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리그/비판 및 문제점

덤프버전 :

1. 한국야구위원회 관련 논란
2. 스트라이크존 문제
2.1. 2002년의 스트라이크존 확대
2.2. 2017 시즌 전까지의 스트라이크존
2.3. 2017 시즌 이후
2.3.1. 2017 시즌 이후, 이어지는 논란
2.3.2. 오히려 존이 좁다는 의견
3. 선수들의 팬 서비스 문제
4. 국제 경쟁력 저하


1. 한국야구위원회 관련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한국야구위원회/사건사고 및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 스트라이크존 문제[편집]


국제 대회를 고려하면 문제가 있던 부분이 2017 시즌 공론화되기까지 KBO 리그에 뿌리내린 고유의 스트라이크존이었다. 야구 규정대로 맞추어 가야할 과제로 인정되어 개선을 위해 노력 중이지만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2.1. 2002년의 스트라이크존 확대[편집]


의외로 스트라이크 존 확대는 2002시즌 잠시 있었다(출처). 그러나 좌우폭은 고질적으로 그대로 였고 피칭데이터 측정으로 인해 다시 상하는 줄어들면서 2017 시즌까지 이르렀다는 것.


2.2. 2017 시즌 전까지의 스트라이크존[편집]


용병타자에 대한 과거 구심들의 횡포를 고발한 글이다. 보통 홈플레이트와 타자의 신체를 기준으로 규정대로 설정된 미국,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타자의 반대 타석 안쪽 라인을 훑는 공을 기본으로 잡아주되 타자의 옆구리 밑에서 높이가 길면 무릎보다 더 위쪽, 좁으면 허벅지 정도로 높이를 고정하는 정신나간 존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 이유는 구심들은 타자의 가슴[1]에서 무릎[2]의 높이에 홈플레이트 위를 지나는 공만이 아니라 그냥 홈플레이트 가까운 위쪽을 지나갔다 싶으면 잡아줬던 것이 굳어진 것이다. 그리고 높이는 아래로는 무릎 위쪽으로 끊고, 위로는 허리와 어깨의 중간선이 아니라 허리에 가까운 옆구리의 마지막 갈비뼈 정도를 잡으면 크보존이 완성된다. 안쪽이 관대한 주심은 정말 맞지 않으면 스트라이크냐 싶을 정도였다. 특히 외국인 타자에게 대개 관대한 존이 펼쳐지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외인투수들에게는 그 좌우의 관대함을 거두고 높낮이를 유지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냥 복판만 잡아줄 기세인 구심들이 많았다. 훗날 돌아가서 유감을 표시한 퇴출된 대표적인 용병이 한화를 거쳐간 케일럽 클레이. 지금은 간혹 뜬금없이 잡아주는 육망성존은 어쩌면 짬이 오래된 구심들이 존을 두 개로 머리에 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3. 2017 시즌 이후[편집]


점차 국제규정에 맞춰 비슷해지고 있어야 하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도하 참사 이전의 우물안 스트라이크 존으로 회귀하고 있는 중이다. 위의 스트라이크 존 문제를 지적한 기사에서도 언급되어 있지만 KBO 리그의 스트라이크 존은 위 아래가 박하고 좌우는 넓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는데[3] 2017 시즌을 앞두고 스트라이크존을 규정대로 맞추겠다는 KBO 리그 심판위원회의 공식 입장이 나왔다.


2.3.1. 2017 시즌 이후, 이어지는 논란[편집]

