 요리토모의 동복여동생인 보몬히메의 두 딸이 각각 쿠조가와 사이온지가로 시집갔는데 그 두 딸의 자식이 요리츠네의 부모인 쿠조 미치이에와 노리코였으며, 이러한 혈연적 관계를 근거로 가마쿠라 쇼군위를 잇게 되었다. 사실 후술하듯 호조 가문에서는 원래 황족 출신 쇼군을 옹립할 생각이었으나 막부를 적대할 생각이던 고토바 상황이 거부하여 대신 요리츠네가 선택된 것이다.[5] 천황의 후견인으로 섭정·관백을 세습하는 가문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