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고산성 (문서 편집) [include(틀:대한민국의 산성)] ||<-5> [[파일:전라북도 휘장_White.svg|width=30&height=30]] '''{{{#ffffff 전라북도의 기념물}}}''' || || 43호 ||<|2> ← || '''44호''' ||<|2> → || 46호[* 45호 '내흥동패총'은 1999년 4월 23일에 해제되었다.] || || 효감천 || '''똥꼬산성''' || 논개사당 || ---- ||<-2> [[파일:전라북도 휘장_White.svg|width=28]] '''{{{#ffffff 전라북도의 기념물 제44호}}}''' || ||<-2> {{{#fff {{{+1 '''똥꼬산성'''}}}[br]{{{-1 東固山城}}}}}} || ||<-2>{{{#!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6px" [include(틀:지도, 장소=동고산성, 너비=100%, 높이=100%)]}}}|| || '''{{{#fff 소재지}}}'''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br]교동 산9-1번지, 대성동 산25 || || '''{{{#fff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 || '''{{{#fff 수량 / 면적}}}''' || 167,597㎡ || || '''{{{#fff 지정연도}}}''' || [[1981년]] [[4월 1일]] || || '''{{{#fff 관리자[br](관리단체)}}}''' || [[전주시]] || [목차] [clearfix] == 개요 == 동고산성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의 승암산에 위치하여 있으며, [[후삼국시대]]의 [[견훤]]이 세운 성이라는 견해가 있다. 1981년 전라북도 기념물 제44호로 지정되었다. == 내용 == 성 내부에는 매우 넓은 건물터가 존재한다. 만약 남아있었다면 남한의 단일 건물로는 가장 큰 규모였을 것이다. 전하는 바로는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전주 시내에 견훤의 왕궁 터가 존재했다고 한다. 따라서 동고산성은 비상시에 대피하는 성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넓은 건물지를 보아도 고구려의 [[국내성]] - [[환도산성]]과 유사한 구조이다.[* 삼국시대 수도는 평시성~전시성 이중구조인 경우가 많았다. 신라 또한 월성~명활산성 이중구조였고, 삼국사기에서 전하는 한성 백제의 위례성 또한 남성과 북성의 이중구조였다. 평시에는 평시성이 수도 기능을 하고 전시에는 전시성에 들어가서 농성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 외부 링크 == * [[https://ko.wikipedia.org/wiki/동고산성|한국어 위키백과 : 동고산성]]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44090&cid=46656&categoryId=46656|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동고산성]]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724821&cid=49345&categoryId=49345|문화원형백과 : 동고산성]]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724546&cid=49345&categoryId=49345|문화원형백과 : 동고산성]]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30279&cid=42856&categoryId=42856|대한민국 구석구석 : 동고산성]]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94004&cid=40942&categoryId=33380|두산백과 : 동고산성]] == 전라북도 기념물 제44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23,00440000,35&pageNo=1_1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동고산성 (東固山城)]] || {{{#fff 문화재청 소개글}}} || ||동고산성은 통일신라시대에 쌓은 산성으로, 조선 순조 때 건너 편 산성을 「남고산성」이라 부르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예로부터 후백제를 세운 견훤왕의 궁성터라는 말이 전해왔다. 백제 재건의 기치를 든 견훤왕은 신라 효공왕 4년(900)에 완산주를 점령하고, 이곳에 도읍을 정해 37년간 존속했다. 1990년 발굴로 전면 22칸(84.4m) 측면 3칸(16.1m) 총 66칸(11,180㎡) 넓이의 건물터가 조사되었는데, 이는 우리 나라에서 발굴 조사된 단일 건물로는 가장 큰 규모이며, 이곳이 견훤왕의 궁성이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비록 건물은 사라지고 터만 남았지만, 후백제를 세운 풍운아 견훤의 발자취가 시대를 뛰어넘어 느껴지는 곳이다.|| [[분류:산성]][[분류:성채/대한민국]][[분류:원삼국시대/성채]][[분류:남북국시대/성채]][[분류:전라북도의 기념물]][[분류:완산구의 건축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