최근 타고투저의 완화를 위해 좌우로는 더욱 넓어지고 위 아래는 구심에 따라 그대로이거나 넓어졌다. 2018년 현재 KBO 리그의 스트라이크 존은 국제 규격과는 더욱 더 거리가 멀어진 세계의 어느 리그에서도 볼 수 없는 수준의 태평양 스트라이크 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팬들은 아직도 스트존의 확대를 더욱 주장하고 있는 중이다.[4] 물론 이런 말도 안되는 존에 반발하는 타자들과 팬들도 있기에 2018시즌은 스트라이크 판정 시비가 유난히 심한 시즌이 되었고 심판과 선수, 팬들의 갈등도 심화되고 있는 중이다. 몇몇 중계 방송사[5]들은 그런 부분을 진화하기 위해 2018시즌 중계 방송에서 아예 스트라이크 존을 내보내지 않는 중이다. 스트라이크 존이 없어서 불편하다는 야구팬들의 엄청난 비판 덕분에 2021년부터는 지상파 3사는 물론이고 스포티비, 스포티비 2에서도 스트라이크 존, 발사각도 등이 표시되고 있다. 스트라이크 존을 표시하니 메이저리그를 보는 느낌, 게임을 하는 느낌이라고 호평하는 야구 팬들이 많고 잠시 송출 오류로 나오지 않으면 불편을 호소하기도 한다. 애초부터 스트라이크 존이 표시되지 않는다고 판정논란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야구인들의 사고방식 자체가 문제다.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할 생각을 안하고 어떻게든 숨기려고 하니까 매년 문제가 반복이 될 수 밖에 없다.

2021년 스트라이크 존 문제로 또 한번 팬들이 불만이 폭발하자 방송국들은 중계 화면의 스트라이크 존을 없애는 짓거리를 또 반복하고 있다. 정말 답이 없는 상황.


2.3.2. 오히려 존이 좁다는 의견[편집]

투수 출신인 엠스플 해설위원 심수창2021년 8월 27일 본인의 유튜브에서 오히려 존이 좁으며, 심지어 타자의 커리어에 따라 더 좁아진다는 소신 발언을 했다. 외인 투수들이 토로하던 악명 높은 척사[6]을 국내 투수들에게도 설정하는 구심들이 있다는 것이다.

2021년 도쿄 올림픽 실패를 분석한 봉중근김태균 역시 존이 좁아졌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규정대로 잡아줘야 하는 높은 존이 무시되고 좌우폭만 좁아졌다는 것. 봉중근의 의견에 따르면 아직 높은 스트라이크는 무시되고, 과거에 비해 좌우폭은 줄었으나 몸쪽은 더 후하다고 한다.


3. 선수들의 팬 서비스 문제[편집]


너희들이 볼펜 한자루라도 스스로 만들어본 적이 있느냐? 너희 같이 생산성 없는 공놀이를 주업으로 삼으면서 돈 벌고 대접받고 하는 것은 팬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팬들에게 잘해야 된다."

최희암 당시 연세대학교 농구부 감독[7]


그러면서도 “선수들도 사람이고, 제각각이다. 팬들과의 만남을 불편하게 생각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내성적인 선수들도 있다. 그런 부분은 팬들도 이해를 해주셨으면 한다. 또 선수 전용 주차장이나, 원정 버스를 탑승하러 가는 통로, 원정 숙소(호텔) 로비 등은 미국에서는 원칙적으로 보호되는 공간이다. 선수가 퇴근할 때 집에 빨리 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할 수도 있다. 또 원정 때는 바로 경기 준비를 해야 해서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 이런 점에 대해 아직 팬들이 잘 모르시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힐만 감독은 메이저 리그 선수들이 팬들의 요청에 모두 응한다는 시선에 대해서 “미국이나 일본도 한국과 같다. 아무래도 메이저 리그 선수들은 팬들과 동선이 겹치지 않아 자주 접촉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꺼리는 선수도 있다”면서 “한국이나 일본팬들은 예의가 바른 편이다. 미국 팬들 중에는 매우 공격적인 분들도 많다. 선수들이 팬들에 대한 서비스를 신경 써야 하고, 팬들도 선수들의 사정을 좀 더 이해해주는 게 모두 중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트레이 힐만[8]

. 힐만 감독이 바라 본 사인 논란 “미국도 일본도 똑같다”


타 스포츠 리그들과 비교했을 때 프로 선수로서 선수들의 팬 서비스 정신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는다.[9]

일각에서는 메이저 리그나 일본프로야구와 비교하는 경우도 있는데 해외도 비슷하다. 한국의 경우에는 오히려 출퇴근 동선이 관중들과 겹쳐 팬들과의 접촉이 많은 반면 미국과 일본은 출퇴근 동선이 관객들과 겹치는 일이 별로 없다. 단적으로 오타니 쇼헤이의 경우에도 일본프로야구 시절 싸인 사진들이나 소개 기사들은 대부분 스프링캠프에서의 모습이지 정규 시즌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경기장 내에서는 팬서비스가 좋아야 하는 건 당연한 것이고 한국에서도 외야에서 싸인 잘해주는 선수들이나 내야에서 자신의 용품을 건네는 선수들을 가끔씩 경기장에서 볼 수 있다.



