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 배우 정보/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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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4년에 비디오 영화로 진출. 2003년까지 V시네마에서 활동하다가, 은퇴.[2] 1995년 맥스 에이와 앨리스 재팬으로 이적. 같은 해 은퇴[3] 1973년생. 1994년 앨리스 재팬에서 AV 데뷔. 니혼 테레비의 <로바노 미미소지> 등등 심야예능에서 자주 출연. 94년 10월에는 아사쿠사 록자에서 스트리퍼로 데뷔. 1996년 은퇴.[4] 1971년생. 1994년 아테나 영상에서 AV 데뷔. 가슴둘레 124cm의 Q컵으로, 어마어마한 폭유. 육덕계. 2001년 <폭유 임산부(爆乳妊婦)>라는 임신물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은퇴. 2007년 도쿄 토플리스라는 풍속점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 확인. 2년 뒤인 2009년에도 같은 점포에서 등장하였다. 이후 소식은 불명.[5] 1976년생. 1994년 아틀라스 21에서 AV 데뷔. 1년 정도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6] 1975년생. 1994년 '미즈타니 리카'라는 이름으로 AV 데뷔. 이후, 나나세 리카로 개명. 1996년에는 탤런트로 데뷔해서 특촬물 <격주 전대 카 레인저>에서 출연. 1998년 무렵, 탤런트에서 은퇴.[7] 1969년생. 만15살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OL 생활을 하다가, 풍속점에 들어갔다. 호텔도루(ホテトル; 러브호텔에 파견되는 호스티스)로 시작해 풍속점을 전전하다가, 1991년 SM의 세계로 들어갔다. 미즈키 치하루라는 이름으로 이메쿠라(이미지 클럽)에서 근무했고, 간간히 AV 기획물에 출연하기도 했다. 정확히 데뷔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1993년쯤으로 추정한다. 1995년 12월 7일, 전설적인 SM 여왕 '아오이 마리(葵マリ)'를 처음 만난 날에, 그녀로부터 사사하여, '제3대 아오이 마리', 즉 '산다이메 아오이 마리'라는 영광스런 칭호를 얻었다. 이후로 SM 장르와 스캇물을 중심으로 맹활약을 했다. 계승되는 중간에 2대 아오이 마리도 있었지만, 2대는 업계에 오래남진 못한 것 같다. 오늘날 명실상부 SM계의 대모 격인 AV여배우로서, AV에 SM 장르를 확립시킨 인물로 존경받고 있다. 2003년에 AV 감독으로 데뷔해 2013년까지 업계에서 활약했다. 2014년 11월 23일 '대관장 축제'를 프로듀스한 이래로 공연 기획에 뛰어들어, 2016년 2월 13일 '매니페스트 2016', 2017년 2월 26일 '전일본 긴박 박람회'를 주최하는 데 앞장섰다. 현재는 DMM닷컴에서 칼럼니스트로 글을 쓰고 있다.[8] 1975년생. 만14세에 첫 경험을 했다. 1994년 쿠키에서 '후지와라 시호'라는 예명으로 AV에 데뷔했다. 데뷔 전에는 패션 헬스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1995년 5월에는 오사카 동양 쇼 극장에서 스트리퍼로 데뷔했다. 2002년 3월까지 '후지와라 시호'로 활동하다가, 갑자기 유방을 K컵으로 확대수술을 하더니 '세나 사쿠라'로 개명했다. 갑작스런 유방 확대로 호불호가 많이 갈렸다. 이후 AV 4편을 찍고는, 미국에서 포르노 경력을 이어갔다. 정확히 언제 은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으로 간 지 얼마 안 되어 활동을 그만 둔 것 같다. 은퇴 후에는 캐나다로 이민가 있었으나, 2011년 일본에 귀국하여 팬들과 소통을 시작했다. 블로그를 통해 같은 해 4월 임신 중이라는 것을 알렸다. 2016년 2월 트윗을 한 걸 마지막으로 연락 두절.[9] 1976년생. 1994년 크리스탈 영상에서 AV에 데뷔한 이래, 96년까지 10여 편의 작품에 출연. 미모와 밸런스 잡힌 스타일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음. AV 외에도 수많은 그라비아에서 화보를 찍음. 1995년 유일한 주연 영화 <일본제소년(日本製少年)>에서 뛰어난 연기로 호평받고, 제5회 일본 영화 프로페셔널 대상 신인상을 받았다. 유망한 영화배우로 점쳐 있었지만, 1996년 1월에 갑자기 AV와 영화계 양쪽 모두에서 은퇴하고 잠적했다. 이후 소식 불명. AV 출연작들은 중고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으며, 2003년 앨리스 재팬에서 출연했던 작품들이 DVD로 복원됐다.[10] 1975년 후쿠시마 출생. 아버지는 극장 경영자. 부모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고 곱게 자랐다고 함. 초등학교에서 클래식 발레를 배웠고, 그 밖에도 다도, 꽃꽂이, 전통무용, 플루트 연주 등 다양한 특기를 쌓았음.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리듬 체조를 배웠지만, 이때 목을 크게 다치면서 자주 목과 어깨가 결리게 됐다. 만16살에는 성숙한 외모 때문에 20대로 자주 오해받음.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연예계를 동경하여 수영복 모델로 일하기 시작, 자주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나가 촬영을 하면서 도쿄로 상경해야겠다고 결심, 졸업 후 상경. 