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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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
2. 데뷔 과정[편집]
데뷔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박효신은 사실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을 뿐이지 가수가 되려고 하지는 않았다. TV에 나오는 가수들을 보며 외계인 같은 존재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중학교 3학년 때 학교 축제에 나가서 유리상자 박승화의 솔로곡 넌 웃을 수 있었니를 부른 후 대상을 수상한다. 학교 축제에서 대상을 받은 후로는 자기 노래를 객관적으로 평가 받으려고 다른 여러 가요제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부천 청소년 가요제에서 이기찬의 Please로 대상을 받았고, YMCA 청소년 가요제, 제물포 가요제 등의 대회에서도 수상한 경력이 있다. 한 창작 가요제에서 금상을 받은 것[13] 을 제외하고는 전부 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가수가 되려고 결정한 후 고등학교 1학년 때 한 기획사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계약 없이 8~9개월을 보내고 1집을 준비했지만 소속사가 재정난으로 문을 닫고 말았다. 그곳에서 다른 기획사를 소개시켜 주었고 오디션에 합격했지만 대놓고 돈을 노리는 요구에 미계약 상태이니 나가겠다고 말하자 박효신에게 5천만 원을 갚으라고 강요했다. 가끔 준 용돈과 식대 및 데모곡 비용을 부풀린 것이었다고. 부모님의 이혼으로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었던 박효신에게는 너무 큰 금액이었다. 이러한 상처로 가수의 꿈을 접었던 박효신은 2학년 때 한 작곡가의 설득으로 신촌뮤직에 들어갔다.
3학년이 되어서는 데뷔를 준비하며 휘성, 환희, 뮤지[14] , 영지[15] 와 같은 아현정보산업고등학교에 다녔다.[16]
1999년 11월 4일 이지훈의 영 스트리트 공개 방송에서 데뷔했는데, 아직 고척고에 다니고 있던 시점이라 2~3년간 박효신은 고척고에서 서태지보다도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2000년 1월 15일 당시 시청률이 높았던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출연하며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에 본인의 말에 따르면 이때가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인터뷰 내내 긴장하는 신인 박효신의 모습이 영상으로 남아 있다.
3. 보컬[편집]
제가 효신 씨 노래하는 걸 보면 항상 느끼지만.. 그냥 괴물 같아요. 원본
KBS Cool FM 슈퍼주니어의 Kiss the Radio에서 김범수
고등학교 때 데뷔했을 때 노래를 듣고 너 나이 속이는 거 아니냐고. 라디오에 라이브를 하러 왔는데 "너 나이 속이고 있지?" 다 그랬어요 다. 너무 완성이 돼 있었던...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에 음악(야생화) 들으면서 다들 그런 생각 했잖아요. 변했구나. 근데 보통 홈런타자가 타격폼을 바꾸게 되면 홈런을 못 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홈런타자가 타격폼을 바꾸고 홈런을 더 치게 될 수 있게 된 느낌? 원본
FM 음악도시에서 이적
박효신의 보컬 특징은 부드러우면서 호소력 있는 독창적인 음색과 자신만의 곡 해석 능력과 뛰어난 가창력과 완벽한 라이브다. 풍부한 성량과 그걸 받쳐 주는 복압, 저음, 고음, 허스키, 스크래치, 샤우팅, 말끔한 성구전환, 바이브레이션 등 박효신이 쓰지 못하는 테크닉이나 소리를 찾기 힘들 정도다. 일단 타고난 음색이 좋고 성량, 감정, 음감, 리듬감, 기교도 탁월하다. 특히 기본적인 폐활량이 뛰어나 단단하고 긴 소리를 내고도 아무렇지 않게 다음 소절을 이어 나간다.[17] 심지어 호흡이 비교적 많이 섞인 창법[18] 인데도 일반인이 따라하기 힘들 정도로 긴 음을 낸다.