프로 선수가 싸인을 해주고 사진을 찍어주는 팬서비스 1분은 선수에게는 그냥 1분이겠지만 팬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1분이라는 말이 있듯이 실력과 더불어 팬서비스도 프로의 덕목중의 하나다. 예전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지만 일부 선수들은 좀 더 프로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요즘에는 그래도 이러한 비판 덕분에 팬서비스를 성실히 해주는 선수들이 늘어났지만 잊을만 하면 터지는 일부 선수들의 팬서비스 덕분에 리그 전체가 욕을 먹는 경우가 있다. 팬이 없으면 프로리그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수들이 마음 속에 새겨두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싸인 외에도 팬을 대하는 자세에서 프로의식이 심각하게 결여된 모습 또한 자주 드러난다. 선수들의 학교폭력, 사설 토토, 성범죄 사건들과 더불어, 운동에 집중한다는 핑계로 교육을 등한시한 모습이 팬을 상대로도 드러나는 것. 대표적으로 최주환의 사례가 있다.


4. 국제 경쟁력 저하[편집]


위에 언급했듯 200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야구는 세계대회에서 나름대로 괄목할만한 성적을 내어 비록 최강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다른 나라들이 위협을 느낄 만한 다크호스로 부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KBO가 한국 최대의 스포츠 리그라는 것에서 기인한 무사안일함과 세계적인 변화에 무관심한 풍토, 최고 인기 리그에 걸맞지 않은 유망주 육성문제들이 방치된 결과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본선 1차전에서 호주에게 7:8로 패배, 그 다음 경기인 일본전에서는 13:4, 반사회인인 체코와 비슷한 경기력을 보이는 등, 프로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간의 경기에서 콜드게임이나 겨우 면한 끔찍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말았다.[10]

앞서 말했듯 미국과 일본의 발전을 어느정도 따라기는 커녕, '현장의 감' 운운하는 감독 코치진의 문제, 해외 교류가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문제가 누적되고 누적되어 크게 터지고 말았다.

리그의 경쟁력, 수준과 국가대표팀의 국제경쟁력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마다 나오는 연봉에 대한 비난이나 선수의 대한 열정도 단순한 인신공격에 지나지 않는 것도 맞다. 단순 이런식의 비난이라면 FIFA 월드컵에서 현재 4연속으로 죽을 쑤고 심지어 2연속 대륙별 예선을 뚫지 못한 이탈리아세리에 A와 2연속 본선 조별라운드에서 탈락한 독일분데스리가의 인기가 크게 꺾였는가? 그리고 네덜란드 야구 국가대표팀이 WBC에서 연속 4강을 갔지만 '네덜란드의 체육 유망주들이 요즘 전부 축구와 빙상종목 대신 야구를 하고 있다'라는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KBO리그는 위에 적힌 세리에A나 분데스리가와는 상황이 다르다. 분데스리가세리에 A에는 수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뛰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독일, 이탈리아 선수들도 다른 나라 리그에서 뛰었거나 뛰고 있다. 게다가 유럽 축구 리그는 애초에 챔스, 유로파 등 활발한 교류를 통해 리그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고, UEFA 계수라는 시스템이 존재하기에 대표팀의 성적과 리그의 경쟁력을 연관짓지 않는다.

그러나 KBO리그는 28인 엔트리에 외국인 선수는 단 3명뿐인 한국인의 리그이고, 대표팀은 거의 KBO리그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으며,[11] 리그 간 교류는 전무하다. 즉, 이런 상황에서 대표팀의 실패는 KBO리그 최고 선수들의 수준이 그것밖에 되지 않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표팀에서 이런 실망스런 결과가 누적되면 누적될수록 KBO리그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소리를 들으며, 앞으로 선수들이 작성할 빛나는 기록들은 가치가 폄하될 것이다. 그렇잖아도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체육계 신규 유망주들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는데 이들중에서 야구 유소년 숫자는 더 줄어들고 있다.