도쿄에서는 헤어 메이크업 전문학교에 다니면서 모델 일도 계속했음. 모델 일이 바빠지면서 학교는 중퇴. 1993년 '나리아이 준'이라는 이름으로 코스프레계 잡지에서 그라비아 아이돌로 데뷔. 이후 누드집을 거쳐, 1994년 AV 데뷔. 도쿄 테레비의 심야예능 <길가메쉬 나이트>에 출연하면서 인기를 많이 쌓음. 1999년 무렵, 셀계로 이적하면서, 붓카케, SM, 레즈 등 하드코어 노선에서 활약. 2000년 무디즈의 첫 번째 작품 <카오스 색정 네 자매>에서 미우라 아이카, 스즈키 마나미, 카나자와 분코와 함께 출연. 2002년 은퇴. 2002년 11월 15일 친한 여배우인 아사쿠라 시호의 주연작 <오망코의 꽃길>에서 우정출연한 것을 마지막으로 업계를 떠났다.[11] 1975년생. 데뷔하기 전에는 "쿠로 부타 올 스타즈(黒BUTAオールスターズ)"라는 아이돌 그룹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후, 1년 간 활동하고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 2001년 아틀라스 21에서 발매한 출연작이 있는데, 잠깐 복귀한 건지, 아니면 이전의 작품들을 복각한 건지는 모르겠음.[12] 1974년생. 1994년 앨리스 재팬에서 데뷔. 귀여운 얼굴과, 평범한 듯하면서도 굴곡이 풍부한 바디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심야예능 <길가메쉬 나이트>에 출연해 인기를 끌었다. 95년 은퇴 추정.[13] 카와이 메리 제인의 영문명은 Mary Jane Kawai이다.[14] 1974년 도쿄 출생. 스페인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하프. 1994년 9월 16일 V&R 플래닝에서 AV 데뷔. 이윽고 9월 21일 두 번째 작품 <Mary jane>에서 음모를 노출해 큰 주목을 받았음. AV가 아니라 이미지 비디오였지만, 아직 비디오에서 헤어 누드가 해금되지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 감독은 도요타 카오루. 이후, 하드코어한 영상을 찍다가 95년 은퇴.[15] 상당한 동안에 거유로, 90년대 최고의 로리계 아이돌로 인기를 모았음. 다양한 메이커에서 출연했고, 격렬한 씬도 자주 찍었으며, 개중에는 무수정 노모도 있었다. 아사쿠사 록자에서 스트리퍼로도 활동. 활동은 1년 안팎으로 길지 않았던 걸로 보임. 은퇴 이후 '히구치 미츠키'라는 이름으로 사진작가로 데뷔. 영상 나레이터로도 활동.[16] 1975년생. 1994년 8월 16일, h.m.p에서 데뷔하여 미소녀계 AV 배우로 인기를 끌었음. 뉴욕에서 라틴 댄스를 배운 뒤, 94년 12월 14일 오사카의 동양 쇼 극장에서 댄서로 데뷔하기도 했음. 라틴 음악에 어울리는 열정적인 댄스와 유연한 몸놀림이 특징어서, 독특하고 분위기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고 함. 밝고 유머가 넘쳐 관객들에게 인기가 많았음. AV에서는 95년 은퇴.[17] 1974년생. 어떤 프로필에서는 75년생이라고도 하지만, 74년생이 맞는 걸로 보임. 1994년 우주기획의 바주카 라벨에서 AV 데뷔. 95년 은퇴했지만, 이후에도 사진집을 몇 권 더 출간했음.[18] 1976년생. 미소녀계 AV 배우로서, 청순한 여고생에서 양아치 여고생까지 다양한 역할을 연기함. 시네매직의 <본디지 배틀 피학의 여전사(ボンデージバトル 被虐の女戦士)>에서 능욕당하는 여자 스파이로 등장해 큰 인기를 얻음. SM계 잡지에서도 그라비아 화보를 남겼음. 96년 은퇴.[1974년] 데뷔. 예명은 거유로 유명한 그라비아 아이돌 '호소카와 후미에(細川ふみえ)'에서 따왔다. 호소카와 시노부도 거유라고 하지만, 가슴둘레 98cm라는 것만 제외하고는 정확한 신체 사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1994년 아테나영상에서 AV 데뷔. 최소한 2000년까지는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2001년 핑크영화 <거유 레이프 강제 파이즈리(巨乳レイプ 強制パイズリ)>를 찍은 걸 마지막으로 연예계에서 완전 은퇴.[19] 1960년생. 1985년 일본 최초로 레이싱 모델(레이싱 퀸)이 되었음. 당시에는 아직 레이싱 모델이 서킷 캠페인 모델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스폰서 기업을 홍보하는 수준이었다. 기업의 로고가 박힌 점프 슈트를 입고 등장하는 게 보통이었음. 1994년 AV에 데뷔. 레이싱 모델 코스튬 장르의 선구자. 모델로 활동했던 경험과 장신의 미모를 토대로, 레이싱 모델 의상을 입고 나오는 작품이 많았음. 곧 임시 휴업을 선언. 그러다 2010년에 다시 복귀해서, 50대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레이싱 컨셉으로 등장했음. 현재는 은퇴.[20] 후지무라 마스미는 藤村ますみ라고도 표기한다.[21] 1974년생. 미소녀계 여배우. 1995년 은퇴한 뒤, 탤런트 전향. '쿠라타 마키'라는 예명으로 텔레비전 CM이나 V 시네마 등에서 출연했으나, 오래 활동하지는 않은 듯.[22] 2006년 경까지 활동. 2010년 롯폰기의 캬바쿠라에서 활동.[23] 1995년 2월 1일, 오사카 동양 쇼 극장에서 스트리퍼로 데뷔했고, 같은 해 여름에 AV에서 은퇴했다. 2001년 12월 아틀라스 21에서 AV에 복귀. 하지만 2004년 4월 30일 동양 쇼 극장에서의 스트립 무대를 마지막으로, AV와 스트립 양쪽 모두에서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