감성적인 부분에 있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발라더 중 한 명 답게, 넓은 감성 폭을 보여준다. 테크닉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흑인 음악(알앤비&소울)을 과거에 많이 해왔던 보컬리스트인만큼 고난이도의 기교&애드립(스크래치, 꺾기, 성구전환 등)을 손쉽게 선사한다. 곡마다 혹은 곡 안에서도 다양한 창법 활용을 하여 맑고 부드러운 음색부터 허스키하고, 단단한 음색까지 보여준다.
뮤지컬 활동 후로 발성 면에서 발전이 있었다고 본인도 인정했다. 눈에 띄는 점은 엄청난 성대 접촉과 엄청난 공간감에서 나오는 공명이다.
웃는 남자 - 그 눈을 떠 짧은 연습 영상
박효신의 발성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다름 아닌 목열기다. 박효신은 오랜 세월에 걸친 훈련으로 후두의 위치를 크게 바꾸지 않고도 저음부터 고음까지 편하게 소리낼 수 있는 보컬이다. 그래서 중고음에 진입해도 열린 소리로 풍부한 공간감을 주며 목에 큰 무리를 주지도 않는다. 실제로 그의 라이브 영상을 자세히 보면 2옥타브 라에서 심지어 3옥타브 도에 이르는 고음에서도 후두의 움직임이 안정적이고 적절한 위치에서 호흡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콘서트 같은 라이브 무대에서도 피치 브레이크가 걸리는 일이 거의 없으며 그 와중에도 성대접촉의 질감은 늘 아포지오가 이루어질 수 있는 수준에서 유지가 되는 보컬이다. 박효신처럼 고음에서 후두위치가 그리 높지 않아 목열기가 이루어지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대접촉을 유지할 수 있는 보컬은 거의없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발성적으로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20대 때는 소몰이에 기반을 둔 발성으로 묵직하게 열리고(후두가 엄청 낮았다), 피치감이 두꺼워 비교적 고음에 약한 소리를 사용했다면 30대를 지나고 40대에 접어 들면서 점점 피치가 높아지고 얇아지며(20대보다는 후두가 높아졌지만 여전히 낮은 편) 테너에 가까운 음색을 내고 있다. 확실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음 처리가 원숙해지고 성대 접촉도 단단해져 음색만 놓고보면 시간을 역행하는 수준으로 젊고 깔끔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19]
워낙 확고한 개성과 뛰어난 실력 탓에 일반인들이 모창하거나 롤모델 삼아 연습하는 경우 많이 어렵다. 김범수가 정석적인 발성과 창법, 스타일을 기반으로 발성의 교과서로 불리며 좋은 롤모델로 꼽히는 것과는 정반대의 경우. 박효신은 장르의 편중 없이 R&B, 소울, 록 음악, 재즈, 보사노바 등 다양한 시도를 하는 스펙트럼 넓은 보컬이다.[20]
라이브를 굉장히 잘하는 가수로도 유명하다. 보통은 라이브와 음원의 차이가 적은 가수들을 “라이브를 잘한다”고 표현하는데, 박효신의 경우 편곡에 따라 음이 달라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음정, 박자, 호흡, 감정까지 복사+붙여넣기 수준으로 동일해서 정말 AR을 틀어놓고 립싱크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21] 이러한 가창력은 기본이고 장르를 소화하는 능력 또한 출중하다보니 '야생화'처럼 가창력이 강조되는 노래는 물론이고 'The Castle of Zoltar' 같이 신나는 곡도 엄청난 체력을 바탕으로 혼자서 그 넓은 무대를 뛰어다니며 그야말로 관객들을 휘젓고 다니는 모습을 보여준다.[22] 컨디션의 기복도 상당히 적은 편인데, LOVERS 콘서트 중 컨디션이 가장 나빴다는 6월 30일 공연에서도 야생화나 Goodbye를 부르면서 미묘한 수준의 샾 정도는 있었을지언정 고음을 올리지 못하거나 삑사리가 나는 일은 없었다. 이를 방증하는 듯 실제 콘서트를 가 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영상으로 보는 것과 실제 라이브를 보는 것이 차원이 다르다고. 오히려 라이브 공연을 자주 가는 팬들은 상대적으로 차분할 수 밖에 없는 음원을 심심해 할 정도이다. 라이브 공연에서는 섬세한 편곡으로 콘서트마다 곡들을 다른 버전으로 편곡해 들려 주기 때문이다.[23] 하지만 팬들은 DVD, 블루레이, 콘서트 음원 중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현실에 절망하기도 했다.