현 상황에서 출산률의 극적인 반등은 어렵고, 현재 태어난 어린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야구선수를 동경하고 야구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갖게 하여 이들을 유소년 야구로 많이 유입시켜 육성해야 한다. 실제로, 2023 WBC와 비슷한 시기인 3세대 이후 KPOP 보이그룹 업계의 경우 업계 전체적인 부진, 남자 어린이/청소년들의 급격한 보이그룹 관심도/선망도 저하로 인하여 국내 남자 연습생 인재풀이 사실상 황폐화되었고, 어떻게든 외국에서 수소문을 해서 외국인 연습생을 발굴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야구계도 이러한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대처하지 못할 경우 2020년 이후 KPOP 보이그룹 업계처럼 부진에 빠질 수 있다.

같은 해 치룬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12] 금메달로 인해 투수 부문에서는 어느 정도 세대 교체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광현 혹은 양현종에게만 극도로 의존하던 야구 국대 투수 계보진이 문동주박세웅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박영현은 전성기 때의 오승환이 보일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

더는 대한민국 야구가 억울하게 음해받지 않기 위해서는 2024 WBSC 프리미어 12202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달라진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주요 과제일 것이다.


[1] 허리의 벨트와 어깨 위 끝의 중간[2] 무릎의 아래 끝[3] 애초에 이전까지 말도 안되는 넓은 존을 쓰다가 전보다 좌우가 좁아지며 정상화 되어가던 것도 도하 참사 덕분이었다. 사실 위 아래가 박한 것은 NPB도 마찬가지이고 메이저리그에 비해 아시아 리그가 위 아래가 박한 편이다. 거기다 NPB는 좌우가 넓지도 않다. 덕분에 NPB는 세계의 프로리그 중 가장 스트라이크 존이 타이트한 편이다. 그러나 일본프로야구를 거쳐 MLB에 진출한 오타니 쇼헤이에 따르면 양 리그의 스트라이크 존은 MLB쪽이 바깥쪽이 약간 넓다고 언급했다. 최소한 높이 만큼은 이견이 없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4] 존에서 공 한두개쯤은 빠져도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팬들이 많다. KBO 리그가 이런 국제규격과는 더욱 동떨어진 우물안 리그가 되어가는 것에는 kbo와 심판의 의지뿐만이 아닌 팬들의 수준에도 그 이유가 있다.[5] MBC SPORTS+는 가끔씩 내보낸다. SPOTV는 아예 내보내지 않는다. 2020년부터는 SBS Sports도 스트라이크 존을 내보내지 않는다.[6] 규정보다 좁은 KBO리그 특유의 높낮이로 설정되고, 국내 투수보단 확실히 좁은 애매한 너비로 설정된 외인투수용 스트라이크존과 흡사한 스트라이크존. 거의 한복판에 가깝다.[7] 최희암은 농구 감독이지만 이 말은 인기가 있는 모든 프로 스포츠 선수들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게다가 이 시기는 아직 팬서비스 개념도 자리잡기 한참전인 1990년대이다.[8] 트레이 힐만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감독 시절부터 팬 서비스로 유명하다.[9] 다만 2023년 기준으로 팬 서비스에 대한 비판은 꽤나 사그라든 편이다. 팬 서비스가 훌륭한 선배 선수들의 노력으로 과거 ’싸인 희소성‘ 등이 언급되던 시절에 비하면 확실히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에는 심지어 선수가 팬에게 굴욕을 당한 이런 사건까지 일어났다.[10] 10여년 전부터 일본 기자들로부터 지적되어온 문제점들이 이번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제대로 터졌다고 보면 된다.[11] 30인 로스터 중 김하성토미 에드먼을 제외한 28명이 KBO 소속이다.[12] 자체적으로 만 24세 이하 나이 제한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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