또한 매우 거대한 성량을 지닌 보컬이기도 한데, 이 영상을 보면 온 공연장이 쩌렁쩌렁 울리는 성량을 보여준다. 무마이크로 부른 그 눈을 떠 연습 영상에서도 그 어마어마한 성량이 느껴질 정도. 이 영상 말고 막이 내려가면서 모든 배우들이 나오는 영상이 있는데, 거기선 분명히 합창을 하고 있는데 박효신의 목소리밖에 안 들릴 정도다. 다른 배우들도 부르면서 헛웃음을 짓거나 이상한 사람 보듯이 바라보는 것이 압권.
즉 박효신은 타고난 피지컬(발성, 성량, 음역)과 단련된 보컬 테크닉, 뛰어난 노래 표현력을 두루 갖춘 만능 보컬리스트.
3.1. 창법 변화[편집]
재능이 많기도 하지만 그것에 안주하지 않고 부단히 노력해 현재 위치에 이른 가수로도 평가받는데, 이를 알 수 있는 부분이 데뷔 이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창법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데뷔 초중반 소몰이창법의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되던 가사 전달력 부족이나 감정 과잉 등을 지속적으로 교정해 나간 점과 앨범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창법들이 그 예다. 특히 데뷔 초의 라이브와 최근의 야생화 이후 라이브를 들어 보면 그야말로 천지차이가 난다. 물론 취향에 따라 예전의 목소리가 그립다는 반응도 있지만 실력적으로 큰 진전을 이뤘다는 건 사실이다.
박효신의 창법 변화는 정규 앨범 타이틀을 순서대로 들어보면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초기에는 굵직한 음성을 제외하면 딱히 특징지을 만한 발성법이 없었으며 라이브를 들어보면 1집 후반기부터 2집 때까지는 다소 거친 소리가 많고 숨소리가 많이 들어간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3집부터는 거친 보컬이 차분해지고 정리되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계속 대표적인 소몰이 보컬로 여겨지다가 4집부터는 좀 더 소리가 날카로워졌다는 느낌이 든다. 이후 5집 <The Breeze of Sea>에서는 굵고 묵직한 소리에서 거의 탈피하여 한결 섬세하고 편안해진 모습을 보여 주었다. 많은 팬들이 7집, 4집과 더불어 명반으로 꼽는 앨범.
이에 대해 본인은 "음악을 좀 편하게 하고 싶어서 창법을 바꿨다"라고 말했다. 소몰이창법의 유행 및 양산화가 가요계에 판을 치자 이 창법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박효신이 오히려 그 흐름을 거스르고 싶어 했을 거라는 등 여러 추측을 내놓았지만, 2014년에 지큐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언급했다.
Q. 5집은 ‘소몰이 창법’이 가요계를 잠식하자 박효신이 그 흐름을 거스르고 싶어 창법을 바꾼 음반이란 정설 같던 얘기도 그저 풍문인가요?
A. 그러니까요. 많은 분이 그렇게 생각하시는데, 전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늘 했던 것밖에 없어요. 데뷔 초반에 거친 음악을 했을 땐 그런 뮤지션들의 노래가 정말 좋았어요. 발성이 두껍고 뭔가 포효하듯 부르는 목소리. 시간이 흐르다 보니까 부드러운 게 좋을 때도 있었고요. 그렇게 음반에 때마다 제 모습을 담는 것뿐이에요. 뭔가 판단해서 ‘이건 별로니까 이걸 해야지’라는 식으로 계획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더불어 그동안의 음악 활동과 앨범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보여준 만큼, 최근에서는 다양한 창법으로 노래와 장르마다 다양한 목소리를 보여주기도 한다. 뮤지컬도 극(엘리자벳, 모차르트, 팬텀, 웃는남자)마다 음색과 발성을 달리하며, 흔히 성대를 갈아끼운다 라는 표현이 알맞을 정도. 실제로 콘서트를 가면 박효신의 맑고 부드러운 미성부터 굵고 허스키한 음색, 엄청 단단한 목소리까지 곡마다 다양하게 들을 수 있다.
3.2. 음역대[편집]
박효신의 진성 음역대는 스튜디오에서 들려준 코러스 최저음으로는 0옥타브 파(F2).[24] 라이브에서 들려준 진성 음역대는 0옥타브 파♯(F♯2)[25] 에서 3옥타브 솔(G5).[26] 가성 음역대는 3옥타브 라(A5)[27] 까지 선보였다.
4. 활동 경력[편집]
자세한 내용은 박효신/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음반[편집]
각 앨범을 간단히 살펴보려면 박효신/앨범 목록 문서로, 자세한 정보를 보려면 박효신/앨범 상세 문서 참조.
6. 소울트리[편집]
박효신의 공식 팬클럽. 2004년 6월 13일에 창단식을 가졌다.[29]영혼을 가진 나무, 소울트리
팬덤명 '소울트리'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노래를 부르는 박효신과 그에게 위로받은 팬들 모두 서로 기댈 수 있는 '영혼을 가진 나무'들이라는 의미를 담고있다. 한번 뿌리내린 곳을 떠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나무처럼 영원히 자신들의 아티스트 박효신을 지지함을 의미하기도 한다.[30]
6.1. 규모[편집]
솔로 가수들 중 손에 꼽힐 만큼의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2015년 기준 정회원의 수가 9천 명에 육박한다. 준회원들의 요청으로 추가 모집 수요 조사가 8일간 진행됐는데, 준회원 2천 명 정도가 가입 의사를 밝혀 추가 모집이 확정되었고 실제로는 3천 명 이상이 가입했다. 새로운 팬들의 유입도 상당한 것 같다.
2017년의 정회원 수는 약 19,000명으로 점점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2018년에는 약 26,000명이 가입했다.
2019년에는 약 33,000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을 한 번에 수용하기 어려워 2019년에는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 팬미팅을 두 번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2020년~2022년 까지는 코로나 19 여파로 정회원 모집을 진행하지 않았다.[32]
2023년 6월 15일부터 9월 7일까지 신규 정회원을 모집했다. 약 4년만의 정회원 모집 소식에 팬들이 열광했다. 모집 관련 영상도 포스코 거리에서 재생되었다.
2023년 9월에 열린 STPD GOING HOME 팬미팅에서 2023년 소울트리 정회원 수가 약 35,000명이라고 밝혔다.
6.2. 성향[편집]
보통 가수의 연차가 쌓이면 조금씩 힘이 빠지고 화력이 약해지게 마련인데 소울트리는 가수 데뷔 20년차에도 팬덤이 점점 커지는 놀라운 현상을 보여준다. 유입은 계속 있어도 탈덕이 많지 않은 데다 특유의 폐쇄성이 있어서 아이돌처럼[여담] 엄청난 숫자는 아니더라도 고인물 팬이 많다. 게다가 어느 정도 재력이 있는 팬들도 많은 편이라 아예 서울에 숙소를 잡고 콘서트 기간 내내 생활하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33]
그런데 박효신의 팬들을 소울트리라고 부르지만 사실 소울트리는 팬클럽 즉 그 집단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신규 유입된 팬들은 여타 연예인들처럼 팬클럽의 서포트나 팬 관리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만 그런 것은 없다. 이따금 공식 홈페이지에 공지가 올라오거나 정회원 물품이 소울트리의 이름으로 배송될 뿐, 그 흔한 공식 스밍리스트조차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공식 팬 사이트는 공지가 올라오기만 하면 접속이 몰려 항상 서버가 터지고, 평소의 로딩 인터페이스조차 답답하다. 팬클럽과 그 운영진의 존재 의의가 의심스러울 정도. 대신 지금까지 활발하게 사용되는 팬카페 박난사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하지만 공식이 아니라서 관리를 위해 까다로운 규칙을 적용하는 편이다. 처음 들어가 본다면 공지사항을 잘 읽도록 하자.
7. 관련 영상[편집]
자세한 내용은 박효신/영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방송[편집]
몇몇 예능[34] 에 출연했었으나 군 전역 이후로는 TV에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음악 프로그램에나 가끔 등장하지만 그것도 드문 편이다. 전에는 라디오에 게스트로 자주 참여했었다.
8.1. 라디오[편집]
9. 수상 내역[편집]
10. 공연[편집]
자세한 내용은 박효신/공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음악 외 활동[편집]
11.1. 뷰티풀 투모로우[편집]
박효신의 7번째 정규 앨범 I am A Dreamer를 주제로 한 블럭 무비.
자세한 내용은 뷰티풀 투모로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2. Rêver[편집]
2017년 11월 29일부터 12월 25일까지 있었던 전시회.
11.3. 데이즈드[편집]
12. 사건 사고[편집]
자세한 내용은 박효신/사건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3. 여담[편집]
13.1. 외모[편집]
- 한 인터뷰에서 리포터가 고등학교 동창인 환희와 휘성한테 '이걸로는 내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있냐, 몸매? 하고 묻자 그건 아니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근육은 환희보다 적어도 자신은 잔근육이 많아 보기 좋은 타입이라고. 또 셋 중에서 키가 제일 크다며 좋아했다.
- 운동을 좋아해서 일반적인 발라드 가수의 이미지와 달리 몸이 좋다. 데이즈드 2018년 11월호, 그의 전시회 레베에서 판매했던 포토북에서 잘 확인할 수 있다.
- 헬스보다는 자전거나 보드 등 일상적인 스포츠를 즐긴다고 한다. 조금만 운동해도 근육이 부각이 되는 편이라 축복받은 몸을 가졌다. 또 입이 짧은 편이라서 마른 몸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같이 군생활을 했던 배우 김재욱에 의하면 둘이 레슬링을 할 때 박효신이 이긴 적이 더 많을 정도로 여리여리해 보이지만 힘이 세다고 한다.
- 꾸준히 성형설이 도는 유명인 중 하나다. 사실 데뷔 초에는 외모로 주목 받지 않았는데 활동을 하면서 부각되긴 했다. 본인의 팬인 성형외과 의사가 계속 성형을 권유하여 쌍꺼풀을 잡은 적이 있다. 하지만 2012년 라디오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쌍꺼풀이 풀렸다고 밝혔다.
- 원래 치아가 부정교합이라서 공백기에 교정을 받았고, 약간 돌출되어 있던 턱도 함께 들어갔다.
- "너는 노래는 잘하는데 옷은 왜 그렇게 입고 다니냐?"는 말을 듣고 충격받은 후로 패션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박효신이 유난히 외모로 주목받는 데에는 철저한 자기 관리의 영향이 큰 듯하다.
- 데뷔 초에는 외모 언급을 스스로 피하는 등 외모에 자신감이 없어 보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리즈를 경신하는 외모를 본인도 인정하는지 최근에는 은근히 자신의 잘생김을 어필하기도 한다.
- 2020년 부로 불혹의 나이가 되었는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동안 연예인에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편이다.
- 크고 예쁜 손을 가진 남자 연예인으로 종종 언급된다.
13.2. 완벽주의 녹음썰[편집]
자세한 내용은 박효신/녹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3.3. 노래[편집]
- 고교 동창 휘성의 말에 따르면 고등학교 시절부터 근방에서는 유명한 실력파여서 선생님들과 학생들 사이에서도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직업고등학교의 실용음악과였기 때문에 노래 잘한다는 친구들은 다 모여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박효신만은 딴 세상에 있는 느낌이었다고. 휘성의 인터뷰에서는 "고교시절 효신이가 세상에서 가장 노래를 잘하는 줄 알았다" 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 데뷔 전 노래방에서 박화요비와 함께 '사랑보다 깊은 상처'(임재범, 박정현 원곡)를 불렀다가 복도가 시끄러워 나가보니 노래방에 있던 사람들과 주인 아저씨까지 이들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는 일화도 있다.
- 데뷔 전부터 학교 내에 팬클럽이 있었다고 한다.
- 방송사고에 잘 대처하는 편이다. 옥주현·홍경민의 별밤 라디오에서는 AR을 틀어야 하는데 MR을 틀어버려서 직접 노래를 불러 무마시킨 적도 있다. 훗날 옥주현은 이 방송사고를 두고 클래스가 다른 박효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 2007년 전국 투어 콘서트를 하고 있을 당시 전 소속사와의 문제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쓰러져 연축성 발성장애[41] 진단을 받았다. 가수로서는 아주 치명적인 것. 연축성 발성장애는 후두 근육의 불수의적인 수축으로 인해 초래되는 신경질환으로 자칫하면 평생 목을 못 쓰게 될 수도 있다. 불치병에 가까운 질환이라 알려져 있지만, 잘 극복하여 현재는 무리 없이 노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2005년 사망한 미국의 R&B 거장 루서 밴드로스를 우상으로 여길 정도로 데뷔 전부터 영감을 받았다. 리메이크 곡인 'Hello' 를 1년 동안 연습하면서 루서 밴드로스처럼 부르고 싶었는데 뜻대로 안 됐고 그런 자신에게 화가 나 CD 플레이어를 던져서 망가뜨리기도 했다고. 심지어 'Hello' 를 녹음을 해서 보내려는 생각까지도 했다는데 단순히 칭찬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이만큼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혹시나 당신이 모르는 나라에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42] 루서 밴드로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브리스 어게인' 이라는 이름의 추모 콘서트를 열었는데 콘서트에서 루서 밴드로스에게 진심을 담아 쓴 편지를 관객들에게 읽어줬을 정도로 존경심을 보였다. 어릴 때부터 멘토와 같았던 존재의 죽음에 상실감이 컸었던 것 같다.
- 에픽하이와 함께 하이테크놀로지에 피처링을 해주던 때(위문열차)가 있었는데 이때 박효신이 랩 파트를 맡기도 했다.실력이 나쁘지 않은 편. 참고로 타블로는 박효신이 에픽하이의 'Love Love Love' 부르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 가수 김연우는 2009년 9월 21일 타블로와 꿈꾸는 라디오에 나와서 실력을 인정하는 가수를 고르라는 질문에 한 명만 대답하기는 힘들다며 김건모, 김범수, 박효신이라 대답했었다. 또한 2011년 12월 14일 라디오스타에서는 가창력 탑5를 묻는 질문에 김연우, 이승철, 임재범, 김범수, 박효신이라고 답했다. 한 인터뷰에서는 박효신의 목소리가 워너비라고 밝혔으며 자신의 까랑까랑하면서 정확한 소리와 비교해서 풍성하면서 서글픈 목소리가 부럽기까지 해서 허스키한 톤을 유지하기 위해서 연습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타고난 성대가 각자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박효신은 호소력을 갖고 있지만 본인은 덤덤한 슬픔 표현을 잘 한다는 말도 했다. 김연우는 '야생화'를 듣고 깜짝 놀랐었다고 했으며, 가수 산들에게도 박효신처럼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걸로 보아 박효신이라는 가수를 꽤나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